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학교장들에게 들어보니…
사고력·탐구력 육성 다양한 과정으로
서울대 입학사정관이 칭찬한 학교장
“수능성적 발표 상황선 수능교육밖에”
서울대 입학사정관이 칭찬한 학교장
“수능성적 발표 상황선 수능교육밖에”
부산 박아무개 교장의 학교는 얼마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으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한다”며 인정을 받았다. 사고력, 창의력, 탐구력을 기르는 다양한 교육과정 덕이었다. 박 교장이 학교에 부임한 지 2년 반, 학교를 배우겠다고 다녀간 학교와 기관만 어느새 200여 곳이다. 그런 박 교장이 요즘 속앓이를 하고 있다. “수능 성적이 공개된 걸 보고 저나 우리 교사들이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모릅니다. 탐구력, 사고력을 키우는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이 중요하다고는 하면서 왜 수능 성적으로만 학교교육을 평가합니까? 이런 분위기에서는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교장들도 위축될 수밖에 없고 다시 수능 중심 교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영수 중심의 입시 교육에서 벗어나라고 독려하면서 결국에는 입시 결과를 잣대로 학교를 평가하는 사회의 이중 잣대에 박 교장의 열정이 꽁꽁 얼어버린 것이다.
교장의 권한이 날로 커진다. 올해 12월에 고시될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되면 교육과정의 20%를 학교가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게 된다. 지난 5월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발표한 ‘학교단위 책임경영을 위한 학교 자율화 추진방안(시안)’을 보면 학교장의 교원인사권을 강화하고 교원의 20%를 학교장이 초빙할 수 있도록 했다. 교과부는 학교 자율화 추진 방안에서 “학교장에게 교육과정 편성·운영, 교원인사 등과 관련된 핵심적인 권한이 없어 학생·학부모의 요구를 반영한 특색 있는 학교 운영이 곤란”한 것을 학교 자율화의 배경으로 꼽았다.
그러나 교장들은 20%의 권한이 부족해서 지금까지 ‘특색 있는 학교 운영’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권한이 있어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게 더 문제라는 것이다. 교장공모제 학교로, 교육과정의 50%까지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는 경남 옥종고의 유수용 교장은 “교육과정 편성권을 갖고 예체능 수업을 더 늘리고 싶었다”며 “하지만 음악, 미술은 순회교사라서 다른 학교와 우리 학교를 번갈아 다니기 때문에 수업을 더 개설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옥종고는 교사가 항상 학교에 머무르는 체육 교과에 대해서만 일주일에 세 시간 수업을 하고 있다.
‘개정교육과정’에 교장 권한 커져도
“아이들 입시 불이익 받을까 걱정
특기적성 대신 내신 등 입시 교육”
부산의 박 교장도 영어, 수학의 교육과정을 다양화하려고 교사를 모집했지만 지원자가 없어 애를 먹었다. 부산 시내에 있는 동료 교장의 학교에는 지원자가 몰려 경쟁률이 70 대 1이었다는 사실에 그저 속을 끓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부산 외곽지역에 있고 지하철도 닿지 않는데 어느 교사가 오고 싶겠느냐”며 “교사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열정에만 기대지 말고 이런 시골 학교도 질 높은 교원을 초빙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장들은 다양한 교육적 시도에 따르는 예산을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전남 광양고의 한상준 교장은 바로 이전에 교장으로 부임했던 ㅎ고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두서너명이 광주로 도보순례를 한다, 지리 관련 동아리 아이들이 동네 문화 유적 지도를 만든다 하면 입학사정관제에도 도움이 되니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체험활동에는 돈이 드는데 이게 학부모나 우리 아이들 주머니에서 나오면 안 되는 겁니다. 학교가 절반이라도 보조를 해줘야 하는데 이런 쪽으로 예산 편성은 꿈도 못 꿨어요.” 개방형 자율학교인 경기 와부고의 김학일 교장은 “교장공모제 자율학교가 다양한 교육적인 시도를 한 것은 좋았는데 재정적인 지원이 부족해 가시적인 성과를 못 냈다는 평가가 있다”며 “개방형 자율학교는 재정 지원이 따라왔던 덕에 좋은 교육적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창의적 체험활동’의 비중을 늘린 교과부가 학교에 대한 예산 지원 대책을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획일화한 교육의 틀을 벗어나려는 교장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뭣보다 시험이고 입시다. 지난해 학부모들의 일제고사 불참을 허용해 주목을 받았던 전북 장수중의 김인봉 교장은 교육과정을 다양화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교과 수업을 오전에 마치고 오후에는 특기적성 교육, 자치활동, 체험활동, 봉사활동을 학교에서 프로그램으로 제공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러다가 우리 아이들 고입 연합고사 볼 때 불이익을 당하면 어쩝니까? 당장 비교과 활동 늘리면 진도를 못 맞추니 일제고사 성적에서도 불이익을 받아요. 평가권을 학교에 주지 않으면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건 불가능해요.” 고입 연합고사, 일제고사, 수능 등 획일적인 시험으로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는 한 학교의 교육과정은 획일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고교 교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수능뿐만이 아니다. 내신 등급제도 문제다. 유수용 교장은 “교양 과정을 개설하고 싶었는데 학생 수가 워낙 적으니 내신 등급 받는 데서 불리할 수 있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시도를 못 했다”고 말했다. 특히 미래형 교육과정이 내세우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정’은 교장이 새로운 교육을 하고자 할 때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가 입시 교육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주 효광중의 김선호 교장은 “미래형 교육과정이 취지대로 정착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학교가 교육과정을 개방적으로 운영한다고 해도 고교나 대학은 여전히 점수 위주로 선발하는데, 늘 결과에 다급해하는 학부모들이 그걸 기다려 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와부고 김학일 교장의 생각은 다르다. “창의력, 사고력 교육을 하면 학생들의 학습 동기가 높아지기 때문에 성적이 자연스레 올라요. 새로운 교육이 결코 입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한테 설득할 수 있다면 굳이 입시를 바꾸지 않아도 교육의 개혁은 가능하다고 봐요.” 그러나 와부고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김학일 교장도 “개방형 자율학교는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들이 합의해 획일적인 교육을 벗어나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또 공모제 교장이 하는 일에 대한 수용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교장들이 ‘2009년 개정 교육과정’, 이른바 미래형 교육과정을 시행하는 데 공동체의 합의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산의 박 교장은 “우리 교육의 문제를 교사의 탓으로만, 학부모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라며 “미래형 교육과정을 시행할 때 교육 공동체가 파괴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모두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재를 한 몇몇 교장들은 아직 미래형 교육과정에 대한 어떠한 공문이나 자료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개정교육과정’에 교장 권한 커져도
“아이들 입시 불이익 받을까 걱정
특기적성 대신 내신 등 입시 교육”
부산의 박 교장도 영어, 수학의 교육과정을 다양화하려고 교사를 모집했지만 지원자가 없어 애를 먹었다. 부산 시내에 있는 동료 교장의 학교에는 지원자가 몰려 경쟁률이 70 대 1이었다는 사실에 그저 속을 끓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부산 외곽지역에 있고 지하철도 닿지 않는데 어느 교사가 오고 싶겠느냐”며 “교사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열정에만 기대지 말고 이런 시골 학교도 질 높은 교원을 초빙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장들은 다양한 교육적 시도에 따르는 예산을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전남 광양고의 한상준 교장은 바로 이전에 교장으로 부임했던 ㅎ고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두서너명이 광주로 도보순례를 한다, 지리 관련 동아리 아이들이 동네 문화 유적 지도를 만든다 하면 입학사정관제에도 도움이 되니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체험활동에는 돈이 드는데 이게 학부모나 우리 아이들 주머니에서 나오면 안 되는 겁니다. 학교가 절반이라도 보조를 해줘야 하는데 이런 쪽으로 예산 편성은 꿈도 못 꿨어요.” 개방형 자율학교인 경기 와부고의 김학일 교장은 “교장공모제 자율학교가 다양한 교육적인 시도를 한 것은 좋았는데 재정적인 지원이 부족해 가시적인 성과를 못 냈다는 평가가 있다”며 “개방형 자율학교는 재정 지원이 따라왔던 덕에 좋은 교육적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창의적 체험활동’의 비중을 늘린 교과부가 학교에 대한 예산 지원 대책을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획일화한 교육의 틀을 벗어나려는 교장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뭣보다 시험이고 입시다. 지난해 학부모들의 일제고사 불참을 허용해 주목을 받았던 전북 장수중의 김인봉 교장은 교육과정을 다양화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교과 수업을 오전에 마치고 오후에는 특기적성 교육, 자치활동, 체험활동, 봉사활동을 학교에서 프로그램으로 제공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러다가 우리 아이들 고입 연합고사 볼 때 불이익을 당하면 어쩝니까? 당장 비교과 활동 늘리면 진도를 못 맞추니 일제고사 성적에서도 불이익을 받아요. 평가권을 학교에 주지 않으면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건 불가능해요.” 고입 연합고사, 일제고사, 수능 등 획일적인 시험으로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는 한 학교의 교육과정은 획일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고교 교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수능뿐만이 아니다. 내신 등급제도 문제다. 유수용 교장은 “교양 과정을 개설하고 싶었는데 학생 수가 워낙 적으니 내신 등급 받는 데서 불리할 수 있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시도를 못 했다”고 말했다. 특히 미래형 교육과정이 내세우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정’은 교장이 새로운 교육을 하고자 할 때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가 입시 교육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주 효광중의 김선호 교장은 “미래형 교육과정이 취지대로 정착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학교가 교육과정을 개방적으로 운영한다고 해도 고교나 대학은 여전히 점수 위주로 선발하는데, 늘 결과에 다급해하는 학부모들이 그걸 기다려 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와부고 김학일 교장의 생각은 다르다. “창의력, 사고력 교육을 하면 학생들의 학습 동기가 높아지기 때문에 성적이 자연스레 올라요. 새로운 교육이 결코 입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한테 설득할 수 있다면 굳이 입시를 바꾸지 않아도 교육의 개혁은 가능하다고 봐요.” 그러나 와부고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김학일 교장도 “개방형 자율학교는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들이 합의해 획일적인 교육을 벗어나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또 공모제 교장이 하는 일에 대한 수용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교장들이 ‘2009년 개정 교육과정’, 이른바 미래형 교육과정을 시행하는 데 공동체의 합의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산의 박 교장은 “우리 교육의 문제를 교사의 탓으로만, 학부모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라며 “미래형 교육과정을 시행할 때 교육 공동체가 파괴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모두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재를 한 몇몇 교장들은 아직 미래형 교육과정에 대한 어떠한 공문이나 자료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