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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우리말 ‘스펠링비’대회는 생길 수 없다?

등록 2009-06-07 18:06

‘영어’라는 언어를 중심으로 만난 학생들은 시종일관 진지했지만 이 대회를 축제로 즐기며 다른 친구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영어’라는 언어를 중심으로 만난 학생들은 시종일관 진지했지만 이 대회를 축제로 즐기며 다른 친구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입시경쟁 체제에서
놀이·축제로 접근 어려워
전세계 학생들이 ‘영어’를 매개로 축제를 펼친다. 스펠링비에 모인 학생들은 ‘친구’와 경쟁하지 않는다. 친구는 동료일 뿐, 이들의 상대는 ‘사전’이다. 건전한 경쟁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스펠링비의 교육적 시사점은 많다.

“사실 우린 오랫동안 올바른 철자교육을 못한 시대를 벗어나 이제 제대로 된 상태로 돌아오는 중입니다. 사회적으로 틀린 철자가 많아 이를 바로잡고 확인하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죠.”

스펠링비 대회장에서 만난 심사위원 에드 로(덴버 메트로폴리탄 주립대 영어학)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의 이야기는 스펠링비가 표준화된 언어를 지키려는 미국인들의 노력 가운데 하나임을 느끼게 했다. 실제 미국에선 인터넷 시대에 철자가 축약되고 잘못 쓰이는 걸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많다. 후원을 맡은 윤선생영어교실 홍보실 박준서 상무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고 표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스펠링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언어 분야에서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을 인재로 키우려는 속뜻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학생들에게 스펠링비 1차 예선은 반 친구들과의 대결이다. 여기서 승자가 된 학생은 승리 여부에 따라 학급별·학교별·지역별로 경기를 치른다. 마지막까지 올라가면 매해 5월 말 열리는 본선대회 진출권을 얻는다. 지역 언론사가 학생을 후원하기 때문에 수도 워싱턴까지 올 돈이 없는 가난한 학생도 참여 가능하다. 지역사회에서 언어 분야 인재를 양성한다는 뜻에서다. 대회 총괄자 페이지 킴블은 “과거 스펠링비 우승자 가운데엔 사회 지도층이 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스펠링비의 교육적 함의는 한국어를 매개로 한 이렇다할 축제 문화가 없는 우리로선 여러모로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엔 왜 이런 축제가 없을까. 국립국어원 국어능력발전과 최혜원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국어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모국어를 매개로 축제를 ‘즐긴다’는 접근보단 ‘공부한다’는 접근을 하는 탓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82년 역사의 스펠링비에 비할 순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싹’은 자라나고 있다. 공영 프랑스3TV의 유명한 받아쓰기 대회 프로그램 <디코 도르>(황금 사전)와 유사한 한국방송의 <우리말 겨루기>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결선에서 탈락한 ‘최연소 토익만점’ 서지원 양

놀이하듯 단어공부…사전 안외웠어요

서지원 양
서지원 양
만 10살에 토익 시험 국내 최연소 만점, 2008년·2009년에 연이어 내셔널(한국 예선) 스펠링비 우승, 2년 연속 스펠링비 결선이 열리는 미국 수도 워싱턴 입성. 서지원(13·고양 한내초 6년)양의 이력을 들으면 자연스레 이런 말이 나온다. “미국 살다 왔겠지.”

예상은 빗나갔다. 서양은 그 흔한 영어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어학연수는 물론이고, 지난해 스펠링비 결선 전까지는 외국 땅을 밟아본 적도 없었다. 어머니 정은성씨는 “아이가 언어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특별한 게 아니라 매일매일 꾸준히 학습한 노력 덕인 것 같다”고 했다.

정씨가 손꼽는 서양의 영어 실력 비결은 ‘정석대로 꾸준하게’였다. 처음부터 영어 원서를 술술 읽고 이해한 건 아니었다. 첫걸음으론 파닉스 학습을 시작했다. 3개월 정도 소리와 철자의 규칙을 익힌 다음엔 수준에 맞춰 영어 원서를 읽었고, 스펠링비와 같은 게임을 통해 단어 공부의 즐거움도 알아갔다.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땐 사전 찾는 습관을 들였다. “그냥 사전부터 찾으면 재미가 없었을 텐데 스펠링비 같은 게임으로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고, 파닉스로 규칙을 발음해 본 다음 사전을 찾아봤어요. 원어민들도 못 읽는 발음이 나오면 인터넷, 사전, 책 자료 등을 찾아보는 취미도 생겼죠.” 단, 사전을 외우지는 않았다. 예문을 술술 읽어내려가면서 단어가 어떤 맥락으로 사용됐는지를 살폈다. 정씨는 “영어를 잘하기 위해선 원서만 많이 읽으면 된다고들 생각하는데 지원이는 원서만큼 우리말로 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며 “기본적인 어원 공부가 됐다면 언어 사용 맥락을 알게 하고, 다양한 지식을 제공하는 다양한 책을 읽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올해 아쉽게 준결승 문턱에 그쳤지만 서 양은 “내년에 또 하면 된다”며 웃었다. 김청연 기자

스펠링비 출전자들의 ‘파닉스’ 학습법

알파벳 분해·조합해 터득 미국선 보편적 학습과정

스펠링비 출전자들이 단어의 철자를 알아맞히고 읽기와 쓰기의 달인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여러 비결 가운데 공통된 한 가지는 파닉스(phonics·음철법) 학습을 거쳤다는 것이다.

파닉스 학습은 알파벳 글자와 그 글자가 갖는 소리의 관계를 배우는 것을 말한다. 알파벳 글자를 하나씩 분해 또는 조합해 발음 규칙을 이해하고, 단어와 단어들의 조합인 문장까지 바르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글을 깨치기 위해 ‘ㄱ, ㄴ, ㄷ’ 등의 자음과 ‘ㅏ, ㅑ, ㅓ’ 등의 모음 음가를 익혀 조합하는 것처럼 영어를 읽고 쓰기 위해 철자와 말소리의 관계를 배우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스펠링비 대회 출전자들이 대회장 밖에서 부모와 스펠링비 연습을 하고 있다.
스펠링비 대회 출전자들이 대회장 밖에서 부모와 스펠링비 연습을 하고 있다.

파닉스 학습은 미국 학생들이 모국어인 영어를 배울 때 거치는 보편적인 학습 과정이다. 이미 영어 음성언어에 노출돼 있는 그들은 이 학습을 통해 자신이 알던 단어가 문자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자연스럽게 배워나가고 읽기, 쓰기 능력을 기르게 된다. 음성언어에 노출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 학습자의 경우에는 학습 효과 폭이 더 넓다. 윤선생영어교실 국제영어교육연구소 정성연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 학습자의 경우 파닉스 학습을 통해 문자언어에 자신감이 붙고 음성언어로만 진행하던 언어 학습에서 벗어나 문자언어를 이해하게 된다”며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등 네 가지 기술을 다 활용해 다양한 학습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닉스 학습은 영어 학습의 기초이자 기본이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영어 학습에선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개’라는 단어를 ‘D’ ‘O’ ‘G’라는 각각의 음가로 익히고, 이 음가가 어떤 발음을 내는지 규칙을 찾았던 게 아니라 ‘도그’라는 말로 통으로 외워왔던 것이다. 이렇게 통으로 된 단어나 발음기호를 암기했을 땐 낯선 단어를 접했을 때 당황하지만 파닉스 학습을 하게 되면 새로운 단어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규칙을 적용해 읽고 쓸 수 있다. 더불어 유추 가능성도 높아진다. 스펠링비 출전 학생들이 생전 처음 들은 단어의 소릿값을 파악하며 예문 등에서 스펠링을 맞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전문가들은 파닉스 규칙을 배우면 문장을 읽고 쓰는 것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즉, 텍스트 독해가 수월해진다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파닉스 학습은 음성언어(듣기, 말하기) 위주로 설계됐던 영어교육의 균형을 위해 문자언어(읽기, 쓰기)의 관심이 높아지는 때 더욱 주목받는 학습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어휘 학습이 파닉스 하나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어휘엔 소리와 철자 관계를 이해하고 규칙을 발견하는 것 말고도 다른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단어의 의미, 단어 앞뒤에 붙는 다른 단어와의 관계 등 다른 여러 요소들을 이해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또 철자는 같지만 뜻이 다른 tear(눈물, 찢다) 같은 단어는 실제 문장 속 맥락을 통해 규칙을 알아야 할 때도 있다. 파닉스 학습과 더불어 영어 원서 읽기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성연 연구원은 “파닉스를 수학에 비유하면 ‘영어 문자 풀이 공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수학에서 공식을 안 다음 다양한 문제를 접해 응용력을 기르듯 파닉스 공식을 익혔다고 영어 학습이 다 된 건 아니다. 공식을 풀어볼 문자 텍스트 독해를 병행하지 않는다면 공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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