친구의 뒤통수만 보고 하는 수업과 친구의 얼굴을 맞대고 하는 수업. 네트워크와 협동이 중시되는 미래를 위한 수업은 어떤걸까. 사진은 협동학습을 하고 있는 삼각산중학교 1학년 학생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상위권·하위권 섞어 모둠학습 하는 학교들
우등생은 친구 가르치며 지식 정리하고
열등생은 모르는 부분 배우며 도움받아
소외되는 학생 하나도 없이 성적 ‘쑥쑥’ 지난 11일, 경기도 부천의 부곡중학교 3학년 1반 영어 수업 시간. 네 명씩 책상을 붙여 아홉 개의 모둠을 이루고 앉은 학생들이 남이형(37) 교사가 내준 활동지의 독해를 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5모둠의 이다물(14)군은 교사가 내준 활동지에서 자기 몫의 독해가 끝나자 옆에 앉은 친구한테 “다 풀었어?” 하고 묻는다. 친구가 미처 해석하지 못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이군이 동사의 현재형과 과거형을 설명해 준다. 착한 우등생, 이군만이 하는 일일까? 아니다. 다른 모둠에서 이군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누구나 옆에 앉은 친구의 독해를 돕는다. 학생이 학생을 돕는 수업, 협동학습이다. 사실 이군은 5모둠에서 성적이 가장 좋다. 상위권 이군을 1번으로 2번 친구는 중상위권, 3번은 중하위권, 4번의 영어 성적은 하위권에 든다. 다른 모둠의 구성도 마찬가지다. 1번이 3번을 돕듯 2번은 4번을 돕는다. 수준차가 나는 학생들을 한데 모으는 방식은 협동학습이 모둠을 활용하는 여느 수업과 가장 다른 점이다. 그렇다면 중하위권을 돕느라 상위권 아이들은 희생만하는 게 아닐까? 남 교사는 협동학습은 주입식 교육과 달리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교사의 설명을 들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지만 친구한테 설명하라고 하면 머리가 하얘지는 아이들도 많아요. 내가 아는 것을 설명하면서 알고 있는 지식을 점검하는 거죠. 하위권 아이들의 질문을 통해 자기가 모르는 부분을 새롭게 알 수도 있고요.” 정문성 경인교대 교수는 “다른 친구한테 설명하는 과정은 자기가 아는 것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고 정리하는 ‘복습’ 같은 효과가 있어서 성취도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고 말했다. 교육학에서는 이를 ‘인지 정교화’라고 하는데 이는 협동학습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논리다. 김희숙 목포 청호중 교사(수학) 역시 협동학습이 수학을 제대로 학습하는 데 맞춤한 수업 방식이라고 말한다. “15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면서 수학을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는데 협동학습에서 해답을 찾았다”며 “수준이 다른 학생들이 서로 묻고 답하며 수학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은 교사의 일방적인 설명보다 학업성취도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협동학습이 진짜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제자들의 성적 향상으로 증명했다. 그가 2004년 전남 영광 대마중에서 2년 동안 가르친 3학년 학생들의 학력진단평가 결과를 보면, 기초미달 학생은 전체의 18.8%로 도시 지역의 평균 24.3%보다 낮았다. 상위 80%에 해당하는 우수학력자의 비율(37.5%) 역시 도시 지역(34.9%)에 뒤지지 않았다. 당시 도지역 평균은 28.4%에 그쳤다. 김정화(36) 서울 삼각산중학교 교사(수학)는 “7차 교육과정을 보면 수학적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한 수학적 학습 능력으로 나오는데, 이는 교사의 일방적인 문제풀이식 수업으로는 얻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동이 쉽지는 않다. 얼마 전 핀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의 교육 현장을 둘러보고 온 안미영씨(전직 초교 교사)는 “사회적으로 경쟁하기보다 협동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는 핀란드는 굳이 교사가 개입하지 않아도 학생들끼리 끊임없이 협동한다”며 “어릴 때부터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을 받고 친구보다 우월한 데 성취감을 느끼는 우리 아이들로서는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협동학습 교사들이 수업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협동하는 구조를 적용하는 이유다. 김정화 교사의 수학 수업이 그렇다. 지난 10일 서울 삼각산중학교의 1학년 9반. “섬김이 나와서 모둠 팻말 만들 사인펜이랑 도화지 갖고 가세요.” 김교사의 말이 끝나자 각 모둠에 있던 섬김이들이 열심히 달려 나와 각자 도구를 챙겨 간다. 섬김이는 성적을 기준으로 한 수준별 구성에서는 하위권에 해당하는 학생이다. “매직도 챙겨 왔다”며 뿌듯해하는 섬김이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 밖에 1번 이끔이, 2번 기록이, 3번 칭찬이 등도 각자 성적과 상관없이 수업 내내 각자의 몫이 있다. 칭찬이를 맡은 김홍주(13)양은 “나는 애들이 못할 때 격려해주고 칭찬해 줘야 한다”며 “오늘도 좀 느린 친구한테 열심히 하라고 칭찬해 줬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기록이는 애써 만든 모둠 팻말을 보관해야 했고 이끔이는 모둠 이름을 발표했다. 각자의 구실에 충실하면 자연스레 협동이 되는 구조다. 이런 협동학습의 구조 속에서 공부 못한다고 소외되는 학생은 없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에 학생들은 리더십을 경험할 기회가 많다. 이끔이를 맡고 있는 염재민(13)군은 “친구들이 딴짓하면 툭툭 건드려서 집중하게도 하고 모르는 걸 물어볼 때 이것저것 가르쳐주다 보면 내가 정말 리더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우리 모둠이 잘해야 선생님한테 칭찬을 들을 수 있으니까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염군과 같은 제자들을 보며 협동학습을 통해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남이형 교사는 학기 초에 협동학습을 시작하며 제자들한테 “사회에 나가면 너희와는 엄청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협동의 기회가 많다. 학교에서 그런 걸 미리 배워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문성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가 경쟁이 아닌 협동으로 굴러가는 체제라는 새로운 인식이 197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협동학습 연구의 붐을 일으켰다”며 “우리나라도 1997년 구제금융 사태를 계기로 기업 등에서 팀제를 도입하는 등 협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므로 협동학습의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점차 유리한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협동학습을 교실 수업의 대안으로 소신 있게 지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영어·수학 등 수준별 이동수업 등이 도입되고 있는 교과의 교사들은 더욱 그렇다. 신승균 파주 문산고 교사(수학)는 “상위권 아이들만 따로 복도로 불러 고난도의 문제를 풀게 하는 등 협동학습은 굳이 이동수업을 안 해도 수준별 수업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며 “수준별 수업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인성 교육까지 더불어 할 수 있는 협동학습이 효율적이고 실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열등생은 모르는 부분 배우며 도움받아
소외되는 학생 하나도 없이 성적 ‘쑥쑥’ 지난 11일, 경기도 부천의 부곡중학교 3학년 1반 영어 수업 시간. 네 명씩 책상을 붙여 아홉 개의 모둠을 이루고 앉은 학생들이 남이형(37) 교사가 내준 활동지의 독해를 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5모둠의 이다물(14)군은 교사가 내준 활동지에서 자기 몫의 독해가 끝나자 옆에 앉은 친구한테 “다 풀었어?” 하고 묻는다. 친구가 미처 해석하지 못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이군이 동사의 현재형과 과거형을 설명해 준다. 착한 우등생, 이군만이 하는 일일까? 아니다. 다른 모둠에서 이군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누구나 옆에 앉은 친구의 독해를 돕는다. 학생이 학생을 돕는 수업, 협동학습이다. 사실 이군은 5모둠에서 성적이 가장 좋다. 상위권 이군을 1번으로 2번 친구는 중상위권, 3번은 중하위권, 4번의 영어 성적은 하위권에 든다. 다른 모둠의 구성도 마찬가지다. 1번이 3번을 돕듯 2번은 4번을 돕는다. 수준차가 나는 학생들을 한데 모으는 방식은 협동학습이 모둠을 활용하는 여느 수업과 가장 다른 점이다. 그렇다면 중하위권을 돕느라 상위권 아이들은 희생만하는 게 아닐까? 남 교사는 협동학습은 주입식 교육과 달리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교사의 설명을 들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지만 친구한테 설명하라고 하면 머리가 하얘지는 아이들도 많아요. 내가 아는 것을 설명하면서 알고 있는 지식을 점검하는 거죠. 하위권 아이들의 질문을 통해 자기가 모르는 부분을 새롭게 알 수도 있고요.” 정문성 경인교대 교수는 “다른 친구한테 설명하는 과정은 자기가 아는 것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고 정리하는 ‘복습’ 같은 효과가 있어서 성취도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고 말했다. 교육학에서는 이를 ‘인지 정교화’라고 하는데 이는 협동학습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논리다. 김희숙 목포 청호중 교사(수학) 역시 협동학습이 수학을 제대로 학습하는 데 맞춤한 수업 방식이라고 말한다. “15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면서 수학을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는데 협동학습에서 해답을 찾았다”며 “수준이 다른 학생들이 서로 묻고 답하며 수학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은 교사의 일방적인 설명보다 학업성취도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협동학습이 진짜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제자들의 성적 향상으로 증명했다. 그가 2004년 전남 영광 대마중에서 2년 동안 가르친 3학년 학생들의 학력진단평가 결과를 보면, 기초미달 학생은 전체의 18.8%로 도시 지역의 평균 24.3%보다 낮았다. 상위 80%에 해당하는 우수학력자의 비율(37.5%) 역시 도시 지역(34.9%)에 뒤지지 않았다. 당시 도지역 평균은 28.4%에 그쳤다. 김정화(36) 서울 삼각산중학교 교사(수학)는 “7차 교육과정을 보면 수학적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한 수학적 학습 능력으로 나오는데, 이는 교사의 일방적인 문제풀이식 수업으로는 얻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동이 쉽지는 않다. 얼마 전 핀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의 교육 현장을 둘러보고 온 안미영씨(전직 초교 교사)는 “사회적으로 경쟁하기보다 협동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는 핀란드는 굳이 교사가 개입하지 않아도 학생들끼리 끊임없이 협동한다”며 “어릴 때부터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을 받고 친구보다 우월한 데 성취감을 느끼는 우리 아이들로서는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협동학습 교사들이 수업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협동하는 구조를 적용하는 이유다. 김정화 교사의 수학 수업이 그렇다. 지난 10일 서울 삼각산중학교의 1학년 9반. “섬김이 나와서 모둠 팻말 만들 사인펜이랑 도화지 갖고 가세요.” 김교사의 말이 끝나자 각 모둠에 있던 섬김이들이 열심히 달려 나와 각자 도구를 챙겨 간다. 섬김이는 성적을 기준으로 한 수준별 구성에서는 하위권에 해당하는 학생이다. “매직도 챙겨 왔다”며 뿌듯해하는 섬김이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 밖에 1번 이끔이, 2번 기록이, 3번 칭찬이 등도 각자 성적과 상관없이 수업 내내 각자의 몫이 있다. 칭찬이를 맡은 김홍주(13)양은 “나는 애들이 못할 때 격려해주고 칭찬해 줘야 한다”며 “오늘도 좀 느린 친구한테 열심히 하라고 칭찬해 줬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기록이는 애써 만든 모둠 팻말을 보관해야 했고 이끔이는 모둠 이름을 발표했다. 각자의 구실에 충실하면 자연스레 협동이 되는 구조다. 이런 협동학습의 구조 속에서 공부 못한다고 소외되는 학생은 없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에 학생들은 리더십을 경험할 기회가 많다. 이끔이를 맡고 있는 염재민(13)군은 “친구들이 딴짓하면 툭툭 건드려서 집중하게도 하고 모르는 걸 물어볼 때 이것저것 가르쳐주다 보면 내가 정말 리더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우리 모둠이 잘해야 선생님한테 칭찬을 들을 수 있으니까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염군과 같은 제자들을 보며 협동학습을 통해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남이형 교사는 학기 초에 협동학습을 시작하며 제자들한테 “사회에 나가면 너희와는 엄청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협동의 기회가 많다. 학교에서 그런 걸 미리 배워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문성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가 경쟁이 아닌 협동으로 굴러가는 체제라는 새로운 인식이 197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협동학습 연구의 붐을 일으켰다”며 “우리나라도 1997년 구제금융 사태를 계기로 기업 등에서 팀제를 도입하는 등 협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므로 협동학습의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점차 유리한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협동학습을 교실 수업의 대안으로 소신 있게 지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영어·수학 등 수준별 이동수업 등이 도입되고 있는 교과의 교사들은 더욱 그렇다. 신승균 파주 문산고 교사(수학)는 “상위권 아이들만 따로 복도로 불러 고난도의 문제를 풀게 하는 등 협동학습은 굳이 이동수업을 안 해도 수준별 수업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며 “수준별 수업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인성 교육까지 더불어 할 수 있는 협동학습이 효율적이고 실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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