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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입시경쟁 없이맘껏 골라 다녀도 대학 경쟁력은 으뜸

등록 2009-10-11 16:18수정 2009-10-11 16:56

우리나라의 교육은 우수한 학생이 곧 학교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교육은 경쟁력 있는 학교가 우수한 학생을 길러낸다. 사진은 헤이그 대학 전경.
우리나라의 교육은 우수한 학생이 곧 학교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교육은 경쟁력 있는 학교가 우수한 학생을 길러낸다. 사진은 헤이그 대학 전경.
절대평가 졸업시험만 통과하면
직업준비·대학준비 학교 등
적성따라 3개 유형 학교 진학
지난 9월21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의 교정에서 만난 라라 리컨스(19)한테 “이 학교를 왜 선택했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황당하리만치 단순했다. “평판도 좋지만 집에서 가까워서요.” 위트레흐트 대학교는 중국의 상하이교통대학이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대학 순위에서 지난해 47위에 올랐으며 1999년에는 이 대학의 헤라르뒤스 엇호프트 교수와 마르티뉘스 펠트만 명예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명문 중의 명문인 셈이다. 따라서 라라의 말은 곧 “서울시 관악구에 살아서 서울대에 왔다”는 말과 같다.

그는 “졸업시험을 보는데 10.0 만점에 6.0점만 넘으면 졸업장(Diploma)을 받을 수 있다”며 “전국의 모든 학생이 치르는 졸업시험에서 꼭 좋은 점수를 받을 필요는 없고 졸업장이 있으면 웬만해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졸업시험의 평가도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다. 네덜란드 학생들은 대학 입시 준비 과정을 통틀어 남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네덜란드에는 학생들의 입시 경쟁과 더불어 대학의 ‘학생 선발권’ 또한 없다. 네덜란드 대학은 학생을 선발하지 않고 우리나라 평준화 지역의 고교들처럼 대학 입시 사정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학생정보관리위원회·IB-Group)에 의해 학생을 배정받는다. 위트레흐트 대학의 국제 교류 담당자인 카스파르 더복은 “네덜란드 대학은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며 “의대 등 지원자가 많은 몇몇 학과 역시 담당 기관에서 학생을 선발하고 배정할 뿐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가 대학 입시에 개입할 수 있는 이유는 네덜란드 대학이 모두 국가의 예산으로 운영되며 우리나라의 국립 대학과 같은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최고의 점수를 받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의 선발 의지와 상관없이 입학하지만 네덜란드 대학의 경쟁력은 세계적이다. 상하이교통대학의 ‘2008년 세계 대학 순위’를 보면 200위권 안에 11개 대학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수재들이 선발되는 서울대는 151~200위권에 올랐고 학생 선발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서울의 몇몇 사립대들은 한 곳도 들지 못했다. 미국의 주간지 <뉴스위크>가 2006년에 발표한 세계 100대 대학 순위에도 네덜란드는 5개 대학이 올랐다. 우리나라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 네덜란드에는 연구중심대학(Research University) 14곳과 고급 직업 인력을 양성하는 응용과학대학(University of Applied Science) 41곳이 있다.

교수와 함께 토론하고 있는 헤이그 대학의 학생들.
교수와 함께 토론하고 있는 헤이그 대학의 학생들.

학생의 지원 자격이나 학업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네덜란드 대학이 우리나라 대학보다 더 경쟁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수월성’을 제대로 살린 중등교육 시스템이 대학 대신 학생의 자격과 능력을 보증하는 데 있다.

네덜란드는 중·고등학교를 통합해 운영하는데 학생들은 능력과 적성에 따라 직업준비중등학교(VMBO, 4년 과정), 일반중등학교(HAVO, 5년 과정), 대학준비학교(VWO, 6년 과정) 등 세 가지 유형의 학교에 진학한다. 직업준비중등학교에서는 직업 교육을 받고 졸업한 뒤 바로 취업을 한다. 일반중등학교 졸업자는 응용과학대학에 진학할 자격이 주어지며 연구중심대학에는 대학준비학교 졸업자만 진학할 수 있다. 각 학교의 진학은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국가가 치르는 학업적성검사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나라에서라면 VWO에 진학하려고 입시 경쟁이 있을 법도 하지만 학업적성검사를 준비하는 사교육도, 경쟁도 없다. 네덜란드에 10년 동안 살면서 자녀들을 초등학교, 중등학교, 대학까지 보낸 정현숙(46)씨는 “시험은 성취도 평가가 아니라 능력 평가이기 때문에 대비할 수도 없을뿐더러 네덜란드의 학부모들은 자녀가 HAVO나 VMBO에 간다고 해서 부끄럽게 여기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곧 네덜란드 학생들의 중등학교 진학이 성적순으로 우열을 가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의 탁월한 능력과 적성을 고려해 적합을 따지는 일이다. 따라서 꼴등에 대한 차별 대신 공부가 아닌 다른 능력을 지닌 학생에 대한 ‘차별화’한 교육이 있다. 헤이그 대학(The Hague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국제교류처의 요세프 핀탄 모린은 “몇몇 나라에서 일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는 가장 성공적인 길은 조기에 학생의 적성을 발견해 자기한테 맞춤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것에 있다”며 “네덜란드 대학 경쟁력의 핵심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중등교육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자기가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는 교육의 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HAVO를 졸업하고 응용과학대학을 나온 이들이 초·중등학교의 교사로 진출할 정도로 실무 교육의 수준이 높다. 또 우리나라에 세계 축구 4강이라는 기적을 선사한 휘스 히딩크는 직업학교인 VMBO를 나왔다고 한다. VWO에는 연구자로서 탁월한 점이 있는 이들이 진학하므로 VWO 졸업자를 신입생으로 받는 연구중심대학은 굳이 대학에 적합한 학생을 뽑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각자의 탁월한 점을 북돋워 주는 게 수월성 교육의 옳은 개념이라면 네덜란드의 교육이 바로 그렇다.

네덜란드교육진흥원(NESO KOREA)에서 주최한 네덜란드 대학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위트레흐트 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을 둘러본 김상률 숙명여대 대외협력처 처장(영문학과 교수)은 “학부 과정을 교양 정도로 생각하고 진짜 연구는 석사 과정에나 가서야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대학은 연구에만 초점을 둔 네덜란드의 연구중심대학에 견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학생과 학교를 서열화하지 않고도, 학생과 학교의 경쟁을 부추기지 않고도 훌륭한 교육적인 성과를 낸다. 한 여당 의원은 수능 성적 원자료를 공개해 전국의 학교를 줄세우겠다고 부르댄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교육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좋으련만, 네덜란드의 사례를 보면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다.

위트레흐트 헤이그 로테르담/글·사진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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