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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모든 친구가 ‘선생님’ 가르침을 주고 받다

등록 2009-11-22 16:25수정 2009-11-22 16:26

대전 동화중 학생들은 학습동아리를 통해 자기주도학습 습관을 기른다. 사진은 ‘공부하자’ 회원들이 함께 공부하는 모습.
대전 동화중 학생들은 학습동아리를 통해 자기주도학습 습관을 기른다. 사진은 ‘공부하자’ 회원들이 함께 공부하는 모습.
대전 동화중 ‘자기주도적’ 학습동아리
선생님은 모르는 눈높이 교육의 장
과목별 수업 맡아 학생 스스로 강의
친구가 가르쳐 주니 귀에 쏙쏙 성적 쑥쑥

“오스트레일리아는 국토의 3분의 2가 건조기후예요. 강수량이 500m 이하죠. 나머지는 온대기후인데, 사람이 살기에 온대기후가 좋겠어요, 건조기후가 좋겠어요?”

“온대기후!”

“그래서 시드니나 캔버라 같은 인구밀집지역이 전부 온대기후 지역, 바로 이쪽에 있어요.”

지난 16일 오후, 대전 동화중학교의 한 교실에서 기말고사에 대비한 사회 수업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교사가 없다. 칠판 앞, 교사의 자리에 서서 지도를 가리키는 이는 교복을 입은 1학년 황의림(13)군이다.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분필을 집어 든 자세며 지역의 기후와 주민의 생활을 연계해 설명하는 논리까지 ‘교사’로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뭣보다 그를 교사답게 만든 것은 수업에 집중하는 여섯 명의 ‘제자’들이었다. 황군을 포함한 7명은 동화중의 학습동아리 ‘공부하자’의 회원이다.

학습동아리는 동화중의 수업비평교과교육연구회 교사들의 아이디어다. 이 모임을 이끄는 승광은 교사는 “딸 둘이 대학에 다니면서 스터디 그룹을 통해 시험 준비도 하고, 취업 대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참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우리 아이들한테도 적용하면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도입했다”고 말했다. 학습동아리는 지난 5월 중간고사가 끝난 뒤에 모집을 시작했고 당시에 모두 13개 동아리가 생겼다.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3학년 학생들이 빠지고 2학기 중간고사를 마친 뒤에 5~6개가 남았다. 국어, 과학, 독서 등 특정 교과목을 공부하는 동아리도 있지만 대개는 전 과목을 복습하는 공부 모임들이다.


동화중의 학습동아리에서는 누구나 ‘교사’다. ‘공부하자’의 회원 7명은 사회, 기술·가정, 수학, 국어, 과학, 중국어, 영어 등의 7과목을 각각 나눠 맡아 강의한다. 이날은 황 군의 사회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바로 옆반에서는 또 다른 학습동아리 ‘아름드리’의 백채원(13)양이 ‘도형의 성질’에 대해 수업을 하고 있었고 아래층 2학년 교실에서는 ‘스터디그룹 X’의 김지수(14)군이 ‘후삼국의 성립과 배경’을 강의하는 중이었다.

학생들의 강의 준비는 교사 못지않다. ‘송골매’ 회원들이 공유하는 ‘태양변~신’이라는 암호는 중국의 근대화 운동(태평천국운동,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 신해혁명)을 일어난 순서대로 외우는 방법이다. 사회를 맡은 이은혜(14)양이 교육방송(EBS) 인터넷 강의를 보다가 발견해 인쇄물로 만들어 회원들한테 나눠줬다. 그는 “혼자 공부할 때는 모르면 그냥 넘어갔는데 이제는 선생님한테 찾아가서 꼭 확인하고 정확하게 알려고 노력한다”며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실 때 잘 들으면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와 그렇지 않은 문제를 눈치챌 수 있게 되는 것은 덤”이라고 말했다. ‘스터디그룹 X’의 김지수군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문제집이랑 책, 인터넷 카페에서 찾은 자료까지 더해서 친구들한테 나눠줄 자료를 만든다”고 말했다.

따라서 가르치는 것은 곧 배우고 익히는 일이다. ‘아름드리’에서 수학을 강의하는 백채원(13)양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수학을 잘해서가 아니라 못해서 맡았어요. 친구들한테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하게 되니까요. 이제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겠고 혼자 공부해도 지루하지가 않아요.” 심리학자 윌리엄 가즈너는 읽으면 10%를 배우고, 들으면 20%, 보면 30%를 배우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면 95%를 배운다고 했다.

모든 친구가 ‘선생님’가르침을 주고 받다
모든 친구가 ‘선생님’가르침을 주고 받다

이 때문에 학습동아리에서 강의를 하는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양은 1학기 중간고사에서 70점을 받았던 수학에서 2학기 중간고사 때 100점을 받았다. 백양과 같은 동아리에서 과학을 강의하는 이가영(13)양도 과학 점수가 20점이나 올랐다.

자기가 강의하는 과목뿐만 아니라 친구들한테 강의를 듣는 과목의 성적도 크게 오른 사례가 많다. 이은혜양은 “과학을 맡은 선희 덕분에 70점에서 100점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같은 동아리 선아현(14)양도 과학 점수가 20점 올랐다. 이는 곧 학생들이 서로의 눈높이에 맞는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김선희(14)양은 퀴리 부인이 라듐을 발견한 것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퀴라부인’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황의림군은 이슬람교를 강의하면서 ‘알라, 알라’를 외치며 엎드려 절을 했다. 깔깔거리며 웃으며 기억한 개념은 시험이 끝나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학생들은 강의를 통해 각자의 지식과 더불어 경험도 나눈다. 회원들이 입을 모아 “진짜 수학 잘한다”고 추어올리는 김준성군은 “아빠랑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수학 공부를 했는데 아빠는 선행학습보다 기초를 다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다”며 “그때 기초부터 공부한 게 지금 친구들한테 수업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대덕연구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한다. 아버지는 지식과 능력을 아들한테 전수했지만, 아들은 그것을 동아리 회원들과 공유한다. 국어를 맡은 안준모(13)군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한문과 고사성어에 대한 지식을 나눈다. 김군의 아버지와 안군의 할아버지 모두 동화중의 학습동아리를 통해 ‘재능 기부’를 하는 셈이다.

물론 처음에는 마찰이 있었다. “수준이 맞지 않는다”며 성적이 낮은 학생의 동아리 가입을 꺼리는 학생들이 생긴 것이다. 동아리 지도교사를 맡고 있는 김미열 교사는 “그때는 교사가 개입해서 학습동아리의 취지를 설명했다”며 “공부 잘하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서로 가르치고 채워주면서 스스로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니 잘 따라줬고 게다가 결과도 좋게 나오니 이제는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학습동아리를 통해 얻는 진짜 귀한 자산은 성적이 아니라 자기주도력이다. ‘하기 싫다는 말을 하지 말자’, ‘부모님 전화를 빼고 휴대폰은 받지 않는다’, ‘지각하거나 숙제 안 해오면 벌금 500원’ 등은 ‘아름드리’의 규칙이다. ‘스터디그룹 X’의 회장 전휘수(14)군은 ‘스터디 출석 전 주의사항, 출석 시 주의사항, 진행 방법, 벌칙’ 등을 정리해 아예 문서로 만들었다. 전군과 같은 동아리에 속한 진혜민(14)양은 “1학기 때는 지각 대장이었는데 스터디 하면서 지각을 한번도 안 했다”며 “학교에서는 한 번 맞으면 그만이지만 친구들하고 약속을 어기면 신뢰도 깨지고 공부도 놓치게 되니 내 손해”라고 말했다. 글·사진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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