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의 우리말 탄생과 진화
이재운의 우리말 탄생과 진화 / 23. 조선 말기 이양선을 타고 몰려든 외래어 24. 한글을 일으켜 세워준 성경 번역가들 25. 일제 강점기, 한자의 탈을 쓰고 몰려든 일본어 한글은 1443년 세종 이도가 재위 25년째인 음력 12월에 만들었다. 그 뒤 해례본을 만들고, 이어서 용비어천가·월인천강지곡을 한글로 짓고, 석보상절·월인석보·금강경 등을 한글로 번역했다. 유교경전도 번역했다.
하지만 유림 및 모화주의자들의 강한 반발로 한글은 공용 문자로 쓰이지 못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에서 “법률 칙령은 다 국문으로 본을 삼고 한문 번역을 붙이며, 또는 국한문을 혼용함”이라는 조칙이 발표되면서 겨우 우리 문자로 인정받았다. 무려 450년간 사장돼 있던 한글이 쿠데타나 다름없는 개혁으로 겨우 빛을 본 것이다. 이듬해 1895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유길준은 한글로 쓴 <서유견문>을 발표하고, 1896년에는 순한글 <독립신문>을 발간했다. 그러나 공용 문자와 생활 문자는 한문이었고, 한글 쓰기를 주장하는 유길준 같은 선구자는 격렬한 저항과 반대에 부딪혔다. 이때 등장한 것이 기독교였다. 원래 정조 이산 시기부터 천주교가 들어왔지만 한문 번역본이나 현토본, 발췌본으로 보급됐기 때문에 한글과는 큰 관련이 없었다. 그러던 중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회 목사 존 로스(John Ross)가 심양에서 의주 사람 백홍준, 이응찬, 이성하를 만나 전도를 하면서 이들과 함께 성경 번역에 나섰다. 존 로스는 이들을 통해 조선의 지배계층은 비록 한문을 쓰지만 일반 백성은 한글을 쉽게 배우고 익혀 일상 생활에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상륜, 김청송 두 명이 더 가담한 이 의주인들은 누가복음을 시작으로 요한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까지 차례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존 로스 목사는 이듬해인 1874년에는 한영 회화집을 만들고, 낱권으로 번역된 성경을 납활자로 각 3000권씩 찍어 이를 서간도, 즉 남만주 일대 조선인들에게 배포했다. 이로써 서간도 조선인 75명이 기독교 신자가 되어 존 로스가 직접 세례를 주었다. 1887년에는 신약전서가 출판됐다. 이렇게 한글로 번역된 성경은 은밀하게 압록강을 건너 평안도 일대로 파고들었다. 한문을 읽을 수 없는 여성, 하층민들까지 이 한글 성경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초기 성경 번역자들이 신약성경 27권을 번역한 데 이어 기독교인들이 구약성경 39권까지 총 66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성경을 한글로 번역해낸 사실은 한글 보급 측면에서 보면 비할 수 없이 막중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 66권의 책에 1800년대에 쓰이던 거의 모든 한글 어휘가 총망라됐으니 초기 성경은 곧 우리말 어휘 사전집이나 다름없다. 또 초기 성경 번역본이 보급되면서 맞춤법, 띄어쓰기의 필요성이 생기고, 이후 우리가 쓰는 현대 한국어로 다듬어지는 계기가 됐다. 최초 번역본 성경의 영향으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번역어인 ‘하나님’(God)이 생겨났다. 원래 중국은 상제(上帝)나 천제(天帝), 일본은 가미, 우리나라는 천주(天主), 신(神) 등으로 번역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 번역자들은 순우리말인 ‘하나님’으로 적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쓰는 평안도의 입말을 그대로 적었던 것이다. 이 무렵 서울에서는 아래 ‘ㆍ’가 탈락되었지만 초기 번역에서 ‘하B님’으로 표기되던 이 어휘가 나중에 음가에 가장 가까운 ‘하나님’으로 정리된 것이다.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대표 저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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