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라는 언어를 중심으로 만난 학생들은 시종일관 진지했지만 이 대회를 축제로 즐기며 다른 친구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입시경쟁 체제에서
놀이·축제로 접근 어려워
놀이·축제로 접근 어려워
전세계 학생들이 ‘영어’를 매개로 축제를 펼친다. 스펠링비에 모인 학생들은 ‘친구’와 경쟁하지 않는다. 친구는 동료일 뿐, 이들의 상대는 ‘사전’이다. 건전한 경쟁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스펠링비의 교육적 시사점은 많다.
“사실 우린 오랫동안 올바른 철자교육을 못한 시대를 벗어나 이제 제대로 된 상태로 돌아오는 중입니다. 사회적으로 틀린 철자가 많아 이를 바로잡고 확인하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죠.”
스펠링비 대회장에서 만난 심사위원 에드 로(덴버 메트로폴리탄 주립대 영어학)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의 이야기는 스펠링비가 표준화된 언어를 지키려는 미국인들의 노력 가운데 하나임을 느끼게 했다. 실제 미국에선 인터넷 시대에 철자가 축약되고 잘못 쓰이는 걸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많다. 후원을 맡은 윤선생영어교실 홍보실 박준서 상무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고 표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스펠링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언어 분야에서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을 인재로 키우려는 속뜻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학생들에게 스펠링비 1차 예선은 반 친구들과의 대결이다. 여기서 승자가 된 학생은 승리 여부에 따라 학급별·학교별·지역별로 경기를 치른다. 마지막까지 올라가면 매해 5월 말 열리는 본선대회 진출권을 얻는다. 지역 언론사가 학생을 후원하기 때문에 수도 워싱턴까지 올 돈이 없는 가난한 학생도 참여 가능하다. 지역사회에서 언어 분야 인재를 양성한다는 뜻에서다. 대회 총괄자 페이지 킴블은 “과거 스펠링비 우승자 가운데엔 사회 지도층이 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스펠링비의 교육적 함의는 한국어를 매개로 한 이렇다할 축제 문화가 없는 우리로선 여러모로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엔 왜 이런 축제가 없을까. 국립국어원 국어능력발전과 최혜원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국어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모국어를 매개로 축제를 ‘즐긴다’는 접근보단 ‘공부한다’는 접근을 하는 탓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82년 역사의 스펠링비에 비할 순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싹’은 자라나고 있다. 공영 프랑스3TV의 유명한 받아쓰기 대회 프로그램 <디코 도르>(황금 사전)와 유사한 한국방송의 <우리말 겨루기>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결선에서 탈락한 ‘최연소 토익만점’ 서지원 양 놀이하듯 단어공부…사전 안외웠어요
만 10살에 토익 시험 국내 최연소 만점, 2008년·2009년에 연이어 내셔널(한국 예선) 스펠링비 우승, 2년 연속 스펠링비 결선이 열리는 미국 수도 워싱턴 입성. 서지원(13·고양 한내초 6년)양의 이력을 들으면 자연스레 이런 말이 나온다. “미국 살다 왔겠지.”
예상은 빗나갔다. 서양은 그 흔한 영어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어학연수는 물론이고, 지난해 스펠링비 결선 전까지는 외국 땅을 밟아본 적도 없었다. 어머니 정은성씨는 “아이가 언어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특별한 게 아니라 매일매일 꾸준히 학습한 노력 덕인 것 같다”고 했다.
정씨가 손꼽는 서양의 영어 실력 비결은 ‘정석대로 꾸준하게’였다. 처음부터 영어 원서를 술술 읽고 이해한 건 아니었다. 첫걸음으론 파닉스 학습을 시작했다. 3개월 정도 소리와 철자의 규칙을 익힌 다음엔 수준에 맞춰 영어 원서를 읽었고, 스펠링비와 같은 게임을 통해 단어 공부의 즐거움도 알아갔다.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땐 사전 찾는 습관을 들였다. “그냥 사전부터 찾으면 재미가 없었을 텐데 스펠링비 같은 게임으로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고, 파닉스로 규칙을 발음해 본 다음 사전을 찾아봤어요. 원어민들도 못 읽는 발음이 나오면 인터넷, 사전, 책 자료 등을 찾아보는 취미도 생겼죠.” 단, 사전을 외우지는 않았다. 예문을 술술 읽어내려가면서 단어가 어떤 맥락으로 사용됐는지를 살폈다. 정씨는 “영어를 잘하기 위해선 원서만 많이 읽으면 된다고들 생각하는데 지원이는 원서만큼 우리말로 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며 “기본적인 어원 공부가 됐다면 언어 사용 맥락을 알게 하고, 다양한 지식을 제공하는 다양한 책을 읽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올해 아쉽게 준결승 문턱에 그쳤지만 서 양은 “내년에 또 하면 된다”며 웃었다. 김청연 기자
결선에서 탈락한 ‘최연소 토익만점’ 서지원 양 놀이하듯 단어공부…사전 안외웠어요
서지원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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