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탁토론의 핵심은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함께 찾는다는 점에서 ‘협동심’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백신중에서 열린 원탁토론광장 모습.
경기교육청 ‘원탁토론광장’ 찾아가보니
“요지는! 왜냐하면! 예컨대! 그래서!”
토론의 정석이 공개됐다! 지난 11월3일, 경기도 고양시 백신중 도서관. 여덟 모둠으로 나눠 앉은 64명의 학생(1, 2학년)과 10여명의 교사들을 ‘일동 주목’하게 만든 주인공은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 강치원 교수(강원대 사학과)였다. ‘요지’부터 ‘그래서’까지는 강 교수가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는 방법’을 가르칠 때 방점을 찍는 부분이다. “네 가지를 알면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 먼저 말하고, 이유를 대고, 구체적 사례를 소개한 다음, 마무리를 하는 겁니다.”
‘학교토론문화,교실수업개선을위한경기교육원탁토론광장’(경기도교육청 주최, 원탁토론아카데미 주관)이란 이름의 이 행사는 경기도교육청이 신청을 받아 선정한 경기도 내 16개 중·고교에서 원탁토론 전문 강의도 하고, 실제 원탁토론도 하는 시간으로 꾸려진다. 선정 학교에선 ‘연수’와 ‘행사’라는 이름으로 두 번에 걸쳐 토론대회를 여는데 백신중은 처음으로 원탁토론광장 ‘연수’를 받은 학교였다.
토론광장의 특징은 찬반토론이 아니라 ‘원탁토론’을 배운다는 거다. 흔히 ‘토론’ 하면 ‘찬반’을 떠올리지만 강 교수는 “찬반토론은 학교 교실에선 의미가 없다”고 했다. “찬반토론만 하면 학생들이 건방져지고, 마음이 상하기도 쉽습니다. 중요한 건 교사의 능력이 절대 길러지지 않는다는 거고요. 학생들끼리 토론하고 교사들은 가만히 있게 되니까요.” 강 교수는 원탁토론이 “주입식 수업과 객관식 문제에 익숙해진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며 “수업 개선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향상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배려하는 교실 문화가 형성되니까요.”
“두괄식으로 주장을 먼저 말한 다음 첫째, 둘째, 셋째로 정리하라! ‘요지는, 예컨대, 왜냐하면, 그래서’로 정리해서 말하라!” 이날 강의의 요점이었다. 학생들은 이렇게 토론의 규칙과 방법을 익힌 뒤 모둠별로 흩어져 두 번의 원탁토론을 진행했다. 사전에 학생들이 선정한 토론 주제는 ‘바람직한 인터넷 문화-‘사이버 폭력의 문제점과 해결책’, ‘통신언어, 어떻게 쓸 것인가’였다. 일단, 여덟 명 학생이 주제에 대해 돌아가며 한 번씩 발언을 한 다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다시 돌아가며 2차 발언을 하는 방식이다. 2차 발언 때는 자신한테 주어진 시간 동안 다른 토론자들한테 질문하고 답변을 받아낼 수도 있다.
‘교실서 적용할 수 있는 토론기술 익히기 ‘열공’
반대 의견 경청하면서 대안찾는 협동심도 길러’
“저는 통신언어를 쓰는 입장에서 찬성 의견을 말해보겠습니다. 첫째는 인터넷 안에서 유대감을 형성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둘째는 못하게 하면 더 하려는 심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셋째는 이미 인터넷 통신언어는 시대적으론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는 겁니다.” 두 번째 토론시간, 손승주군은 강 교수가 알려준 방식을 대입해 ‘첫째, 둘째, 셋째’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이석민군은 모둠원들한테 ‘토론자’라는 말을 붙여가며 논리적으로 질문을 덧붙였다. “손승주 토론자께서 통신언어의 사용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셨습니다. 근데 초·중생들이 “님 얼굴 좀 짱인 듯”과 같은 표현을 쓰는 것처럼 언어 파괴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토론광장은 학생과 교사 모두한테 토론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계기였다. 손승주군은 “토론에서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온 천수진양은 “평소 토론 같은 걸 못 해보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신청했는데 새로운 경험이었고, 준비하면서 배경지식도 많이 쌓인 것 같다”고 했다. 평소 토론을 접할 일이 많지 않았던 건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정은 교사(국어)는 “이렇게 제대로 된 강의를 듣고 절차를 밟아 토론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정말 좋은 공부를 한 것 같다. 9일에 하는 2차 행사도 기대된다”고 했다. 변미희 교사(국어)는 “직접 해보니 이 토론의 핵심은 ‘듣고, 말하기’인 것 같다”며 “원탁토론에선 학생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면서 어떤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경기도교육청 중등교육과 양재길 과장은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 환경에선 토론이라는 것 자체가 어렵다. 자생적으로 토론 문화가 꽃피도록 정보도 주고,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었다”고 토론광장 운영 취지를 설명하면서 “내년에도 이 행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오엠아르(OMR) 답안지로 학생을 평가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할 것”이라며 “주관적 평가권을 교사한테 돌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토론 수업이 교사가 주도하고 학생이 참여하는 교실을 만드는 데 큰 구실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 행사는 1월 말까지 선정된 경기도 내 16개 학교를 순회하며 이어지고, 행사 뒤엔 학생들이 제출한 소감문, 논술문 등을 바탕으로 교육감상, 교장상,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상 등도 수여할 예정이다.
고양/글·사진 김청연 기자, 김지희 학생수습기자 2기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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