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관희의 학부모코칭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 11월 거의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말을 들라고 하면 바로 ‘루저’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한 여대생이 텔레비전에 나와 ‘180㎝ 이하의 남성은 루저(패자)!’라는 말을 한 것을 계기로 그 말을 부각시킨 언론의 태도에 대한 논란은 물론, 승자-패자에 대한 인식이 뚜렷한 사회 현상 등에 대한 논란들로 이어졌다. 키가 작아 학창시절 늘 앞 번호를 도맡았던 내게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공부를 잘해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은 다녔지만 키가 작아 아무 여자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깊은 믿음을 가졌었다. 따라서 학창시절 이런저런 활동은 열심히 했지만 여자친구 사귀는 쪽은 아예 관심 밖인 듯 행동했다. 사실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도 감히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지금의 아내가 호감을 표시하자 고맙고 황송했고, 별다른 고민 없이 결혼으로 진행시켰다.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나서 선택한 아내는 아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심리적으로 매우 건강한 사람이어서 나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지지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완벽하지 못한 내 모습에 대한 못마땅함이 늘 나에게 있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귀하고, 이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고, 이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상담과 코칭 공부를 꽤 하고 난 이후의 일이다. 나를 그런 존재로 인식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귀하고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자 말 그대로 모든 관계에서 훨씬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귀한 진리를 늦게라도 깨닫고 존재로서의 당당함을 찾게 된 것은 나에게 더없는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어떤 이유이든 자신의 현재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 스스로를 탓하면서 남 앞에 섰을 때 위축된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또 반대로 겉모습은 당당하지만 알고 보면 속이 허한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어찌됐든 현재의 모습은 과거의 내가 만들어 놓은 것으로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다. 작은 키 역시 내가 만든 건 아니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일에 신경 쓰고 가슴 아파하는 것은 자신의 힘을 낭비하는 일일 뿐이다. 따라서 과거는 무조건 용서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인간이 위대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위대함도 역시 여기에서 출발한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부모가 맨 처음 할 일이다. 현재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위축된다. 키가 작다, 뚱뚱하다, 머리가 나쁘다, 공부를 못한다 등의 말들이 아이를 위축시키는 말들이다. 이런 말들을 할 때 부모는 아이 스스로가 키를 키우려 하고, 살을 빼려 하고, 공부를 더 잘하려는 노력을 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의 효과는 미지수이다. 먼저 아이가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받아들인다면 훨씬 신나게 그런 노력을 할 것이다. 자녀의 과거는 무조건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현재는 무조건 사랑한다. 미래는 무조건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 부모가 먼저 할 일은 자신의 과거를 무조건 용서하고,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고, 자신의 미래를 희망하는 일이다. 남관희 한국리더십센터 전문교수 · 한국코칭센터 전문코치 khnam@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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