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강당에서 수업 중인 음악반 학생들.(왼쪽)
대원여고 미술 갤러리.(오른쪽 위)
미술 실기 연습실.(오른쪽 아래)
문과·이과와 같은 정규과정
고액 레슨 등 무료로 받아
집안 사정으로 포기했던 재능
학원 아닌 학교서 ‘무럭무럭’
고액 레슨 등 무료로 받아
집안 사정으로 포기했던 재능
학원 아닌 학교서 ‘무럭무럭’
‘예고 못잖은 예과’ 운영 서울 대원여고
화가 박수근은 어릴 적 가난했다. 부유하던 집안이 기울어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래도 미술은 포기하지 않았다. 교장선생님 덕이었다. “졸업은 하였으나 늘 도와주시던 교장선생님은 단념하지 않으시고 상급학교에는 진학을 못 하더라도 집에서 그림공부를 계속하라고 재료를 사주며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다.”(아내 김복순의 일기, 박수근 미술관 누리집 www.parksookeun.or.kr)
“돈 없다고 포기하게 할 수 없다”
음대·미대의 꿈
일반고서 키운다
콘트라베이스를 켜는 윤인선(17)양도 가난하다. 음악이나 미술은 부잣집 딸만 하는 줄 알았다. 윤양한테는 학교가 구원이었다. 고1이던 2007년 11월, 그는 학교에서 처음 콘트라베이스를 배웠다. 그로부터 2년 뒤 올해, 삼육대 음악대학에 수시모집으로 합격했다. “이제는 베이스가 없는 저는 상상할 수 없어요. 죽을 때까지 함께할 동반자예요.” 2년 동안 그가 음악적 성장을 이룬 곳은 서울 대원여고(교장 연용희)다. 대원여고에는 음악반과 미술반이 있다. 동아리가 아니다. 인문사회과정(문과), 과학기술과정(이과)과 지위가 같은 예능과정이다. 교실도 따로 쓰고 수업시간표도 다르다. 시험 과목도 다르고 내신 산출도 따로 한다. 실기 연습실이 음악반에 네 곳, 미술반에 네 곳이다. 음악반은 피아노가 놓인 중강당도 있다. 2학년·3학년에 음악반, 미술반이 각각 하나씩 네 개 반이다. 모두 151명이 일반계고교에서 예술교육을 받는다. 대원여고는 판사나 의사의 꿈만 지원하지 않는다. 디자이너와 오케스트라 단원의 꿈도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큰다. 지난 1일 오후, 6교시 수업이 한창인 대원여고 교정은 고요했다. 1층, 2층, 3층…. 계단을 밟고 오르자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현악기를 연주하는 소리도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의 문을 여니 무대에서는 콘트라베이스 연주가 한창이다. 예능과정 음악반의 전공수업 ‘합창합주’ 과목 시간이다. “다시, 다시 해라. 베이스 연주자가 무대에 서서 피아노 반주자를 보고 있으면 심사위원들 시선이 반주자한테 쏠려요. 연주자는 심사위원을 보고 있다가 연주 시작할 때 반주자한테 살짝 고개만 끄덕여주면 된다고.” 정치훈(48) 교사의 지도에 따라 콘트라베이스를 잡은 학생이 두세 차례 인사를 연습한다. 대원여고 예능과정 학생들은 하루 시간표의 절반이 전공 교과 수업이다. 음악반은 합창합주, 실내악, 음악이론 등 모두 7개 교과목이 있다. 미술은 미술사, 회화, 소묘, 공예 등 8과목을 배운다. 여느 예술고(예고) 못지않은 교육과정이다. 음악반의 정 교사와 미술반을 맡은 문형진(53) 교사는 “초기에 예능과정 만들면서 예고 여러 곳을 둘러봤다. 예고에서 배운 게 많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음악반의 ‘향상음악회’는 예고 모델의 진화다. 정 교사는 향상음악회 횟수를 한해 5번으로 대폭 늘렸다. 향상음악회는 학생들한테 모의고사나 마찬가지다. 발표곡은 대학 지정곡으로 한다. 음악회에는 대학교수, 전문 연주자들을 초청해 평가표를 작성토록 했다. 무료로 받는 고액 레슨이다.
예고보다 유리한 점도 있다. 서울의 한 예고에 한 학기를 다니다 이곳으로 전학온 손아무개(18)양은 “음대도 좋은 대학에 가려면 내신 성적이나 수능 성적이 필요한데 이런 시험 대비는 예고보다 훨씬 잘해주는 것 같다”며 “한 학기밖에 안 다녀서 잘은 모르지만 실기 수업도 예고랑 크게 차이가 나는 건 못 느꼈다”고 말했다. 대원여고 예능과정 학생들은 야간 자율학습도 한다. 방과후 특기적성 시간에는 음대·미대 입시에 중요한 국어, 영어, 사회를 심화학습한다. 대학이 반영하지 않는 수학은 일주일에 2시간만 배운다. 예고나 예능과정이 없는 일반계고교의 비효율을 최소화한 셈이다.
결과는 눈부시다. 2003학년도 졸업생부터는 미술반, 음악반 전원이 4년제 대학에 합격했다.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국민대 등 예술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화려한 진학 실적이 더 놀라운 이유는 따로 있다. 예능과정 학생의 대다수는 고교에 들어와 예술을 처음 시작한다. 홍지연(17)양은 고2 때 처음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져서 못했거든요. 예능과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고등학교에 왔는데 음악반이 있어서 시작했어요.” 2008년에 대원여고가 예능과정 학생 68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1명을 뺀 67명이 초·중학교 때 예능과정을 희망했지만 실제 예고를 준비한 학생은 20명뿐이었다.
대원여고 예능과정의 수혜자는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학생들은 인문사회과정이나 과학기술과정 학생들과 똑같은 1분기 등록금 50만원을 내고 예술교육을 받는다. 2009학년도 서울 ㅅ예고의 1분기 등록금은 120만원이었다. 개인 레슨 비용도 학교를 통하면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정 교사는 개인 레슨을 받을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을 위해 친분을 무기로 직접 강사를 섭외한다. “보통 레슨비에 1/2, 1/5만 받고도 레슨을 해 줘요. 이제는 잘나가는 졸업생들이 있으니까 그 친구들이 후배를 위해 나서기도 하고요.” 일반계고교에서 예능과정을 운영하는 일은 예술교육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후배들을 지도해 온 1998년 졸업생 김경희(30)씨는 1년치 레슨비가 밀리기도 하고 시험보러 가는 학생들의 악기가 너무 안 좋아서 자기 악기를 빌려주기도 했다. 그는 “음악은 돈이 없으면 못한다는 편견이 있지만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을 돈이 없다고 포기하게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예능과정 학생들도 레슨을 받고 학원에 다닌다. 수능이 끝난 뒤 정시 모집을 앞둔 3학년 학생들은 학원에서, 연습실에서 입시 준비를 한다. 한계는 학교의 무책임이 아니라 입시가 긋는다. 문 교사는 “학생들이 지망하는 대학이 모두 다른데 각각의 출제 경향에 맞춰 개별 지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학생들한테는 지난 2년의 학교 공부가 든든한 자산이다. 미술반의 김소은(18)양은 “학교에서 기초를 탄탄히 다졌기 때문에 학원에서 입시에 대비한 기술만 배워도 금방 실력이 올라가는 것 같다”며 입시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글·사진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음대·미대의 꿈
일반고서 키운다
콘트라베이스를 켜는 윤인선(17)양도 가난하다. 음악이나 미술은 부잣집 딸만 하는 줄 알았다. 윤양한테는 학교가 구원이었다. 고1이던 2007년 11월, 그는 학교에서 처음 콘트라베이스를 배웠다. 그로부터 2년 뒤 올해, 삼육대 음악대학에 수시모집으로 합격했다. “이제는 베이스가 없는 저는 상상할 수 없어요. 죽을 때까지 함께할 동반자예요.” 2년 동안 그가 음악적 성장을 이룬 곳은 서울 대원여고(교장 연용희)다. 대원여고에는 음악반과 미술반이 있다. 동아리가 아니다. 인문사회과정(문과), 과학기술과정(이과)과 지위가 같은 예능과정이다. 교실도 따로 쓰고 수업시간표도 다르다. 시험 과목도 다르고 내신 산출도 따로 한다. 실기 연습실이 음악반에 네 곳, 미술반에 네 곳이다. 음악반은 피아노가 놓인 중강당도 있다. 2학년·3학년에 음악반, 미술반이 각각 하나씩 네 개 반이다. 모두 151명이 일반계고교에서 예술교육을 받는다. 대원여고는 판사나 의사의 꿈만 지원하지 않는다. 디자이너와 오케스트라 단원의 꿈도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큰다. 지난 1일 오후, 6교시 수업이 한창인 대원여고 교정은 고요했다. 1층, 2층, 3층…. 계단을 밟고 오르자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현악기를 연주하는 소리도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의 문을 여니 무대에서는 콘트라베이스 연주가 한창이다. 예능과정 음악반의 전공수업 ‘합창합주’ 과목 시간이다. “다시, 다시 해라. 베이스 연주자가 무대에 서서 피아노 반주자를 보고 있으면 심사위원들 시선이 반주자한테 쏠려요. 연주자는 심사위원을 보고 있다가 연주 시작할 때 반주자한테 살짝 고개만 끄덕여주면 된다고.” 정치훈(48) 교사의 지도에 따라 콘트라베이스를 잡은 학생이 두세 차례 인사를 연습한다. 대원여고 예능과정 학생들은 하루 시간표의 절반이 전공 교과 수업이다. 음악반은 합창합주, 실내악, 음악이론 등 모두 7개 교과목이 있다. 미술은 미술사, 회화, 소묘, 공예 등 8과목을 배운다. 여느 예술고(예고) 못지않은 교육과정이다. 음악반의 정 교사와 미술반을 맡은 문형진(53) 교사는 “초기에 예능과정 만들면서 예고 여러 곳을 둘러봤다. 예고에서 배운 게 많다”고 입을 모은다.
‘예고 못잖은 예과’ 운영 서울 대원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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