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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사회현실 고민하는 ‘자아성찰’

등록 2009-06-21 19:27수정 2009-06-21 19:53

우리말 논술 22.문학 교과서로 논술 접근하기




과목별 논술교과서 / [난이도 수준-고2~고3]

■ 교과서 읽기
논점 2. <참회록>에 나타난 부끄러움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고등학교 <문학>

어떻게 읽을까

이 시는 암울한 시대 현실 속에서 치열한 자아 성찰을 통해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고민했던 시인의 모습이 잘 투영된 시이다.

시 전반을 흐르는 정서는 ‘부끄러움’이다. 시인은 거울 속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끄러움은 사회와 무관한 개별적 존재로서의 부끄러움이 아니다. 시인이 보고 있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역사 속에서 닳은, 그 과정에서 역사의 부끄러움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이기 때문이다. 거울을 바라보며 시인은 부끄러운 역사를 갖게 된 나라가 아닌, 그러한 역사 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이것이 시를 해석하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다. 먼저 개인의 양심이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탐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개인의 양심과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아울러 국가가 처한 특정한 상황에서 개인은 어떤 양심의 기준을 갖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토론할 수도 있다.


■ 논제 해결

인간이 느끼는 부끄러움의 원인

제시문 (가)와 (나)에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런 부끄러움의 원인을 제시문 (다)를 참고해 비교·분석하시오.(2010학년도 고려대 논술 예시 변형, 600자 안팎)

(가) 위의 시 ‘참회록’

(나) 나는 여름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오면 한 번씩은 이 집을 찾는다. 이 집에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열세 살 되는 누이뻘 되는 소녀가 있었다. 실상 촌수를 따져 가며 통내외까지 할 절척(切戚)도 아니지만 서로 가깝게 지내는 터라, 내가 가면 여간 반가워하지 아니했고, 으레 그 소녀를 오빠가 왔다고 불러내어 인사를 시키곤 했다. 소녀의 몸매며 옷매무새는 제법 색시꼴이 박히어 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시골서 좀 범절 있다는 가정에서는 열 살만 되면 벌써 처녀로서의 예모를 갖추었고 침선이나 음식 솜씨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집 문 앞에는 보리가 누렇게 패어 있었고, 한편 들에서는 일꾼들이 보리를 베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에 들어가 어른들을 뵙고 수인사 겸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얼마 지체한 뒤에, 안 건넌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점심 대접을 하려는 것이다. 사랑방은 머슴이며, 일꾼들이 드나들고 어수선했으나, 건넌방은 조용하고 깨끗하다. 방도 말짱히 치워져 있고, 자리도 깔려 있었다. 아주머니는 오빠에게 나와 인사하라고 소녀를 불러냈다.

소녀는 미리 준비를 차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옷도 갈아입고 머리도 곱게 매만져 있었다. 나도 옷고름을 매만지며 대청으로 마주 나와 인사를 했다. 작년보다는 훨씬 성숙해 보였다. 지금 막 건넌방에서 옮겨 간 것이 틀림없었다. 아주머니는 일꾼들을 보살피러 나가면서 오빠 점심 대접하라고 딸에게 일렀다. 조금 있다가 딸은 노파에게 상을 들려 가지고 왔다. 닭국에 말은 밀국수다. 오이소박이와 호박눈썹나물이 놓여 있었다. 상차림은 간소하나 정결하고 깔밋했다. 소녀는 촌이라 변변치는 못하지만 많이 들어 달라고 친숙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곱게 문을 닫고 나갔다.

남창으로 등을 두고 앉았던 나는 상을 받느라고 돗자리 길이대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맞은편 벽 모서리에 걸린 분홍 적삼이 비로소 눈에 띄었다. 곤때가 약간 묻은 소녀의 분홍 적삼이.

나는 야릇한 호기심으로 자꾸 쳐다보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밖에서 무엇인가 수런수런하는 기색이 들렸다. 노파의 은근한 웃음 섞인 소리도 들렸다. 괜찮다고 염려 말라는 말 같기도 했다. 그러더니 노파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밀국수도 촌에서는 별식이니 맛없어도 많이 먹으라느니 너스레를 놓더니, 슬쩍 적삼을 떼어 가지고 나가는 것이었다.

상을 내어 갈 때는 노파 혼자 들어오고, 으레 따라올 소녀는 나타나지 아니했다. 적삼 들킨 것이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내가 올 때 아주머니는 오빠가 떠난다고 소녀를 불렀다. 그러나 소녀는 안방에 숨어서 나타나지 아니했다. 아주머니는 “갑자기 수줍어졌니, 얘도 새롭기는.”하며 미안한 듯 머뭇머뭇 기다렸으나 이내 소녀는 나오지 아니했다. 나올 때 뒤를 흘낏 훔쳐본 나는 숨어서 반쯤 내다보는 소녀의 뺨이 확실히 붉어 있음을 알았다. -고등학교 <문학>

(다) 다윈에 따르면 부끄러움의 원천은 제3의 인물들의 이목이 자신의 신체적 현상에 집중되고 자신이 과도하게 주목받는 데에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생각은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부끄러움의 감정이 생길 때에는 언제나 자아 감정의 강한 부각과 위축이 일어나고 이는 타인의 시선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때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서 자신의 존재가 부각되는 것을 느끼고, 이어서 일정한 규범을 어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겸손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칭찬을 접하면서도 얼굴이 붉어지곤 하는데, 이는 자신의 자아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언제나 자신과 자신의 이상 사이에 놓인 근본적인 간극을 의식하는 겸손함이 작동한 탓이다.

인격체로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남의 접근을 불허하는 영역을 가지고 있다. 이 영역의 경계는 문화적·개인적 상황에 따라 상당히 다르지만, 일단 이 영역이 침입을 받게 되면 누구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 침입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자신이 처하게 된 상황과 자신의 항구적인 인격적 규범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 <부끄러움의 심리학에 대하여>


◎ 해결 방향

논제를 해결하려면 제시문 (가)와 (나)를 ‘부끄러움’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를 제시문 (다)에 나타난 부끄러움의 원인을 참고하여 비교해야 한다. (가)에 나타난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을 국가라는 전체의 일부라고 느끼는 양심의 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적 화자의 자아 성찰은 그 범위가 민족 공동체와 역사에까지 확대되게 된다. 이는 자신의 자아가 부각되면서 느껴지는 부끄러움인 (나)와는 다른 것이다. (나)에 나타난 부끄러움은 (가)와 달리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한 것이다. 소녀는 ‘나’의 이목을 한 몸에 받으며 자신의 자아가 부각되었지만, 동시에 완벽하고 규범적인 자아의 이상에 못 미치는 결함을 함께 의식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자신의 집안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며, 자신은 가정교육을 통해 엄격하게 예절을 익혔기 때문에 이러한 부끄러움은 더욱 크게 다가가게 된다. 이는 결국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행위로 귀결된다.

이상의 기본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조리 있게 정리하면 된다. 지나치게 제시문 (다)에 의존하기보다는 (가)와 (나)의 내용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서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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