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교육 인터뷰] 경희대 교육학과 성열관 교수
지난 4월 15일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5~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시·도별로 공개했다. 각 영역에서 상위 20위권 안에 드는 시·군·구도 공개했다.
수능 성적 공개의 의미는 뭘까. 경희대 교육학과 성열관(40) 교수는 “현 정부가 경제학적으로 교육에 접근하고 있다”며 “과열된 경쟁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경쟁을 강화시키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2004년 <호모 에코노미쿠스 시대의 교육>을 통해 교육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려는 영·미 신자유주의 교육모델이 한국에 들어와 나타나는 허상을 분석했다. 21일, 경희대 교수실에서 그를 만나 수능 성적 공개의 의미와 영향에 대해 물었다.
서열화 조장해 고교등급제·엘리트학교 명분줘
초등생부터 입시경쟁… ‘순치형’ 대학생만 양산
공교육 정상화 위해 ‘시험맞춤형’공부 지양해야 - 수능 성적이 공개된 건 1993년 시행 이후 처음이다. 이번 성적 공개를 어떻게 보나. 큰 틀에서 봐야 한다. 이번 공개에는 경제학적으로 교육에 접근하려는 밑그림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 기조는 ‘시험’ 더하기 ‘공시 정책’이다. 학교의 질을 평가하는 건 시험 점수고, 이 점수를 공개해야만 학교가 책무성을 다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중요한 건 시험만 강조한 게 아니라 점수를 공개한 것이다. 이건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키우겠다는 거고.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정보를 공개해야만 선택의 준거가 생긴다. 경제학에선 공시가 굉장히 중요하다. 고객에게 상품정보 공개하면 고객은 좋은 정보 쪽의 상품을 산다. 하지만 교육은 상품이 아니잖나. 실제로 밑그림을 그린 정계 인사들 즉, 우리나라 공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그룹은 교육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들이다. 교육 정책에서 교육학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건 고교등급제와 관련이 있다. 지역 간 성적 차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등급제를 하려면 학교별 성적이 공개돼야 한다. 이데올로기적인 전략이다. 학교 간 성적 차가 크다는 말은 그 동안 보수 언론이나 한나라당에서 해오던 이야기들인데 이번 공개를 통해 학교 간 내신 같은 걸 동시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심리적으로 각인시켜준 거다. 정서적 효과를 이용한 셈이다. - 성적 공개도 문제이지만 공개한 정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공교육의 질 향상’에 의미를 주는 자료가 아니라는 의견들인데. 더 구체적으로 분석을 하기 어려운 자료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사회경제적 배경, 부모의 지위 등에 대한 자료가 있어야만 한다. 변인에 대한 분석 없이 성적만으로 분석을 하면 추론만 하게 된다. 결국 성적 중심으로 목표를 세울 수밖에 없는 거다. - 후폭풍에 대한 우려도 많다. 결과적으로 고교서열화, 평준화 폐지 명분이 될 거라는 예상이다. 성적 공개가 우리 교육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보나. 평준화 폐지는 없을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학부모 60% 이상이 평준화를 지지한다. 폐해를 알고 있다. 실제 평준화 지역인 5대 광역시의 임팩트가 강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체제가 없어지진 않을 거다. 결국 엘리트 고등학교를 늘리려는 전략인 것 같다. 이 학교들이 잘 되려면 내신이 불리하지 않아야 한다. 내신이 불리하게 되면 학부모들이 안 보내려고 하니까 대학이 고교를 등급화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줄을 세워서 학교 서열 정보를 대학에 주려는 것이다. 이건 입학사정관제와도 관련이 있다. 입학사정관제가 지금까지는 꽤 성공한 편이었다. 기회균등제 구실로 교육격차를 완화하는 목적이었는데 이게 정시로 들어오면 입학사정관들이 고교 때 성취 정보를 알 수가 없으니 결국 필요한 정보는 수능 점수다. 넓게 볼 때 ‘엘리트 고교’만 육성이 될 거다. 그런 저의가 아니면 수능 성적을 다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 - 교육정보공시제 전반에 대해 찬반 논란이 있어 왔다. 교육 정보를 공개할 때 무엇을 기준,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나. 교육정보 공개를 전적으로 나쁘게 보진 않는다. 학교교육계획서에서부터 중도탈락률, 청소년 비행 등이 다 공개된다. 그런 건 좋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장애인 시설이 있는지, 특수반이 있는지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다. 단, 학업성취도 정보 공개는 반대다. 학부모들이 학교 선택 때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게 학업성취도 정보다. ‘전략적 행위자’는 ‘이기적 행위자’라고도 부르는데 학부모들이 그렇다. 내 자녀가 조금이라도 유리해야 한다는 태도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니까 도덕적으로 비판하긴 어렵다. 현 정부가 머리를 잘 쓴다고 본다. 수능 성적 공개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잘 아는 것이다. 시민들을 의도적으로 심한 경쟁자로 만들어버린다. 학업성취 정보를 공시하기 위해 다른 모든 교육정보 공시를 하는 거 같다. - 애초 수능성적 공개의 명분은 ‘공교육 경쟁력과 질 향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성적 공개는 의도에 맞는 공개도 아니거니와 대안이 없다고 비판받는다. 공교육의 질이 향상되려면 어떤 방법들이 필요하다고 보나. 교육 목표대로 가면 된다. 시험이나 경쟁을 목표로 두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개선할 점도 여전히 있지만 초등학교 교육이 상당히 나아졌다. 석차와 중학교 입시 경쟁이 사라진 덕이다. 고입 경쟁이 치열해지면 공교육이 비정상화한다. 고교 교육의 문제는 대입 때문에 생기지 않았나. 시험 맞춤형 공부를 하는 게 문제다. 시험 자체를 다 없애자는 얘기는 아니다. 중학교의 경우 과목별 석차를 내지 말고, 교사별 평가 등을 하는 방법이 있을 거다. 고교 교육은 대입 때문에 정상화가 어려울 수 있지만 중학교까지는 가능하다고 본다. 최소 9년 동안 시험 맞춤형 공부를 안 하게 하는 게 공교육 정상화라고 본다. 교육 목표에 ‘주입식’, ‘획일식’이라는 말은 없다. 창의적 인재, 배려하는 인간, 자기존엄성을 추구하는 인재 등이 목표로 적혀 있을 거다.(웃음) - 수능 시험 자체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수능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의견들이 있다. 이번에 성적이 공개된 수능시험은 과연 유효성이 있을까. 수능, 내신, 논술 중에서 수능이 가장 마지막에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입학관리가 안 되는 대학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 쪽이 출제, 평가, 채점, 사정을 해서 합격자 발표하는 가운데에 입시 부정도 우려된다. 미국 SAT처럼 에티튜드(Aptitude) 즉, ‘적성’을 보는 시험으로 바뀌면 시험이 쉬워진다. 근데 이렇게 되면 변별력이 없어져서 본고사가 부활된다고들 이야기하지 않나. 공교육이 대학별 본고사 대비를 하는 건 수능 대비보다 더 어렵다. 사교육 시장은 더 늘어날 거고, 그래서 이 부분 역시 딜레마다.
- 일제고사를 비롯해 수능성적 공개까지 이명박 정부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교육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들 사회를 통해 우리 교육의 미래를 그려본다면.
학업성취도 시험을 봐서 등수를 학교 누리집에 공개한다는 건 미국 부시 정부가 지난 8년 동안 해온 것들이다. 오바마 정부는 여기에 손을 보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진 모르겠다. 대선 과정에서 강조한 부분이기 때문에 분명 변화가 있을 거다. 미국과 영국은 국제성취도 성적이 중간 이하다. 중도탈락률까지 하면 미국은 더 낮을 거다. 그런데 공교육비는 높다. 결국 시험을 봐서 학교를 등급화하고, 책무성을 묻겠다는 그들 나라의 생각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거다.
차이점이 분명히 있다. 미국은 시험 자체가 많지 않다. 그러니 시험 준비를 위해 연일 공부하는 일은 없다. 획일식, 주입식 수업도 잘 안 한다. 일제고사의 폐해가 있겠지만 우리 정도는 아니다. 반면 우린 이미 획일식, 주입식 수업을 한다. 일제고사 말고도 중간, 기말, 학년에 따라선 학업성취도평가 등 많게는 일 년에 일곱 번의 시험을 치른다. 프로젝트, 토론 등 다양한 수업 방법이 있는데 시험 준비 때문에 교사들은 이를 시도하기 힘들고, 시도해도 시험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다.
이번 정부의 교육 정책 전반에서 가장 큰 잘못은 입시경쟁을 강화한 것이다. 고교 다양화 정책이 큰 문제다. 이젠 초등학교 고학년부턴 입학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실제 그러고 있다. 달리기 경기로 치면 42.195km의 마라톤을 뛰게 하지 말고, 가능하다면 뛰는 거리를 줄여줘야 한다. 10km, 5km만 뛰게 하자는 거다. 대입은 입시 때문에 불가피하더라도 고입부터 아이들을 괴롭히며 진을 다 빼놓는 경쟁을 유도해선 안 된다. 초등학교부터 중ㆍ고교 초기까지는 창의력을 기르게 하고, 적성, 진로 등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 진을 빼고 대학에 들어오니까 능동적으로 자기 분야에서 탐구할 시기에 ‘순치형 아이들’이 된다. 도전적인 아이들도 있지만 기대에 미흡할 정도로 나오는 게 아쉽고, 안타깝다. 이건 국가경쟁력 문제로 이어지는 거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초등생부터 입시경쟁… ‘순치형’ 대학생만 양산
공교육 정상화 위해 ‘시험맞춤형’공부 지양해야 - 수능 성적이 공개된 건 1993년 시행 이후 처음이다. 이번 성적 공개를 어떻게 보나. 큰 틀에서 봐야 한다. 이번 공개에는 경제학적으로 교육에 접근하려는 밑그림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 기조는 ‘시험’ 더하기 ‘공시 정책’이다. 학교의 질을 평가하는 건 시험 점수고, 이 점수를 공개해야만 학교가 책무성을 다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중요한 건 시험만 강조한 게 아니라 점수를 공개한 것이다. 이건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키우겠다는 거고.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정보를 공개해야만 선택의 준거가 생긴다. 경제학에선 공시가 굉장히 중요하다. 고객에게 상품정보 공개하면 고객은 좋은 정보 쪽의 상품을 산다. 하지만 교육은 상품이 아니잖나. 실제로 밑그림을 그린 정계 인사들 즉, 우리나라 공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그룹은 교육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들이다. 교육 정책에서 교육학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건 고교등급제와 관련이 있다. 지역 간 성적 차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등급제를 하려면 학교별 성적이 공개돼야 한다. 이데올로기적인 전략이다. 학교 간 성적 차가 크다는 말은 그 동안 보수 언론이나 한나라당에서 해오던 이야기들인데 이번 공개를 통해 학교 간 내신 같은 걸 동시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심리적으로 각인시켜준 거다. 정서적 효과를 이용한 셈이다. - 성적 공개도 문제이지만 공개한 정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공교육의 질 향상’에 의미를 주는 자료가 아니라는 의견들인데. 더 구체적으로 분석을 하기 어려운 자료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사회경제적 배경, 부모의 지위 등에 대한 자료가 있어야만 한다. 변인에 대한 분석 없이 성적만으로 분석을 하면 추론만 하게 된다. 결국 성적 중심으로 목표를 세울 수밖에 없는 거다. - 후폭풍에 대한 우려도 많다. 결과적으로 고교서열화, 평준화 폐지 명분이 될 거라는 예상이다. 성적 공개가 우리 교육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보나. 평준화 폐지는 없을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학부모 60% 이상이 평준화를 지지한다. 폐해를 알고 있다. 실제 평준화 지역인 5대 광역시의 임팩트가 강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체제가 없어지진 않을 거다. 결국 엘리트 고등학교를 늘리려는 전략인 것 같다. 이 학교들이 잘 되려면 내신이 불리하지 않아야 한다. 내신이 불리하게 되면 학부모들이 안 보내려고 하니까 대학이 고교를 등급화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줄을 세워서 학교 서열 정보를 대학에 주려는 것이다. 이건 입학사정관제와도 관련이 있다. 입학사정관제가 지금까지는 꽤 성공한 편이었다. 기회균등제 구실로 교육격차를 완화하는 목적이었는데 이게 정시로 들어오면 입학사정관들이 고교 때 성취 정보를 알 수가 없으니 결국 필요한 정보는 수능 점수다. 넓게 볼 때 ‘엘리트 고교’만 육성이 될 거다. 그런 저의가 아니면 수능 성적을 다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 - 교육정보공시제 전반에 대해 찬반 논란이 있어 왔다. 교육 정보를 공개할 때 무엇을 기준,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나. 교육정보 공개를 전적으로 나쁘게 보진 않는다. 학교교육계획서에서부터 중도탈락률, 청소년 비행 등이 다 공개된다. 그런 건 좋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장애인 시설이 있는지, 특수반이 있는지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다. 단, 학업성취도 정보 공개는 반대다. 학부모들이 학교 선택 때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게 학업성취도 정보다. ‘전략적 행위자’는 ‘이기적 행위자’라고도 부르는데 학부모들이 그렇다. 내 자녀가 조금이라도 유리해야 한다는 태도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니까 도덕적으로 비판하긴 어렵다. 현 정부가 머리를 잘 쓴다고 본다. 수능 성적 공개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잘 아는 것이다. 시민들을 의도적으로 심한 경쟁자로 만들어버린다. 학업성취 정보를 공시하기 위해 다른 모든 교육정보 공시를 하는 거 같다. - 애초 수능성적 공개의 명분은 ‘공교육 경쟁력과 질 향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성적 공개는 의도에 맞는 공개도 아니거니와 대안이 없다고 비판받는다. 공교육의 질이 향상되려면 어떤 방법들이 필요하다고 보나. 교육 목표대로 가면 된다. 시험이나 경쟁을 목표로 두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개선할 점도 여전히 있지만 초등학교 교육이 상당히 나아졌다. 석차와 중학교 입시 경쟁이 사라진 덕이다. 고입 경쟁이 치열해지면 공교육이 비정상화한다. 고교 교육의 문제는 대입 때문에 생기지 않았나. 시험 맞춤형 공부를 하는 게 문제다. 시험 자체를 다 없애자는 얘기는 아니다. 중학교의 경우 과목별 석차를 내지 말고, 교사별 평가 등을 하는 방법이 있을 거다. 고교 교육은 대입 때문에 정상화가 어려울 수 있지만 중학교까지는 가능하다고 본다. 최소 9년 동안 시험 맞춤형 공부를 안 하게 하는 게 공교육 정상화라고 본다. 교육 목표에 ‘주입식’, ‘획일식’이라는 말은 없다. 창의적 인재, 배려하는 인간, 자기존엄성을 추구하는 인재 등이 목표로 적혀 있을 거다.(웃음) - 수능 시험 자체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수능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의견들이 있다. 이번에 성적이 공개된 수능시험은 과연 유효성이 있을까. 수능, 내신, 논술 중에서 수능이 가장 마지막에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입학관리가 안 되는 대학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 쪽이 출제, 평가, 채점, 사정을 해서 합격자 발표하는 가운데에 입시 부정도 우려된다. 미국 SAT처럼 에티튜드(Aptitude) 즉, ‘적성’을 보는 시험으로 바뀌면 시험이 쉬워진다. 근데 이렇게 되면 변별력이 없어져서 본고사가 부활된다고들 이야기하지 않나. 공교육이 대학별 본고사 대비를 하는 건 수능 대비보다 더 어렵다. 사교육 시장은 더 늘어날 거고, 그래서 이 부분 역시 딜레마다.
경희대 교육학과 성열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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