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공부하는 힘’이 열쇠다
평가목표 집착하는 아이들 성적 나쁘면 쉽게 좌절
학습목표 세우면 도전하는 과정서 재미·성취감 느껴
평가목표 집착하는 아이들 성적 나쁘면 쉽게 좌절
학습목표 세우면 도전하는 과정서 재미·성취감 느껴
“몇 점 받았니?” “몇 등 했니?” 아마도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성적이 매우 좋게 나온 극소수 아이들을 제외한 많은 아이들은 학부모의 이런 질문에 가슴부터 콩닥콩닥 뛴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초등학교와는 달리 성적과 석차가 표시된 성적표를 받는다. 그래서 성적표가 나올 때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지난 중간고사에서 전교 14등을 했다는 조아무개(서울ㄷ중3)군은 시험만 치르고 나면 ‘경쟁자들’의 점수를 물어보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누구보다 잘 봤다”, “2개 틀렸지만 내가 반에서 제일 잘 봤다”, “전교 1등은 3개 틀렸다”는 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항상 주변 아이들과 비교함으로써 평가하곤 한다. 조군은 “엄마가 항상 몇 개 틀리고, 몇 등 했냐고 물어보기 때문에 나의 등수를 미리 알아놔야 하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더 궁금하다”고 했다.
하지만 박지원(노곡중2)양은 시험에 대한 반응이 이와 달랐다. “중학교 들어와서 본 첫 시험에서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이 나왔다”는 박양은 “엄마는 조금 실망하신 듯했지만, 나는 별로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했다. “단지 영어·수학 같은 경우에 초등 때처럼 공부하고 ‘이 정도면 됐겠다’ 싶었는데, 뜻밖에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중학교가 초등학교와 다르구나’란 생각에 놀랐다”고 덧붙였다.
이런 두 아이의 상반된 반응은 목표에 대한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캐럴 드웩 컬럼비아대 교수는 “학교와 같이 성취가 중요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형태의 목표로 ‘평가목표’와 ‘학습목표’가 있다”며, “평가목표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 얼마나 똑똑한지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고, 학습목표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하고, 도전을 통해서 완전히 익히려고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평가목표를 가진 아이들은 ‘실패는 내가 능력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거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낙관적인 태도와 자신감을 상실하는데, 학습목표를 가진 아이는 ‘실패는 자연스러운 배움의 과정일 뿐, 나는 아직 배우고 발전하는 중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잃지 않는다”고 했다.
정윤경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모든 아이들은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주가 되는 성향에 따라 학습 형태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이승주(마석중2)양은 학습목표를 가진 아이의 특징을 보이는데, 이양은 “대체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이 목표를 세우고 공부한다”고 했다. ‘조금 더 많이’란 목표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도전해서 이뤘을 때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한 분량을 스스로 정해놓은 듯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느낌을 물었을 때 “목표를 세운 날이 10일 정도라면 6일 정도는 목표대로 끝마치는 편”이라며, “끝내지 못했을 땐 찝찝하지만 다음에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끝냈을 때는 비 오는 날 샤워 끝내고 나온 것처럼 상쾌했다”며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모습은 김송희(동구여중3)양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김양도 “매일 책상에 앉을 때 할 수 있는 양보다 조금 더 목표를 세우는데, 목표를 마친 날엔 롤러코스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의 짜릿한 느낌이 든다”며 “기분이 좋고, 상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런 아이들은 목표가 어려워도 도전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고, 배우는 데 초점을 두기 때문에 실패해도 ‘배울 게 많다’는 생각에 새로운 원리와 문제해결 방식을 터득하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평가목표를 가진 아이들은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배돼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어려운 목표에 도전하지도 않고, 쉽게 포기하며, 두려움도 많다”며 “잘하다가 한 번 곤경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했다.
어떤 학부모라도 자녀를 ‘학습목표를 갖고 도전하고, 성취하며, 실패도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아이’로 기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법은 뜻밖에 단순했는데, 학부모가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정 교수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잘했니?’와 같은 평가적 질문은 피하고, ‘어려웠던 점’과 대처방법을 물어보라”고 했다. 또 “능력·품성과 같은 아이의 기본적 기질·성향을 질책·칭찬하기보다는 구체적 노력 과정과 방법을 언급하라”며 “‘모든 것은 배움의 과정’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아이에게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점수, 경쟁, 시험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평가지향적 사회에서 아이의 ‘공부하는 힘’의 절반은 부모의 말 한마디에 좌우될 수도 있다. 말 한마디로 아이는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고, 성취·실패하는 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
정종법 기자 mizzle@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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