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의 소설 ‘돌다리’는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는 아버지와 서구적인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진은 청계천의 돌다리.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말 논술 26. 문학 교과서로 논술 접근하기
과목별 논술교과서 / [난이도 수준-중2~고1] ■ 교과서 읽기 논점 1. <돌다리>에서 찾아본 ‘청산’의 의미 창섭은 서울에서 권위 있는 내과 의사이다. 병원이 좁아 큰 건물로 이전하기로 하고, 모자라는 돈은 시골의 농토를 팔아 해결하기로 작정하여 고향으로 내려온다. 창섭의 부친은 근검하기로 소문이 난 인물이다. 부지런히 일할 뿐만 아니라 논과 밭을 가꾸는 데 온갖 정성을 들이고, 동네와 읍내 길까지 닦는 사람이다. 창섭이 마을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장마에 내려앉은 돌다리를 고치고 있다. 땅을 팔고 서울로 모두 올라가자는 창섭의 제안을 아버지는 단호히 거절하고, 내친김에 유언(遺言)까지 한다. 즉, 논을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넘기겠다는 것이다. 창섭은 자기 세계와 아버지 세계와의 결별을 체험하고 서울로 올라온다. 아버지는 다음 날 새벽이 되자마자 고쳐 놓은 돌다리로 나가 양치와 세수를 하고, 돌다리를 늘 보살펴야 하는 것이 천리(天理)임을 되새긴다. - 고등학교 <문학> 어떻게 읽을까 이 소설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서구적인 물질적 가치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적 가치가 충돌하는 당시의 시대 현실을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소설이 창작된 1943년은 일제 말기이기 때문에 여기서 서구적 물질적 가치관은 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유입된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비판적인 시선은 서구적 가치관과 일제의 제국주의에 함께 머무른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주된 갈등은 ‘땅’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땅’을 단순히 사고파는 자산으로 생각하는 아들과 ‘땅’은 천지만물의 근원이며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정성이며 정신적 유산으로 생각하는 부자간의 인식의 차이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돌다리’와 ‘나무다리’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돌다리는 튼튼하지만 세우기도 어렵고 다시 보수하기도 어렵다. 반면에 나무다리는 돌다리에 비하여 약하지만 손쉽게 만들고 고칠 수 있다. 아들과 같은 물질적 가치관에서 본다면 지금 두 다리가 있는데, 그중에 돌다리가 무너졌다면 굳이 고치지 말고 나무다리로 건너면 된다. 반면에 아버지와 같은 전통적인 가치관에서는 비록 나무다리가 있더라도 한번 세우면 오랜 시간 동안 쓸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추억이 담긴 돌다리는 어떻게 해도 고쳐서 보존해야 할 가치 있는 대상이다. 결국 근본적인 차이는 자신의 시선이 어디에 향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는 그 시선이 자신의 현세적 삶에 머무르는지, 현세적 삶을 초월하여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연결되는 것인지에 관한 차이인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에는 이처럼 가치관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비록 작가는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가치관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작가의 생각에 긍정하기보다는 자신의 관점에서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아버지의 세계관을 긍정하지만 그것과 화합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린 아들의 생각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교과 심화 아름다운 공동체의 전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지연, 혈연으로 맺어진 구성원들이 한곳에 모여 살면서, 효도와 우애의 정신을 바탕으로 마을 주민들이 한 식구처럼 다정하고 화목한 생활을 영위해 왔다. 지금도 우리는 한집안 식구만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협력하는 미풍양속을 가지고 있다. 혼사(婚事)나 상사(喪事) 같은 애경사(哀慶事) 가 있을 때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힘을 모아 도왔다. 이와 같은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우리 생활 신조로 남아 있다. 다음은 한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공동체에 관하여 조사하면서 기록한 내용이다. 이 글을 읽고, 우리 전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한국 농법 중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있다면, 우경(牛耕)과 공동 노동이다. 공동 노동은 한국에서 오늘날에도 행해지고 있는 노동 형태로서 벼를 심을 때, 잡초를 제거할 때, 수확할 때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문자가 쓰여진 깃발을 세우고, 그 부근에서 작업을 한다. 여름날 논의 잡초를 제거하는 시기에 시골 곳곳에서 징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농민들이 휴식시에 깃발을 펼쳐 들고 그 밑에서 농악을 연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를 통해 쾌감을 느끼고 원기를 회복하는 것이다. 특히, 아침부터 열심히 일을 하여 심신이 피로해지려고 하는 저녁 즈음에는, 잡초를 뽑던 일부의 사람들까지도 악기를 들고 농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에 일하는 사람들은 늘어진 기운을 없애고, 피로를 회복하여 열심히 일하게 된다.” 이 글은 ‘두레’에 관한 내용으로, 우리나라의 공동체 전통과, 더불어 일하고 놀이하는 생활이 공동체의 특수한 조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두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두레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벼농사를 위한 공동 노동 조직이다. 그러나 일정 기간의 공동 노동 조직으로서의 두레는 벼농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즉, 즐거운 때에는 농악을 비롯한 여러 가지 놀이를 함께 즐기는 놀이 공동체로서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한편, 두레에는 여성들의 길쌈을 위해 조직된 길쌈 두레도 있으며, 이 외에도 남성들의 삼(대마) 농사를 위한 삼 두레도 최근까지 전승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공동체 조직으로는 ‘향도(香徒)’를 들 수 있다. 고려 시대의 향도는 기본적으로 신라 하대의 향도 조직과 성격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 불교가 쇠퇴하고 향촌 질서가 무너짐에 따라, 각 마을의 수호신에 대한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 공동체, ‘호미씻이’ 같은 놀이 공동체, 그리고 혼례, 회갑례, 상례의 의식을 담당하는 의례 공동체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향약(鄕約)’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네 가지 덕목을 열거하면, ‘착한 것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잘못한 것은 서로 고쳐 주며(過失相規), 예의로써 서로 사귀고(禮俗相交), 어려울 때 서로 돕는다(患難相恤).’이다. 이 향약은 곧 공동체의 도덕률이자, 우리 민족의 공동체적 삶을 엿볼 수 있는 확실한 증거이다. 위와 같은 것 외에, 우리 역사를 통하여 찾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전통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그리고 우리 공동체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공동체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가? - 고등학교 <도덕>
■ 논제 해결 현대인의 삶에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은 제시문 (가)에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제시문 (나)를 참고로 하여 이러한 모습이 보이는 이유를 분석하고, 공동체 의식 회복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서술하시오. (2007 성신여대 기출 변형, 500자 안팎) (가) 국제 통화 기금(IMF) 관리 체제 때, 한국인들이 금붙이를 내놓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로 놀라고 감동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무질서와 남에 대한 배려가 없음을 보고, 나는 또 한번 놀라고 당황했다. 나는 어떤 것이 진짜 한국인들의 모습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한번은 내가 타고 가던 택시가 버스와 가볍게 부딪히는 사고가 났다. 양쪽 운전자는 서로 잘못이 없다는 듯, 아주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차도 한복판에 버티고 서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고성을 지르며 욕설을 퍼부어 댔다. 뒤따르던 차들은 순식간에 긴 행렬을 이루며 멈추어 섰고, 아무도 이 두 사람을 말리지 않고 구경만 했다. 또 한번은, 내가 운전 중에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멈추어 서 있는데, 뒤에 서 있던 차의 한 운전자가 경적을 울려 댔다. 뒤를 돌아보니, 욕설을 하며 주먹을 흔들어 대는 것이 아닌가….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교통신호를 지키기 위하여 움직이지 않는 내 차 때문에, 자기가 신호를 위반할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에 매우 분노하는 것 같았다. 등굣길에 어린이가 막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나는 한국인이 얼마나 자기 자식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등·하굣 길에서 이렇게 아이들을 반복적으로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 고등학교 <도덕> (나) 아버지는 아들의 뒤를 쫓아 이내 개울에서 들어왔다. 아들은, 의사인 아들은, 마치 환자에게 치료 방법을 이르듯이, 냉정히 차근차근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외아들인 자기가 부모님을 진작 모시지 못한 것이 잘못인 것, 한집에 모이려면 자기가 병원을 버리기보다는 부모님이 농토를 버리시고 서울로 오시는 것이 순리인 것, 병원은 나날이 환자가 늘어 가나 입원실이 부족되어 오는 환자의 삼분지 일밖에 수용 못 하는 것, 지금 시국에 큰 건물을 새로 짓기란 거의 불가능의 일인 것, 마침 교통 편한 자리에 삼층 양옥이 하나 난 것, 인쇄소였던 집인데 전체가 콘크리트여서 방화 방공으로 가치가 충분한 것, 삼층은 살림집과 직공들의 합숙실로 꾸미었던 것이라 입원실로 변장하기에 용이한 것, 각층에 수도·가스가 다 들어온 것, 그러면서도 가격은 염한 것, 염하기는 하나 삼만이천원이라, 지금의 병원을 팔면 일만오천원쯤은 받겠지만 그것은 새집을 고치는 데와, 수술실의 기계를 완비하는 데 다 들어갈 것이니 집값 삼만이천원은 따로 있어야 할 것, 시골에 땅을 둔대야 일년에 고작 삼천원의 실리가 떨어질지 말지 하지만 땅을 팔아다 병원만 확장해 놓으면, 적어도 일년에 만원 하나씩은 이익을 뽑을 자신이 있는 것, 돈만 있으면 땅은 이담에라도, 서울 가까이라도 얼마든지 좋은 것으로 살 수 있는 것…. 아버지는 아들의 의견을 끝까지 잠잠히 들었다. 그리고, “점심이나 먹어라. 나두 좀 생각해 봐야 대답허겠다.” 하고는 다시 개울로 나갔고, 떨어졌던 다릿돌을 올려놓고야 들어와 그도 점심상을 받았다. 점심을 자시면서였다. “원, 요즘 사람들은 힘두 줄었나 봐! 그 다리 첨 놀 제 내가 어려서 봤는데 불과 여남은이서 거들던 돌인데 장정 수십 명이 한나잘을 씨름을 허다니!” “나무다리가 있는데 건 왜 고치시나요?” “너두 그런 소릴 허는구나. 나무가 돌만 허다든? 넌 그 다리서 고기 잡던 생각두 안 나니? 서울루 공부 갈 때 그 다리 건너서 떠나던 생각 안 나니? 시쳇사람들은 모두 인정이란 게 사람헌테만 쓰는 건 줄 알드라! 내 할아버니 산소에 상돌을 그 다리로 건네다 모셨구, 내가 천잘 끼구 그 다리루 글 읽으러 댕겼다. 네 어미두 그 다리루 가말 타구 내 집에 왔어. 나 죽건 그 다리루 건네다 묻어라…. 난 서울 갈 생각 없다.” “네?” “천금이 쏟아진대두 난 땅은 못 팔겠다. 내 아버님께서 손수 이룩허시는 걸 내 눈으루 본 밭이구, 내 할아버님께서 손수 피땀을 흘려 모신 돈으루 장만허신 논들이야. 돈 있다고 어디가 느르지논 같은 게 있구, 독시장밭 같은 걸 사? 느르지 논둑에 선 느티나문 할아버님께서 심으신 거구, 저 사랑마당엣은행나무는 아버님께서 심으신 거다. 그 나무 밑에를 설 때마다 난 그 어룬들 동상(銅像)이나 다름없이 경건한 마음이 솟아 우러러보군 헌다. 땅이란 걸 어떻게 일시 이해를 따져 사구팔구 허느냐? 땅 없어 봐라, 집이 어딨으며 나라가 어딨는 줄 아니? 땅이란 천지만물의 근거야. 돈 있다구 땅이 뭔지두 모르구 욕심만 내 문서쪽으로 사 모기만 하는 사람들, 돈놀이처럼 변리만 생각허구 제 조상들과 그 땅과 어떤 인연이란 건 도시 생각지 않구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람들, 다 내 눈엔 괴이한 사람들루밖엔 뵈지 않드라.” “……” “네가 뉘 덕으루 오늘 의사가 됐니? 내 덕인 줄만 아느냐? 내가 땅 없이 뭘루? 밭에 가 절하구 논에 가 절해야 쓴다. 자고로 하눌 하눌 허나 하눌의 덕이 땅을 통허지 않군 사람헌테 미치는 줄 아니? 땅을 파는 건 그게 하눌을 파나 다름없는 거다.” “……” “땅을 밟구 다니니까 땅을 우섭게들 여기지? 땅처럼 응과(應果)가 분명헌 게 무어냐? 하눌은 차라리 못 믿을 때두 많다. 그러나 힘들이는 사람에겐 힘들이는 만큼 땅은 반드시 후헌 보답을 주시는 거다. 세상에 흔해 빠진 지주들, 땅은 작인들헌테나 맡겨 버리구, 떡 도회지에 가 앉어 소출은 팔어다 모다 도회지에 낭비해 버리구, 땅 가꾸는 덴 단돈 일원을 벌벌 떨구, 땅으루 살며 땅에 야박한 놈은 자식으로 치면 후레자식 셈이야. 땅이 말을 할 줄 알어 봐라? 배가 고프단 땅이 얼마나 많을 테냐? 해마다 걷어만 가구, 땅은 자갈밭이 되니 아나? 둑이 떠나가니 아나? 거름 한번을 제대로 넣나? 정 급허게 돼 작인이 우는 소리나 해야 요즘 너이 신의들 주사침 놓듯, 애꿎인 금비(藥品肥料)만 갖다 털어넣지. 그렇게 땅을 홀댈 허군 인제 죽어서 땅이 무서서 어디루들 갈 텐구!” - ‘돌다리’, 고등학교 <문학>
◎ 해결 방향 공동체란 생활·행동·목적을 함께하는 집단을 말한다. 공동체적 삶은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존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업 생산구조에서 파생된 ‘두레’라는 방식을 통해 더불어 일하고 놀이하는 생활이 일찍이 일반화했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적 삶은 산업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됐다. 산업사회는 생산력과 생산방식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에 따라 인간관계에서도 기능적·수단적 측면이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산업사회의 부정적 측면으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전면에 떠올랐고, 경쟁·갈등·소외현상이 만연하면서 공동체의 붕괴 현상이 뒤따랐다. 즉 도시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공동체의 정체성은 급속도로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제시문 (가)에는 이런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형성된 현대인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나)에서 좀더 분명하게 발견된다. ‘땅’을 두고 벌어지는 부자간의 갈등에서 공동체적 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적 가치와 상반된, 모든 것을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자산으로 치부하는 현대인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현상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서술하면 된다. 다만, 과거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자는 추상적인 해결안보다는 현대의 산업구조와 현대인의 삶에 접목할 수 있는 좀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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