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는… 입시 가지고 5년 내내 공방하다 끝났잖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정책 결정을 신속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 뜻도 그랬고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이 지난 2월 말, 한 일간지와 인터뷰 중에 한 말이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진은 지난 7월, 개정 교육과정에 대해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범국민교육연대 등 교육단체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교사들 ‘미래형 교육과정’ 비판
‘미래가 없는 미래형 교육과정.’
오는 12월에 고시될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을 교사들이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이 결여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래’가 아니라 ‘소통’이다. 개정을 추진하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사들을 상대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는 동안 교사들이 개정 교육과정에 대해 느끼는 반감은 공포에 가깝다.
우선 교육과정의 20%를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는 권한이 학교에 생기는 것에 대한 교사들의 우려가 크다. 충북의 ㅊ고 김아무개 교사(가정)는 “우리 학교는 20% 자율권이 생기자 벌써 다음해에 가정 수업시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일주일에 3시간 하던 영어를 4시간으로 늘리기로 했다”며 “학교장은 결국 학교 평가에 목맬 수밖에 없는데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결국 학업 성취도 평가 대비 교육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 자율권이 일제고사 결과나 진학 성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교장에 의해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2009년 개정 교육과정 논의에 깊숙이 관여한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일부 학교에 대해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한 뒤 학교의 대응을 보고 개선점을 찾은 뒤 모든 학교로 확대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집중이수제에 대한 불신도 심각하다. 집중이수제는 음악, 미술, 체육, 도덕, 가정 등 수업량이 적은 과목들을 한 학기 또는 한 학년에 몰아서 배우는 것을 뜻한다. 중학교 3년, 여섯 학기 동안 일주일에 1시간씩 배우는 음악을 한 학기로 모으면 일주일에 6시간을 집중 이수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들은 집중이수제가 학교장이 20% 재량권을 이용해 국영수 위주의 교육을 하도록 돕는 제도라고 비판한다. 진영효 상암중 교사는 “일제고사, 수능 등이 사라지지 않는데 학교장이 국영수를 줄일 리는 없고 음미체를 줄일 것”이라며 “일주일에 1시간 하는 과목을 20% 줄이면 고작 10~15분밖에 못 줄이지만 6시간으로 몰아 놓고 1~2시간 줄이는 건 쉽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실질적인 수업 비중은 줄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집중이수제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도구로 쓰일 것이라는 우려다.
양 교수는 “고3 때 시간표에 음악, 미술이 있어도 실제로 수업은 안 하는데 집중이수제를 통해 1, 2학년에 하게 되면 그런 파행은 없어질 것”이라며 “어차피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던 수업을 제대로 운영되도록 한 것이지 국영수로 수업 시간을 몰아주려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던 1997년 이미 집중이수제가 왜곡되는 것을 경험한 교사들은 안심할 수 없다. 박만용 역곡중 교사는 “10년 전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될 때 한 고교에서 일주일에 10시간씩 미술 집중과정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며 “내가 학교를 떠나면서 영어 집중 과정으로 바뀌더라”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학생의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은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을 중학교 3학년까지로 단축하고 고교부터는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교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7차 교육과정에서도 학생들의 선택권을 강조했지만 학교는 결국 선택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ㅅ고의 최아무개 교사는 “학교에 세계지리, 세계사, 법과 지리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들이 반을 구성했는데도 학교에서 교사나 강사를 모시지 못해 학생들이 결국 포기했다”며 “교사수급이 된다고 해도 내신이나 수능의 유불리를 따지기 때문에 소수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배우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교과부 교육과정기획과 관계자는 “시뮬레이션을 해 봤을 때 현재 교원 수로도 미래형 교육과정 운영은 가능했다”며 “아주 소수의 학생들이 선택하는 교과에 대해서는 일부 부족하지만, 이는 시·도 교육청이 직접 강의를 연다거나 거점학교 등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영효 교사는 “거점학교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논의된 것이었지만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 학교가 모두 학력 경쟁을 하는데 남의 학교 학생을 데려다 열심히 가르치겠느냐”고 말했다. 교과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교사들은 교육과정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 교사는 “결국 미래형 교육과정은 교육과정이 아니라 자율형 사립고와 입학사정관제를 관철하기 위한 교과부의 정책일 뿐”이라고 말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수가 초·중학교는 주당 평균 3시간 이상이지만 고등학교는 주당 평균 4시간으로 정해진 교육과정 시안을 보면 그런 추측이 나올 만도 하다. 교육과정을 실제로 학생들한테 적용하는 이는 교사다. 교육과정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은 상황에서는 시행된다고 해도 현장에서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교사들과의 소통에 하루빨리 나서야 하는 이유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교사들은 학생의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은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을 중학교 3학년까지로 단축하고 고교부터는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교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7차 교육과정에서도 학생들의 선택권을 강조했지만 학교는 결국 선택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ㅅ고의 최아무개 교사는 “학교에 세계지리, 세계사, 법과 지리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들이 반을 구성했는데도 학교에서 교사나 강사를 모시지 못해 학생들이 결국 포기했다”며 “교사수급이 된다고 해도 내신이나 수능의 유불리를 따지기 때문에 소수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배우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교과부 교육과정기획과 관계자는 “시뮬레이션을 해 봤을 때 현재 교원 수로도 미래형 교육과정 운영은 가능했다”며 “아주 소수의 학생들이 선택하는 교과에 대해서는 일부 부족하지만, 이는 시·도 교육청이 직접 강의를 연다거나 거점학교 등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영효 교사는 “거점학교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논의된 것이었지만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 학교가 모두 학력 경쟁을 하는데 남의 학교 학생을 데려다 열심히 가르치겠느냐”고 말했다. 교과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교사들은 교육과정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 교사는 “결국 미래형 교육과정은 교육과정이 아니라 자율형 사립고와 입학사정관제를 관철하기 위한 교과부의 정책일 뿐”이라고 말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수가 초·중학교는 주당 평균 3시간 이상이지만 고등학교는 주당 평균 4시간으로 정해진 교육과정 시안을 보면 그런 추측이 나올 만도 하다. 교육과정을 실제로 학생들한테 적용하는 이는 교사다. 교육과정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은 상황에서는 시행된다고 해도 현장에서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교사들과의 소통에 하루빨리 나서야 하는 이유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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