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엣지, 된장녀, 그리고 과시적 소비
-자본주의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3. 강철군화와 올리브나무
-우리에게는 너무나 꿈같은 자유주의
4. 늘어진 인생진도표
- 인생을 계획 있게 가꾸는 길
노동조합의 힘은 점점 세졌다. 이대로 가다간 공장 운영까지 노동자들 손에 들어갈 판이었다. 어떻게 하면 노동조합의 힘을 약하게 할까? 경영자들은 머리를 모았다. 철도·운송·철강 등 덩치 큰 직장의 임금과 복지는 눈의 띄게 좋아졌다. 살림살이가 좋아지니 불만이 줄어들 수밖에 없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큰 회사의 노조원들은 ‘정치 투쟁’에 나서기를 꺼렸다. 어느새 이들은 ‘노동귀족’이 되어 있었다. 내 배가 부르고 따뜻한데 정치적인 구호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결국, 덩치 큰 노조들은 전국적인 노동단체에서 하나둘씩 떨어져나갔다. 대오에는 잔챙이 같은 노조들만 남았다. 이들은 경영자들의 적수가 못 됐다. 노조의 힘은 그렇게 무너졌다.
회유의 손길은 노동운동가들에게도 미쳤다. 대개 가난했던 그들에게 힘 있는 자들은 ‘정책 자문위원’, ‘노동 위원장’ 등의 감투를 안겼다. 두툼한 월급봉투와 함께 말이다. 많은 이들은 유혹을 참지 못했다. 제 뜻을 제도권에서 펼치면서도 생활형편까지 좋아진다는데 반대하기가 쉽겠는가.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하나둘씩 현장을 떠났다. 반면, 혜택을 입지 못한 이들의 처지는 점점 나빠졌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큰 기업들은 작은 회사들을 집어삼켰다. 당연히 일자리가 줄고 노동자들의 근로시간도 늘어났다.
그러면서도 시중에는 뭉칫돈이 떠돌아다녔다. 시장을 독차지한 회사들은 엄청난 이익을 거두었지만,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까닭이다. 돈은 이익을 거둘 만한 곳을 찾아 떠다녔다. 세계 곳곳의 작은 기업들은 몰려드는 자본 앞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럴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는 더욱더 분명하게 갈렸다. 물론, 점점 더 적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부를 차지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강철군화>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궁리
잭 런던이 쓴 <강철군화>에서 그리는 세상의 모습이다. 강철군화(The Iron Heel)란 권력과 부를 모조리 손에 쥔 소수의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언뜻 보면, 100년 전 작품인 <강철군화> 속의 상황은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잭 런던의 통찰은 뛰어났다.
그는 왜 강철군화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우리 삶이 괴로운 이유는 어떤 악당이 있어서가 아니다. 일을 닦달하는 작업반장, 이윤을 내려고 약한 회사들을 밀쳐내는 기업가, 약자를 동정하지만 강한 자의 손을 들어주는 법조인. 이들 모두는 단지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을뿐이다. 그러나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열심히 가꾸는 세상은 점점 삐뚤어져만 간다. 어디서나 착취와 투쟁, 반목과 질투가 판을 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잭 런던은 <강철군화>의 주요 인물,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입을 통해 그 이유를 밝힌다.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역사가 그렇게 발전해 가게끔 되어 있을 뿐이라고. 신산스러운 지금의 경제 상황도 역사의 정해진 길일 뿐이라는 거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음, 신동욱 옮김. 창해
이 점에서는 토머스 L.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도 의견을 같이한다. 세상은 ‘세계화’라는 정해진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은 완전히 다르다.
잭 런던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착취’한다고 말한다. 반면, 프리드먼에게 착취란 없다. 단지 ‘아웃소싱’일 뿐이다. 예컨대 신발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고 해보자. 기업가는 인건비를 크게 아낄 수 있다. 중국의 노동자들은 적지 않은 수입을 손에 쥔다. 둘 다 이익을 손에 쥐는 윈-윈의 결과 아닌가. 전세계의 뭉칫돈들은 투자처를 찾아 떠돌고 있지만, 이는 되레 바람직한 현상이다. 돈이 몰려드는 곳에는 일자리와 수입이 생기는 까닭이다.
어디 그뿐인가. 몰려다니는 뭉칫돈, 자본은 세상 전부를 민주화시킨다.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투자자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그런데 투명하지 못하고 부패한 나라에는 좀처럼 돈이 몰리지 않는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누가 목돈을 걸려 하겠는가. 그래서 여러 나라들은 경제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부패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그럴수록 기업 회계는 깨끗해지고 뒷돈이 오가는 일도 사라진다. 하긴,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며 우리 기업들의 회계기준이 높아진 점을 보면, 프리드먼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세계화와 몰려다니는 뭉칫돈에 대한 거부감은 거세다. 이를 프리드먼은 ‘올리브 나무’라고 표현한다. 사막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바로 그 나무 말이다. 세계화를 거부하는 이들은 자본이 몰려들고 시장이 커질수록 삶의 질은 떨어지고 민족들 나름의 특성도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프리드먼은 이를 가리켜 ‘오해’라고 잘라 말한다. 세계화의 장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세계화될수록 세상은 점점 더 살 만해진다. 하지만 단점은 늘 장점보다 쉽게 눈에 띄는 법이다. 일부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학대는 세계화로 거두는 숱한 이익을 가려버리곤 한다. 세상이 정말 살 만한 곳이 되려면 ‘황금구속복’, 즉 자본주의가 옳다고 여기는 틀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세상 어디에도 부패와 무능은 자리 잡을 곳이 없을 테다. 효율과 합리성의 상징인 자동차 렉서스(Lexus)처럼 말이다.
잭 런던과 프리드먼 가운데 누구 말이 맞을까? 분명한 사실은, 이 둘의 예언은 동시에 실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의 부는 점점 더 한쪽으로 쏠리며, 이윤을 거두지 못한 뭉칫돈들은 반복해서 공황을 일으킨다. 반면, 시장이 개방하는 중국과 베트남 같은 나라들은 문을 닫아건 북한이나 미얀마보다 형편이 훨씬 좋다.
1784년, 철학자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의 종점은 인간의 자유를 완벽하게 실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자유’의 소중함에 고개 젓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어지는 칸트의 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인류를 자유를 향해 이끄는 힘은 고귀한 정신이 아니라 우리네 이기심이다.” 사람의 본성은 밥그릇 싸움을 할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치열한 경쟁의 시대, 맑은 정신으로 삶과 세상을 고민해볼 일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ngd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