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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권력형 비리’…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이익보다 가치…일상경험에서 알게 해야

등록 2009-04-12 19:33수정 2009-04-12 19:35

고현숙 한국리더십센터 대표
고현숙 한국리더십센터 대표




교육 인터뷰 /

고현숙 한국리더십센터 대표

1년에 몇 번씩 접하게 되는 이른바 ‘~게이트’들. 이번엔 설마 했던 전직 대통령까지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런 종류의 사건을 보는 아이들의 심정은 어떤 걸까? 우리 사회는 이런 사건 때문에 아이들이 받을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가? 아이들이 혹여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깨끗한 정치를 한다고 했는데 가족이나 친척들이 왜 그렇게 큰 돈을 받았대요?”라고 물으면 부모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걸까?

부모의 처지에서 아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고현숙(47) 한국리더십센터 대표는 “내면의 가치를 기르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기르기보다는 무엇이 이익이 되는지만을 따지는 우리 사회의 풍토를 바꿔야만 도덕과 윤리 교육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최근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그는 도덕적 자질과 윤리의식을 갖춘 리더를 길러내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권력형 비리 사건처럼 사회 전체에 적잖은 파장을 미치는 사건이 터지더라도 자라나는 세대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사회적 논의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어떤 영향을 받게 되나?

부모나 학교 선생님들이 일상적으로 조근조근 오랫동안 가르친 것이 한순간의 웅변으로 뒤집히는 꼴이다. 부모나 선생님들 처지에서는 윤리나 도덕에 대해 가르치는 게 무척 힘든 상황이 된다. 그런데 거짓말이나 비도덕적 행위가 반복되는 현실이 특별히 더 무서운 것은 ‘학습된 무기력’을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무엇을 해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나중에 또 터지더라도 결국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도덕적 해이가 반복되는 것은 이런 무기력증에서 비롯하는 측면도 크다고 본다.

왜 이런 현상이 끊임없이 생기나? 리더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좋은 교육을 받고 가장 좋은 기회를 누린 이들이다. 이들을 교육하는 데 실패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자라나는 세대들의 교육에도 시사점을 준다고 보는데.

한마디로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무엇이 내게 이익이 될 것인가만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런 결과를 빚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 선거만 봐도 알 수 있다.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기준이지 도덕적 기준이나 윤리 문제는 뒷전이다. 올바른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교실에서 가르친다고 아이들이 저절로 믿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리더들을 키워내는 데도 가치관 교육이 필요하다. 평생토록 간직할 가치를 심어줘야 올바른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가치 교육이라고 하면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그렇게 느끼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가치에 대해 실질은 없고 명목만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게 우리 사회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가치는 실제가 있다. 가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가치를 자신의 내면에 지니게 되면 자아를 확장시킬 수 있고 자신감이나 자존감을 결정적으로 높일 수 있다. 한 사람을 판단하는 데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즉 업적이나 결과로 평가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놓고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와도 맞닿아있다. 인격과 성품, 지향점 등에서 나타나는 가치는 주변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을 보라. 그가 선종한 후 우리 사회가 그의 업적에 대해 그렇게 크게 반응한 것은 아닐 것이다. ‘두잉’(doing)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잉’(being), 즉 존재 그 자체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 가치인데 우리는 그것을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걸로 치부한다.

‘~게이트’에 아는 상식 뒤집히고 무기력함 커져
한국의 지도자, 기능·역할·지위로만 평가돼 문제
작은 거짓말에 엄하게…‘생활 속 영웅’은 본받게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를 가지도록 해야 하는가?

그 가치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를 예로 들어보면, 사회에 대한 공헌이나 인권, 탁월함의 추구를 ‘내게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 단기적의로 이익이 되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고양시킬 수 있는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없던 상태와 그것을 가진 이후의 상태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개인에 따라 다르더라도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라는 게 있을 것 같은데.

인간에 대한 존중, 정직이나 용기, 성실성 같은 가치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가치일 것이다. 윤리의 문제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 심각하게 변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은 것이라도 즉시 인정하도록 하는 게 좋다. 도덕성에 관한 연구를 한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도덕성을 증진하려면 ‘벌’이 필요하다. 벌이 없이도 도덕성을 높일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려면, 부정직했을 때 여러 형태의 벌이 주어진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리더들에게 특별히 더 높은 도덕성과 윤리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책임이 무척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리더들은 평균적인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껏 한국의 리더들은 기능과 역할, 지위로만 평가받았다. 존재 그 자체보다는 조직 속에서의 역할만 강조하다 보니 가치나 도덕의 문제는 부각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비가 억수처럼 오는 틈을 타 하천에 폐수를 방류하라는 지시를 들었는데 조직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지시에 응한 사람을 인정해준다면 장기적으로는 잘못된 리더를 기르는 데로 나가는 것이다. 외국의 기업들은 윤리를 핵심 가치로 삼는 곳이 많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내일 아침 신문 헤드라인에 등장한 것인가’를 판단 기준으로 하라고 권고하는 기업의 경우가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윤리나 도덕, 가치의 문제를 가르칠 수 있나?

부모들은 일상생활의 경험 속에서 아이에게 가치를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잘사는 집 친구가 있었는데 돈을 잘 썼다. 그 친구를 따라다니면서 먹을 것도 많이 얻어먹고, 선물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갚을 수 있는 것 외에는 받지 않는 게 좋다. 그렇게 지내다가 그 친구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 친구 때문에 싫더라도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는 수긍했다. 돈에 의존하게 되면 그것이 권력관계로 굳어지게 된다는 점을 일러준 것이다.

주변에서 ‘의미 있는 영웅’을 찾아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 사회에는 영웅이 너무 없다. 영웅이 있어도 이런저런 사건으로 쉽게 사라져 버린다. 아이들은 영웅에 열광하고 그를 역할 모델로 하려는 성향이 많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숨어 있는 영웅’을 찾아줘야 한다. 자신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주변을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친척이 있다면 그 사람도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런 이들을 ‘참 오지랖도 넓다’고 비난하면 아이들도 똑같이 비난하게 된다. 아이들의 가치관 교육을 위해서는 어른들의 성찰도 필요하다. 또 꾸준한 행동이 필수적이다.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일상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쌓은 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글·사진 김창석 기자 kimcs@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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