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 인터뷰 /
참여정부 교육혁신위원회, 김민남 전 경북대 교수
열강이었다. 예순일곱의 노교수는 책상을 꽝꽝 치며 ‘교육 개혁론’을 강의했다. 감기 기운으로 칼칼한 목소리는 답답한 교육 현실을 말할 때 날이 섰다. 김민남 전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를 만난 지난 2일, 서울에는 어두컴컴한 하늘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꽂혔다. 교육에 대한 선의를 외면당했던 경험을 쏟아내던 그의 표정은 꼭 그 하늘을 닮아 있었다.
김민남 교수는 2003년 발족한 교육혁신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학교교육, 고등교육인적자원, 직업교육, 교육분권자치, 특별전문위원회 등 5개 전문위원회 가운데 학교교육전문위원회에서 실무를 맡았다. 전문위원은 위원장 격이다. 그는 학교교육전문위원회에서 수능과 내신의 9등급제 등을 뼈대로 하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의 기틀을 닦았다. ‘저주받은 89년생’과 ‘죽음의 트라이앵글’ 등의 유행어를 쏟아낸 바로 그 입시제도의 개선안이다.
그러나 김민남 교수는 ‘2008학년도 입시제도 개선안’에 대해 “애초에 교육 개혁에 대해 지녔던 문제의식이 조각난 채로 발표됐다”고 말했다. 내신등급제, 수능등급제 등의 논란은 이미 누더기가 된 개선안의 필연적인 결과였다는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뒤 ‘미완의 업적’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다. 김민남 교수를 만난 이유는 ‘노무현 교육’의 큰 축이었던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다시 보기 위함이다.
2008년 대입제도 개선안을 둘러싼 사회적 파장이 컸다. 특히 수능등급제는 시행 첫해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수능 성적을 9등급으로 표기하려 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능의 위력을 경감하고자 했다. 사실 처음에는 수능을 완전히 폐지하려고 했다. 우리나라 교육이 ‘파행’에 이르게 된 원인이 국가가 치르는 시험제도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험에 학교가 종속되다 보니 학교 고유의 교육활동은 실종되고 온통 문제풀이식 수업을 하는데 이게 교육적 ‘파행’이다. 문제풀이가 어떻게 ‘교육’이 될 수 있나.
문제풀이식 수업은 아이들의 유능과 무능, 성실과 불성실을 가려내는 작업으로 교육의 의미를 축소한다. 가르치는 학교나 교사의 책임은 온데간데없고 교육의 책임은 오로지 학생이 지는 모양새다. 시험은 원래 시험(test)의 의미도 있지만 유혹(temptation)의 의미도 있다. 학생들이 시험에서 저지르는 부정행위를 지탄하는데 시험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한데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느냐.
교육이 시험으로 축소되다 보니 우리나라는 교육의 타당성 개념보다 공정성, 객관성을 더 내세운다. 공정성, 객관성이라는 것도 고작해야 시험 ‘관리’의 공정성, 객관성이다. 이제는 무엇이 교육적으로 옳은가를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회원들이 2007년 7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합의한 학생부 반영비율에 대해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럼 당시에 수능을 폐지하는 대신 대안으로 마련한 게 있었나?
“교육과정 완성도평가를 만들려고 했다. 학교와 교사가 정말로 자체의 교육과정을 운영한 결과를 평가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 학생들의 성취도는 평가가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교육의 책임을 아이들의 유능과 성실에 묻지 않고 학교와 교사한테 묻겠다는 취지였다.
학교와 교사의 구실은 시험 환경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위협하거나 유혹할 게 아니라 학습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나 못하는 학생이나 장애 학생이나 비장애 학생이나 누구나 무엇을 얻어갈 수 있도록 교사들이 교육활동을 기획하라는 것이다. 이런 게 참여정부, 교육혁신위원회가 갖고 있었던 교육에 대한 철학이었다.”
그런데 왜 교육과정 완성도평가에서 등급제로 바뀐 것인가?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매우 소수였다. 반대하는 이들은 이런 식으로는 국가경쟁력에 보탬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머릿속에 온통 우수한 아이들, 수능 점수 잘 받는 아이들을 위한 소수 중심의 교육체제에 대한 생각뿐인 그들이 조금 무섭기도 했다. 수능 못 보는 애들은 그냥 배치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우리나라 지식인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절망스럽기도 했다.”
내신 등급제도 문제가 됐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노트를 훔치고 빼앗는 비교육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학생부 관련 개선안의 핵심은 내신 등급제가 아니다. 현재 학생부에는 학생의 점수만 기록하는데 모든 교육의 책임을 학생한테 지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학교와 교사가 학생들한테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는지, 그들의 성장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모두 기록해야 한다고 봤다. 학교의 노력과 학생의 노력을 똑같이 기록하는 것이다. 이런 전체적인 틀이 갖춰져야 내신 성적에 대한 비중이 줄고 상대평가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아이디어가 모두 맞물려 갔어야 하는데 다 빠지고 상대평가만 남으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거다.”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입학사정관제다.
“학생부에 교사별 평가와 학교 교육 활동에 대한 기록이 더해지면 계량화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 입학사정관제는 그 내용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reader)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도입됐다.
사정관제는 서두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장은 서울대 입학정원의 5%만이라도 입학사정관이 뽑아 그 결과를 백서로 만들어 공개하려고 했다. 기왕의 기계적 처리 방식으로 뽑힐 수 없는 학생들이 입학사정관제에 의해서 합격한 결과를 모두 모아 선발의 근거를 상세하게 백서 등의 보고서 형태로 국민들한테 공개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교사들도 교육과정 운영의 아이디어를 얻고 점차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식은 다 죽고 수능등급제만 크게 부각이 됐다.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는 이런 통합된 기조가 조각났다.”
개선안의 핵심은 1%가 아닌 99%를 위한 교육인데 이런 게 제대로 홍보가 됐다면 학부모들이 지지했을 것 같다.
“당시에 일하면서 느낀 게 우리 사회에서 홍보는 결국 언론이 한다. 청와대 홈페이지, 공청회, 토론회 다 소용없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교육을 공정성, 객관성, 변별력이라는 고정된 프레임으로 다룬다. 변별력이 있었다, 없었다가 기사가 되는 현실에서 이런 교육 패러다임이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다. 사실 변별력은 통계학적 개념이지 교육학적인 개념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교육을 특히 변별력으로 재단하는데, 너무 내용이 없다.
교육 관료들의 문제도 지적하고 싶다. 우리나라 교육 관료들은 현장을 믿지 않는다. 오랜 세월 교육 현장을 관리해오면서 현장의 자율성에 대한 신뢰가 없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변별력 등을 중시하는 소수를 위한 교육 패러다임이 흥한 이유는 뭘까?
“교육적인 관점으로 보면 나는 “좋은 자식 뒤에 좋은 부모가 있다”는 ‘지배문화’ 탓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미국 아이비리그의 다트머스 대학 총장으로 우리나라 김용 교수가 선출됐다. 신문을 봤더니 하나같이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꼽았더라.
우리나라는 마치 모든 성공의 뒤에는 어머니가 있었던 것처럼 포장한다. 그러면 모든 실패의 뒤에도 어머니가 있는 건가? 모든 성공을 어머니의 지원으로 설명하는 논리는 이렇게 거칠게 치환될 수 있다. 이런 철없는 논리를 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 교사들도 ‘우리 학교는 가정 환경이 안 좋은 애들이 많아서’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좋은 가정의 좋은 학생 뽑으면 교육은 절로 된다는 생각들을 하는 거다. 왜 교육의 책임을 학생의 부모한테 미루냐. 이거 정말 슬픈 얘기다. 학교가 나서서 학생한테 학습 환경을 만들어 줄 생각은 안 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창의성, 공동체 의식 등 인재상을 이루는 내용도 달라지는 것 같은데 이런 측면에서 우리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면?
“우리는 현재 국가통제의 교육이다. 주민통제의 교육, 민중통제의 교육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문가통제의 교육을 말하고 싶다. 여기서 전문가는 교육전문가, 즉 학교와 교사다. 학교와 교사에 의해 통제되는 교육이란, 학교와 교사가 시험제도나 입시제도에 휘둘리지 않고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학교와 교사가 교육의 과정과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이런 걸 전제로 교사들은 최소한의 교육 여건을 주장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교원단체는 교육의 책임보다 교육의 여건을 앞세운 측면이 있다. 책임을 최대화하고 여건에 대한 주장을 최소화하라.
또 하나는 진짜 인재를 기르려면 다양한 학력을 계발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시험 문제를 잘 푼다는 의미의 학력 개념뿐이었다. 이런 학력으로는 창의성 있는 인재 못 기른다. 장기적으로 나라를 생각한다면 성적 말고도 다른 기준으로 학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을 길러내야 한다.”
대구/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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