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민중은 탈춤을 통해 신분제도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해학과 풍자로 양반의 잘못을 비판하는 탈춤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말 논술
과목별 논술교과서 [난이도 수준-중2~고1]
15. 경제 교과서로 논술 접근하기
16. 국어 교과서로 논술 접근하기
17. 전통윤리 교과서로 논술 접근하기 ■ 교과서 읽기
논점 1. <봉산탈춤>과 민중의식 제6과장 양반춤 말뚝이:(벙거지를 쓰고 채찍을 들었다.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양반 3형제를 인도하여 등장) 양반 3형제:(말뚝이 뒤를 따라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점잔을 피우나, 어색하게 춤을 추며 등장. 양반 3형제 맏이는 샌님(생원), 둘째는 서방님(서방), 끝은 도련님(도령)이다. 샌님과 서방님은 흰 창옷에 관을 썼다. 도련님은 남색 쾌자에 복건을 썼다. 샌님과 서방님은 언청이이며(샌님은 언청이 두 줄, 서방님은 한 줄이다.), 부채와 장죽을 가지고 있고, 도련님은 입이 삐뚤어졌고, 부채만 가졌다. 도련님은 일절 대사는 없으며, 형들과 동작을 같이 하면서 형들의 면상을 부채로 때리며 방정맞게 군다.)
말뚝이:(가운데쯤에 나와서) 쉬이. (음악과 춤 멈춘다.) 양반 나오신다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를 다 지낸 퇴로 재상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아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자 쓴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 양반들: 야아, 이놈, 뭐야아! 말뚝이: 아, 이 양반들, 어찌 듣는지 모르갔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 다 지내고 퇴로 재상으로 계신 이 생원네 3형제분이 나오신다고 그리 하였소. 양반들: (합창) <이 생원이라네.> (굿거리장단으로 모두 춤을 춘다. 도령은 때때로 형들의 면상을 치며 논다. 끝까지 그런 행동을 한다.) (중략) 생원: 이놈, 너도 양반을 모시지 않고 어디로 그리 다니느냐? 말뚝이: 예에, 양반을 찾으려고 찬밥 국 말어 일조식(日早食)하고, 마구간에 들어가 노새 원님을 끌어다가 등에 솔질을 솰솰 하여 말뚝이님 내가 타고 서양 영미, 법덕, 동양3국 무른 메주 밟듯 하고, 동은 여울이요 서는 구월이라, 동여울 서구월 남드리 북향산 방방곡곡 면면촌촌이, 바위 틈틈이 모래 쨈쨈이, 참나무 결결이 다 찾아다녀도 샌님 비뚝한 놈도 없습디다. - 고등학교 <국어 상> 어떻게 읽을까? 봉산탈춤은 크게 7과장으로 나뉘는데, 그것은 제1과장 사상좌춤, 제2과장 팔목중(팔먹중)춤, 제3과장 사당춤, 제4과장 노장춤, 제1경 신장수놀음, 제2경 취발이놀음, 제5과장 사자춤, 제6과장 양반춤, 제7과장 미얄춤 등이 된다. 이 중에서 제6과장인 양반춤이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제6과장인 양반춤은 주로 말뚝이와 양반 3형제와의 재담으로 이루어진다. 말뚝이는 새처를 정하는 놀이, 시조짓기와 파자(破字)놀이, 나랏돈 잘라먹은 취발이를 잡아오는 과정 등을 통해 해학과 풍자로 양반들을 신랄하게 욕보이는 인물이다. 양반의 시중을 드는 하인의 신분인 그가 오히려 양반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이러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당시의 신분 제도를 감안하면 파격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깊이 이해하려면 당시의 시대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한다. 봉산탈춤이 연행됐던 시기는 중세의 질서가 붕괴하던 18세기로 추정된다. 당시는 상업의 발달에 따라 상공업에 종사하던 중인 계층의 지위가 높아지고 있었고, 실학과 외래 문명의 수용에 따라 근대의 시민 의식이 성장했다. 양반의 권위는 떨어졌고, 봉산탈춤과 같은 형식으로 이들에 대한 비판이 이뤄졌다. 이는 그 시기에 있었던 양반들의 잘못이 원인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왔던 지배계층의 횡포에 대한 불만이 시민 의식의 성장에 힘입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대 상황과 함께 작품의 형식적 측면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봉산탈춤은 ‘재담’이라는 독특한 구조인데, 이는 ‘양반의 위엄 → 양반의 위엄을 무시하는 말뚝이의 조롱 → 말뚝이를 꾸짖는 양반의 호령(질책) → 양반을 안심시키려는 말뚝이의 변명 → 양반의 안심’으로 구성된다. 이런 형식은 양반에 대한 풍자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들은 다양한 논제에 적용될 수 있다. 탈춤이 민중의 불만을 표출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언론의 역할’과 관련지을 수 있으며,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는 자유로운 공연이라는 점에서는 ‘대중문화의 기능’과 관련지을 수 있다.
■ 교과 심화 봉산탈춤 탈춤이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가면으로 얼굴이나 머리 전체를 가리고 다른 인물, 동물 또는 초자연적 존재(신) 등으로 분장한 후 음악에 맞추어 춤과 대사로써 연극하는 것을 말한다. 탈춤은 조선 전기까지 각 지방에서 행해지던 가면놀이이다.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궁중의 관장하에 ‘산대’라 불리는 무대에서 공연되던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의 형태로, 인종 12년(1634)에 궁중에서 상연이 폐지되자 민중에게 유입되어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봉산탈춤은 약 200년 전부터 매년 단오와 하짓날 밤에 행해졌다. 놀이는 4상좌춤·8목중춤·사당춤·노장춤·사자춤·양반춤·미얄춤의 7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민들의 가난한 삶과 양반에 대한 풍자,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일부다처제로 인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횡포를 보여준다. - 문화재청 조선시대 신분제의 동요 조선 사회는 법제적으로 양천제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양반, 중인, 상민, 노비의 네 계층으로 분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붕당 정치가 변질되어 가면서 양반 상호간에 일어난 정치적 갈등은 양반층의 분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현상은 일당 전제화가 전개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권력을 장악한 일부의 양반을 제외한 다수의 양반들이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양반 계층의 자기 도태 현상이 날로 심화되는 속에서도 양반의 수는 더욱 늘어나고 상민과 노비의 숫자는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부를 축적한 농민들이 지위를 높이기 위하여 또는 역의 부담을 모면하기 위하여 양반 신분을 사거나 족보를 위조하여 양반으로 행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에는 신분 변동이 활발해져 양반 중심의 신분 체제가 크게 흔들렸다. - 고등학교 <국사>
■ 논제 해결 양반에 대한 풍자와 그 파급효과 제시문 (가)를 참고로 해, (나)에서 양반에 대한 풍자가 이뤄지는 양상과 풍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해 서술하시오. (500자 안팎) (가) 풍자는 사실 부분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희극에서 유래했지만 고대 로마인들, 특히 1세기의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는 자신이 풍자를 고안했다고 주장했다. 원래 풍자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지만 음미할 만한 줄거리가 거의 없는 미숙한 형태의 연극이었으며, 이 연극은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풍자는 운문이나 산문처럼 딱딱한 전달 형식이 아니라 평소에 말할 때의 자연스러운 말투로 발달했고, 그리하여 시와 일상 언어, 우화와 기록문화, 대화와 독백에서 모두 가능하게 되었다. 20세기의 나이트클럽 같은 데서 공연되는 익살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 장르의 초기 형태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풍자라는 단어가 1960년 무렵부터 서양에서 다시 널리 쓰이게 되었을 때(그 이전의 영국과 미국 평론가들은 대체로 이 용어를 시대에 뒤떨어져 있거나 고풍스러운 말로 생각했음), 영국의나 미국의 같은 텔레비전 쇼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촌극과 개그, 노래 및 춤(풍자는 원래 거의 이런 형식으로 제시되었음)으로 신랄하고 무질서하며 변화무쌍한 오락 수단을 제공했다. 20세기 영국의 시인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는 풍자 작가들이 고고한 입장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비판한다고 주장해도 결국에는 단순한 화풀이로 끝나기가 쉽다는 점을 지적했다. 1세기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와 18세기 아일랜드의 소설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흔히 그 대표적인 보기로 간주된다(→ 유베날리스 풍자). 그런 경우 풍자는 희극과 비극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BC 1세기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훨씬 더 온건한 어조로 풍자시를 썼고, 제인 오스틴은 어릴 때 쓴 <사랑과 우정>(Love and Friendship) 같은 작품에서 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호라티우스 풍자).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람은 분노가 아니라 웃음으로 남을 죽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체주의 정부 시대에 스탈린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숙청당한 러시아의 시인 오시프 만델스탐의 경우처럼 풍자는 남을 죽이는 대신 자신에게 파멸을 가져올 가능성이 더 많다. 서양에서는 영국의 전직 총리인 알렉 더글러스 홈 경이 1963~64년 자신의 내각이 무너진 원인을 1960년대 초에 유행한 풍자 탓으로 돌린 적이 있다. - 브리태니커 백과
(나) 위의 ‘교과서 읽기’ 가운데 “말뚝이:(가운데쯤에 나와서) 쉬이. (음악과 춤 멈춘다.) 양반 나오신다아! 양반이라고 하니까~”에서부터 “<이 생원이라네.> (굿거리장단으로 모두 춤을 춘다. 도령은 때때로 형들의 면상을 치며 논다. 끝까지 그런 행동을 한다.)”까지 생략.
말뚝이: 쉬이. (반주 그친다.) 여보, 구경하시는 양반들, 말씀 좀 들어 보시오. 짤따란 곰방대로 잡숫지 말고 저 연죽전으로 가서 돈이 없으면 내게 기별이래도 해서 양칠간죽, 자문죽을 한 발 가옷씩 되는 것을 사다가 육모깍지 희자죽 오동수복 연변죽을 사다가 이리저리 맞추어 가지고 저 재령 나무리 거의 낚시 걸듯 죽 걸어 놓고 잡수시오.
양반들: 뭐야아!
말뚝이: 아, 이 양반들, 어찌 듣소. 양반 나오시는데 담배와 훤화를 금하라고 그리하였소.
양반들: (합창) <훤화를 금하였다네.> (굿거리장단으로 모두 춤을 춘다.)
말뚝이: 쉬이. (춤과 반주 그친다.) 여보, 악공들 말씀 들으시오. 오음 육률 다버리고 저 버드나무 홀뚜기 뽑아다 불고 바가지 장단 좀 쳐 주오.
양반들: 야아, 이놈, 뭐야!
말뚝이: 아, 이 양반들, 어찌 듣소, 용두 해금, 북, 장고, 피리, 젓대 한 가락도 뽑지 말고 건 건드러지게 치라고 그리하였소.
양반들: (합창) <건 건드러지게 치라네.> (굿거리장단으로 춤을 춘다.) - 고등학교 <국어 상>
◎ 해결 방향 풍자는 주로 문학이나 연극에서 사회 또는 개인의 악덕·모순·어리석음·결점 따위를 비웃음, 조롱, 익살스러운 모방, 반어법 등 여러 방법으로 비난하거나 때로는 개선하기 위한 의도로 쓰는 예술 형식이다. 제시문 (나)에서는 탈춤이라는 민속극 형식으로 당시 사회의 지배계층이었던 양반을 풍자하고 있다. 논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나)의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 (나)를 살펴보면 풍자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말뚝이‘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뚝이는 표면적으로는 양반의 하인이지만 정신적으로 양반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말뚝이가 먼저 양반을 허위와 권위를 실컷 조롱하면, 양반은 위엄을 부리며 말뚝이를 꾸짖는다. 그러면 말뚝이는 그것이 아니라고 변명을 하게 되고, 양반은 안심하며 합창으로 기분 좋게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런 구조가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양반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아도취의 상태에 빠져 있고, 관객은 말뚝이와 같은 정신적 위치에서 양반을 실컷 비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최하층민에 속하는 말뚝이의 신분과 지극히 평범한 모습은 풍자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풍자의 효과는 다양하게 서술될 수 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를 유발해 사회적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방향으로 서술될 수도 있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당시의 실추된 양반들의 권위를 더욱 끌어내려 향후 신분제 붕괴를 위한 움직임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서술될 수도 있다.
◎ 자료 검색 말뚝이 전승되는 가면극에 두루 등장하는 가장 보편화된 인물. 북청사자놀음에만 ‘꼭쇠(꺽쇠)’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말뚝이는 그 명칭이 보여주듯 천한 이름을 가진 하인으로서, 자기가 모시고 다니는 양반들을 풍자한다. 이런 양반에 대한 풍자는 조선 후기의 여러 문학장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가면극의 말뚝이가 가장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풍자의 주체로 나타나고 있다. 판소리에서의 ‘방자’(房子) 역시 말뚝이와 비슷한 구실을 하지만 말뚝이에 비해 풍자의 정도가 약하다. 즉, 방자는 양반 개인의 관념적 허위성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풍자하지만, 말뚝이는 양반 개인의 관념적 허위성 뒤에 있는 봉건적 질서까지 비판하며 직접적이고 신랄한 풍자를 한다. 이런 풍자를 통해 가면극의 희극미(喜劇美)를 창출해내며 성장하는 민중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전형(典型)으로서의 말뚝이가 모든 가면극에 존재한다는 것은 말뚝이와 양반 사이의 갈등 체계로 상징되는 전형화된 갈등의 체계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즉, 말뚝이는 조선 후기의 역사적 단계에 대응되는 독특한 기능을 가진 하나의 전형으로 나타난 것이다. 가면극의 주제와 사회의식 양반은 모든 가면극에서 반드시 등장하는데, 양반에 대한 풍자의 방식이 다양하다. 우선, 양반의 가면이 이지러져 있거나 병신으로 돼 있는 부정적 인물임을 나타낸다. 특히, 야유와 오광대에서는 여러 가지 병신 모습의 양반들이 다수 등장하여 자기들끼리 지체를 다투면서 서로의 약점을 폭로한다. 그리고 영노라는 괴물(용)이 나와 양반을 잡아먹겠다고 덤비는데, 이 과정에서 양반은 더럽고 추악한 대상으로 비유되면서 권위와 체통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여러 가면극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며 가장 내용이 풍부하고 효과적인 양반 풍자의 방식은 말뚝이라는 민중적 항거의 전형적 인물에 의하여 진행된다. 말뚝이는 양반에게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실질적으로 양반들을 우스꽝스러운 바보로 비하시킨다. -전경욱, <민속극>
16. 국어 교과서로 논술 접근하기
17. 전통윤리 교과서로 논술 접근하기 ■ 교과서 읽기
논점 1. <봉산탈춤>과 민중의식 제6과장 양반춤 말뚝이:(벙거지를 쓰고 채찍을 들었다.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양반 3형제를 인도하여 등장) 양반 3형제:(말뚝이 뒤를 따라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점잔을 피우나, 어색하게 춤을 추며 등장. 양반 3형제 맏이는 샌님(생원), 둘째는 서방님(서방), 끝은 도련님(도령)이다. 샌님과 서방님은 흰 창옷에 관을 썼다. 도련님은 남색 쾌자에 복건을 썼다. 샌님과 서방님은 언청이이며(샌님은 언청이 두 줄, 서방님은 한 줄이다.), 부채와 장죽을 가지고 있고, 도련님은 입이 삐뚤어졌고, 부채만 가졌다. 도련님은 일절 대사는 없으며, 형들과 동작을 같이 하면서 형들의 면상을 부채로 때리며 방정맞게 군다.)
말뚝이:(가운데쯤에 나와서) 쉬이. (음악과 춤 멈춘다.) 양반 나오신다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를 다 지낸 퇴로 재상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아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자 쓴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 양반들: 야아, 이놈, 뭐야아! 말뚝이: 아, 이 양반들, 어찌 듣는지 모르갔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 다 지내고 퇴로 재상으로 계신 이 생원네 3형제분이 나오신다고 그리 하였소. 양반들: (합창) <이 생원이라네.> (굿거리장단으로 모두 춤을 춘다. 도령은 때때로 형들의 면상을 치며 논다. 끝까지 그런 행동을 한다.) (중략) 생원: 이놈, 너도 양반을 모시지 않고 어디로 그리 다니느냐? 말뚝이: 예에, 양반을 찾으려고 찬밥 국 말어 일조식(日早食)하고, 마구간에 들어가 노새 원님을 끌어다가 등에 솔질을 솰솰 하여 말뚝이님 내가 타고 서양 영미, 법덕, 동양3국 무른 메주 밟듯 하고, 동은 여울이요 서는 구월이라, 동여울 서구월 남드리 북향산 방방곡곡 면면촌촌이, 바위 틈틈이 모래 쨈쨈이, 참나무 결결이 다 찾아다녀도 샌님 비뚝한 놈도 없습디다. - 고등학교 <국어 상> 어떻게 읽을까? 봉산탈춤은 크게 7과장으로 나뉘는데, 그것은 제1과장 사상좌춤, 제2과장 팔목중(팔먹중)춤, 제3과장 사당춤, 제4과장 노장춤, 제1경 신장수놀음, 제2경 취발이놀음, 제5과장 사자춤, 제6과장 양반춤, 제7과장 미얄춤 등이 된다. 이 중에서 제6과장인 양반춤이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제6과장인 양반춤은 주로 말뚝이와 양반 3형제와의 재담으로 이루어진다. 말뚝이는 새처를 정하는 놀이, 시조짓기와 파자(破字)놀이, 나랏돈 잘라먹은 취발이를 잡아오는 과정 등을 통해 해학과 풍자로 양반들을 신랄하게 욕보이는 인물이다. 양반의 시중을 드는 하인의 신분인 그가 오히려 양반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이러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당시의 신분 제도를 감안하면 파격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깊이 이해하려면 당시의 시대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한다. 봉산탈춤이 연행됐던 시기는 중세의 질서가 붕괴하던 18세기로 추정된다. 당시는 상업의 발달에 따라 상공업에 종사하던 중인 계층의 지위가 높아지고 있었고, 실학과 외래 문명의 수용에 따라 근대의 시민 의식이 성장했다. 양반의 권위는 떨어졌고, 봉산탈춤과 같은 형식으로 이들에 대한 비판이 이뤄졌다. 이는 그 시기에 있었던 양반들의 잘못이 원인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왔던 지배계층의 횡포에 대한 불만이 시민 의식의 성장에 힘입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대 상황과 함께 작품의 형식적 측면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봉산탈춤은 ‘재담’이라는 독특한 구조인데, 이는 ‘양반의 위엄 → 양반의 위엄을 무시하는 말뚝이의 조롱 → 말뚝이를 꾸짖는 양반의 호령(질책) → 양반을 안심시키려는 말뚝이의 변명 → 양반의 안심’으로 구성된다. 이런 형식은 양반에 대한 풍자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들은 다양한 논제에 적용될 수 있다. 탈춤이 민중의 불만을 표출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언론의 역할’과 관련지을 수 있으며,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는 자유로운 공연이라는 점에서는 ‘대중문화의 기능’과 관련지을 수 있다.
■ 교과 심화 봉산탈춤 탈춤이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가면으로 얼굴이나 머리 전체를 가리고 다른 인물, 동물 또는 초자연적 존재(신) 등으로 분장한 후 음악에 맞추어 춤과 대사로써 연극하는 것을 말한다. 탈춤은 조선 전기까지 각 지방에서 행해지던 가면놀이이다.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궁중의 관장하에 ‘산대’라 불리는 무대에서 공연되던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의 형태로, 인종 12년(1634)에 궁중에서 상연이 폐지되자 민중에게 유입되어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봉산탈춤은 약 200년 전부터 매년 단오와 하짓날 밤에 행해졌다. 놀이는 4상좌춤·8목중춤·사당춤·노장춤·사자춤·양반춤·미얄춤의 7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민들의 가난한 삶과 양반에 대한 풍자,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일부다처제로 인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횡포를 보여준다. - 문화재청 조선시대 신분제의 동요 조선 사회는 법제적으로 양천제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양반, 중인, 상민, 노비의 네 계층으로 분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붕당 정치가 변질되어 가면서 양반 상호간에 일어난 정치적 갈등은 양반층의 분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현상은 일당 전제화가 전개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권력을 장악한 일부의 양반을 제외한 다수의 양반들이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양반 계층의 자기 도태 현상이 날로 심화되는 속에서도 양반의 수는 더욱 늘어나고 상민과 노비의 숫자는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부를 축적한 농민들이 지위를 높이기 위하여 또는 역의 부담을 모면하기 위하여 양반 신분을 사거나 족보를 위조하여 양반으로 행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에는 신분 변동이 활발해져 양반 중심의 신분 체제가 크게 흔들렸다. - 고등학교 <국사>
■ 논제 해결 양반에 대한 풍자와 그 파급효과 제시문 (가)를 참고로 해, (나)에서 양반에 대한 풍자가 이뤄지는 양상과 풍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해 서술하시오. (500자 안팎) (가) 풍자는 사실 부분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희극에서 유래했지만 고대 로마인들, 특히 1세기의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는 자신이 풍자를 고안했다고 주장했다. 원래 풍자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지만 음미할 만한 줄거리가 거의 없는 미숙한 형태의 연극이었으며, 이 연극은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풍자는 운문이나 산문처럼 딱딱한 전달 형식이 아니라 평소에 말할 때의 자연스러운 말투로 발달했고, 그리하여 시와 일상 언어, 우화와 기록문화, 대화와 독백에서 모두 가능하게 되었다. 20세기의 나이트클럽 같은 데서 공연되는 익살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 장르의 초기 형태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풍자라는 단어가 1960년 무렵부터 서양에서 다시 널리 쓰이게 되었을 때(그 이전의 영국과 미국 평론가들은 대체로 이 용어를 시대에 뒤떨어져 있거나 고풍스러운 말로 생각했음), 영국의
◎ 해결 방향 풍자는 주로 문학이나 연극에서 사회 또는 개인의 악덕·모순·어리석음·결점 따위를 비웃음, 조롱, 익살스러운 모방, 반어법 등 여러 방법으로 비난하거나 때로는 개선하기 위한 의도로 쓰는 예술 형식이다. 제시문 (나)에서는 탈춤이라는 민속극 형식으로 당시 사회의 지배계층이었던 양반을 풍자하고 있다. 논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나)의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 (나)를 살펴보면 풍자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말뚝이‘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뚝이는 표면적으로는 양반의 하인이지만 정신적으로 양반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말뚝이가 먼저 양반을 허위와 권위를 실컷 조롱하면, 양반은 위엄을 부리며 말뚝이를 꾸짖는다. 그러면 말뚝이는 그것이 아니라고 변명을 하게 되고, 양반은 안심하며 합창으로 기분 좋게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런 구조가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양반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아도취의 상태에 빠져 있고, 관객은 말뚝이와 같은 정신적 위치에서 양반을 실컷 비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최하층민에 속하는 말뚝이의 신분과 지극히 평범한 모습은 풍자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풍자의 효과는 다양하게 서술될 수 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를 유발해 사회적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방향으로 서술될 수도 있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당시의 실추된 양반들의 권위를 더욱 끌어내려 향후 신분제 붕괴를 위한 움직임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서술될 수도 있다.
◎ 자료 검색 말뚝이 전승되는 가면극에 두루 등장하는 가장 보편화된 인물. 북청사자놀음에만 ‘꼭쇠(꺽쇠)’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말뚝이는 그 명칭이 보여주듯 천한 이름을 가진 하인으로서, 자기가 모시고 다니는 양반들을 풍자한다. 이런 양반에 대한 풍자는 조선 후기의 여러 문학장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가면극의 말뚝이가 가장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풍자의 주체로 나타나고 있다. 판소리에서의 ‘방자’(房子) 역시 말뚝이와 비슷한 구실을 하지만 말뚝이에 비해 풍자의 정도가 약하다. 즉, 방자는 양반 개인의 관념적 허위성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풍자하지만, 말뚝이는 양반 개인의 관념적 허위성 뒤에 있는 봉건적 질서까지 비판하며 직접적이고 신랄한 풍자를 한다. 이런 풍자를 통해 가면극의 희극미(喜劇美)를 창출해내며 성장하는 민중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전형(典型)으로서의 말뚝이가 모든 가면극에 존재한다는 것은 말뚝이와 양반 사이의 갈등 체계로 상징되는 전형화된 갈등의 체계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즉, 말뚝이는 조선 후기의 역사적 단계에 대응되는 독특한 기능을 가진 하나의 전형으로 나타난 것이다. 가면극의 주제와 사회의식 양반은 모든 가면극에서 반드시 등장하는데, 양반에 대한 풍자의 방식이 다양하다. 우선, 양반의 가면이 이지러져 있거나 병신으로 돼 있는 부정적 인물임을 나타낸다. 특히, 야유와 오광대에서는 여러 가지 병신 모습의 양반들이 다수 등장하여 자기들끼리 지체를 다투면서 서로의 약점을 폭로한다. 그리고 영노라는 괴물(용)이 나와 양반을 잡아먹겠다고 덤비는데, 이 과정에서 양반은 더럽고 추악한 대상으로 비유되면서 권위와 체통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여러 가면극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며 가장 내용이 풍부하고 효과적인 양반 풍자의 방식은 말뚝이라는 민중적 항거의 전형적 인물에 의하여 진행된다. 말뚝이는 양반에게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실질적으로 양반들을 우스꽝스러운 바보로 비하시킨다. -전경욱, <민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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