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은 산업화와 독재정권 속에서 인간에게조차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가
진 문제의식은 2009년 오늘날까지 현재진행형이다. 사진은 눈 오는 명동거리를 걷는 사람들.
우리말 논술 46. 문학 교과서로 논술 접근하기
과목별 논술교과서 / [난이도 수준-중2~고1]
■ 교과서 읽기
논점 1.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찾아본 현대사회의 인간관계
줄거리
1964년 어느 겨울밤, 서울의 한 길거리 선술집에서 구청 병사계에 근무하는 ‘나’는 안씨라는 성을 가진 대학원생과 우연히 만나 술자리를 함께한다. 하지만 대화는 깊이 있게 전개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흘러간다.
이윽고 얼마간 마음이 맞게 된 그들은 2차를 가려고 술집을 나서는데, 한 낯선 사내가 힘이 없는 목소리로 함께 가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안과 ‘나’는 조금은 떨떠름한 마음으로 승낙하고 사내와 함께 술을 마시러 간다.
그 사내는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을 사면서, 자신은 서적 판매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체를 병원에 해부용으로 팔았지만 아무래도 그 돈을 오늘 안으로 다 써 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중국집에서 나온 뒤, 사내는 안과 ‘나’를 이끌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돈을 쓴다. 그리고 갈 데를 찾지 못하다가 소방차를 보고는 무작정 택시를 잡아 쫓아간다.
화재 현장을 구경하던 중, 사내는 불 속에서 아내의 환영을 보고는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을 봉투째 그 속으로 던져 버린다. 한참 후 각자 돌아가려는 안과 ‘나’를 붙잡고 사내는 자신과 함께 있어 줄 것을 간청한다.
결국 여관에 셋이 함께 가게 되는데 ‘나’는 사내를 위하여 한 방에 들어갈 것을 제안하지만 안의 반대로 각기 다른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는 화투를 사다가 함께 놀 것을 제안하지만 이마저도 안에게 거절당한다.
다음 날 아침, 사내의 자살이 밝혀지고 안과 ‘나’는 도망치듯 여관을 나온다. 여관을 나와서 안은 사내의 자살을 예상했지만 그를 혼자 두는 것이 그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말한다. 이어서 안은 하루 사이에 너무 늙어버린 것 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작별을 고한다. 버스에 올라탄 나는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는 안을 발견한다. - 고등학교 <문학>
어떻게 읽을까
1965년 <사상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이 하룻밤을 함께 보내면서 발생한 일을 1인칭의 시점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려면 먼저 등장인물 간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등장인물인 ‘안’과 ‘나’는 서로에 대하여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피상적인 대화만 나눌 뿐이다. 이는 나중에 합류한 사내에게도 이어진다. ‘안’과 ‘나’는 사내의 아픔을 동정하지만 결코 어떠한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마지막에 사내의 죽음을 외면하고 황급히 여관을 빠져나오는 행위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196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는 것도 소설 이해에 도움이 된다.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불 속에 던져 버리는 사내의 행동을 통하여 산업화, 도시화가 한창 진행되던 당시 사회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방황하는 대학원생인 ‘안’의 모습을 통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독재 정권에 의해 좌절된 후 방황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이 소설이 가진 문제의식은 단지 1960년대라는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에도 유효하다. 이 소설을 통해 인간소외의 문제를 얘기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얘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 교과 심화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김승옥씨의 <서울, 1964년 겨울> (전략) 그러니 어쨌단 말인가. 작가는 왜 이런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쓴 것일까. 젊어서 이미 늙은 것들의 말장난 같은 대화와 상처한 중년의 자살로 채워진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이, 그것도 한국 소설사에 우뚝한 작품이 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제목을 ‘서울, 1964년 겨울’이라 단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1964년 겨울로 돌아가 보자. 그해 겨울은 추웠다. 한일기본조약 반대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은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선 군사정부에 의해 패퇴했다. 4·19가 열어젖힌 해방과 자유의 공간을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 소장. 그를 상대로 한 싸움을 별러왔던 학생들의 반격이 6·3사태로 불리는 64년 여름의 용틀임이었다. 그 용틀임이 무위로 돌아가자 이제 학생들에게 남은 것은 개인 차원의 사소한 실천뿐이었다. 그것은 또한 재래적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단자(單子)적 세계관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포장마차에서 만난 세 남자는 사회이면서도 사회가 아닌 독특한 동아리를 이룬다. 그들은 포장마차라는 동일한 공간에 각자 술을 마시러 왔다는 공통점으로 묶이지만, 그것이 어떤 유의미한 공동체의 형성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세 사람은 각자의 고독과 상처로 자은 고치 속에 웅크리고 틀어앉아 있을 뿐 고치 밖의 세계로 나올 염을 내지 못한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는 지문은 그들이 함께 그러나 따로 든 여관방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모두가 몸 부리어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김승옥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개인의 발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50년대까지의 한국 소설은 말의 올바른 의미에서 개인의 존재에 눈뜨지 못했었다. 소설이 개인에 관해 말할 때조차 그 개인은 공동체의 역사와 현실에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사이비 개인이었다. (중략) “파괴의 폐허 위에서 새로 시작되는 한국, 특히 서울에 대한 관심은 내 소설의 테마가 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처럼 작가로서 흥미로운 도시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서울이란 평생 그물을 던져도 고갈되지 않는 황금어장과도 같다.”(중략) “언어에 관한 자의식이 강해졌다는 것은 장점이다. 반대로, 싸워야 할 적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는 것은 단점이다. 개조를 위한 욕구와 절규가 보이지 않는다.” 알다시피 그는 결코 민중문학론자도 실천으로서의 문학의 신봉자도 아니다. 하지만, 역시 그는 4·19와 6·3을─ 그 성취와 좌절, 영광과 수치까지를 포함해 ─청춘의 훈장으로 간직한 전투의 세대에 속하는 것이다. -<한겨레> 1996년 7월12일치
■ 논제해결 타인과 소통이 차단된 현대인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나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서술하시오. (한양대 기출 변형) (가) “몹시 춥군요.”라고 사내는 우리를 염려한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추운데요. 빨리 여관으로 갑시다.” 안이 말했다. “방을 한 사람씩 따로 잡을까요?” 여관에 들어갔을 때 안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게 좋겠지요?” “모두 한방에 드는 게 좋겠어요.”라고 나는 아저씨를 생각해서 말했다. 아저씨는 그저 우리 처분만 바란다는 듯한 태도로, 또는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태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 더 좋았던 셈이었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내가 다시 말했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 안이 말했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안이 말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헤어져 사환이 지적해 준, 나란히 붙은 방 세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갔다.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지만, “난 아주 피곤합니다. 하시고 싶으면 두 분이나 하세요.”하고 안은 말하고 나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예?”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지요?” “물론 그렇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멀어져 갔다. “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 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 했는데….” 내가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는 짐작도 못 했으니까요. 씨팔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가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 고등학교 <문학> (나) 산업화, 도시화와 함께 최근에는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그로 인한 청소년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컴퓨터와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우리는 아주 간편하게 멀리 있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다양하고 많은 자료를 얻으며, 물건을 매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컴퓨터가 중심이 되는 정보사회는, 앉아서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환상적인 유토피아 세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사회에서 청소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은,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라 비인간화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컴퓨터 화면을 접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살아 있는 인간을 직접 대면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면서, 심각한 문제가 파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살아 있는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기계인 컴퓨터 화면을 주로 대하게 될 때에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생겨날까? 컴퓨터를 통한 간접적인 인간관계나 사이버 인간들과의 관계는 전통적인 인간관계와는 큰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인간관계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고, 일하고, 놀이하는 직접적인 관계이며, 이것이 좀더 확대되면 광의의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다. 반면에, 컴퓨터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인간관계는, 실제 인간들 간의 직접적인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간접적인 관계이다. (중략)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곳에는 해가 뜨고 비도 온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은 나의 ‘아바타’를 통해 바로 나 자신이 한다. 아바타란, 힌두어로 ‘분신’(分身)이라는 뜻이다. 이는 3차원의 캐릭터로, 현실감 있는 가상 입체 공간에서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이루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클릭 한 번으로 온라인 영화관에도 가고, 진짜 물건을 구입하며, 파도 소리가 실감 나는 곳에서 낚시를 할 수도 있다. 또,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에서 사용자의 의식을 다운받아 정말로 사실적인 게임을 즐기며, 다양한 사교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눈 내리는 거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녀의 모습은 현실 세계에서와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나의 ‘아바타’는 진정한 나인가? - 고등학교 <도덕>
■ 해결 방향 이번 논제는 두 제시문을 현대인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것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각 제시문에 대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가)는 소설의 한 장면으로, 여기에는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 피상적인 인간관계가 나타나 있다. 등장인물인 ‘안’과 ‘나’는 ‘사내’가 불안정한 상태인 것을 알지만, 각자 다른 방에서 자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다음날 그들은 사내의 죽음을 목격하지만, 자신의 삶에 귀찮은 문젯거리가 발생할 것을 염려해 피해버린다. 타인에 대한 진정 어린 관심과 애정보다는 자신의 삶의 편의성을 더 추구하는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나)에는 정보화 시대에서 실제의 인간관계보다 컴퓨터에 의한 가상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청소년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혼동해 결국 자기 자신한테서 소외되는 현대인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제시문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이 차단된, 고립된 현대인의 모습이다. 이런 상태에서 맺는 인간관계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이기적인 것이며, 동시에 피상적인 것일 뿐이다. 사람 대신 컴퓨터를 마주할 기회가 잦아지는 현재의 정보화 사회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함께 이뤄질 때 극복될 수 있다. 먼저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란 개인이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 위에 다른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 맺음을 통해 참된 기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이웃사촌’ 등과 같은 사례가 효과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사회적 노력이란 점차 인간의 위상이 줄어드는 사회체제에서 인간이 부품이 아닌 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서 이뤄진다. 이에 대해서는 복지 정책이나 교육 정책에서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교과 심화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김승옥씨의 <서울, 1964년 겨울> (전략) 그러니 어쨌단 말인가. 작가는 왜 이런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쓴 것일까. 젊어서 이미 늙은 것들의 말장난 같은 대화와 상처한 중년의 자살로 채워진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이, 그것도 한국 소설사에 우뚝한 작품이 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제목을 ‘서울, 1964년 겨울’이라 단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1964년 겨울로 돌아가 보자. 그해 겨울은 추웠다. 한일기본조약 반대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은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선 군사정부에 의해 패퇴했다. 4·19가 열어젖힌 해방과 자유의 공간을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 소장. 그를 상대로 한 싸움을 별러왔던 학생들의 반격이 6·3사태로 불리는 64년 여름의 용틀임이었다. 그 용틀임이 무위로 돌아가자 이제 학생들에게 남은 것은 개인 차원의 사소한 실천뿐이었다. 그것은 또한 재래적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단자(單子)적 세계관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포장마차에서 만난 세 남자는 사회이면서도 사회가 아닌 독특한 동아리를 이룬다. 그들은 포장마차라는 동일한 공간에 각자 술을 마시러 왔다는 공통점으로 묶이지만, 그것이 어떤 유의미한 공동체의 형성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세 사람은 각자의 고독과 상처로 자은 고치 속에 웅크리고 틀어앉아 있을 뿐 고치 밖의 세계로 나올 염을 내지 못한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는 지문은 그들이 함께 그러나 따로 든 여관방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모두가 몸 부리어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김승옥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개인의 발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50년대까지의 한국 소설은 말의 올바른 의미에서 개인의 존재에 눈뜨지 못했었다. 소설이 개인에 관해 말할 때조차 그 개인은 공동체의 역사와 현실에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사이비 개인이었다. (중략) “파괴의 폐허 위에서 새로 시작되는 한국, 특히 서울에 대한 관심은 내 소설의 테마가 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처럼 작가로서 흥미로운 도시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서울이란 평생 그물을 던져도 고갈되지 않는 황금어장과도 같다.”(중략) “언어에 관한 자의식이 강해졌다는 것은 장점이다. 반대로, 싸워야 할 적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는 것은 단점이다. 개조를 위한 욕구와 절규가 보이지 않는다.” 알다시피 그는 결코 민중문학론자도 실천으로서의 문학의 신봉자도 아니다. 하지만, 역시 그는 4·19와 6·3을─ 그 성취와 좌절, 영광과 수치까지를 포함해 ─청춘의 훈장으로 간직한 전투의 세대에 속하는 것이다. -<한겨레> 1996년 7월12일치
■ 논제해결 타인과 소통이 차단된 현대인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나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서술하시오. (한양대 기출 변형) (가) “몹시 춥군요.”라고 사내는 우리를 염려한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추운데요. 빨리 여관으로 갑시다.” 안이 말했다. “방을 한 사람씩 따로 잡을까요?” 여관에 들어갔을 때 안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게 좋겠지요?” “모두 한방에 드는 게 좋겠어요.”라고 나는 아저씨를 생각해서 말했다. 아저씨는 그저 우리 처분만 바란다는 듯한 태도로, 또는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태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 더 좋았던 셈이었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내가 다시 말했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 안이 말했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안이 말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헤어져 사환이 지적해 준, 나란히 붙은 방 세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갔다.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지만, “난 아주 피곤합니다. 하시고 싶으면 두 분이나 하세요.”하고 안은 말하고 나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예?”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지요?” “물론 그렇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멀어져 갔다. “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 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 했는데….” 내가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는 짐작도 못 했으니까요. 씨팔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가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 고등학교 <문학> (나) 산업화, 도시화와 함께 최근에는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그로 인한 청소년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컴퓨터와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우리는 아주 간편하게 멀리 있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다양하고 많은 자료를 얻으며, 물건을 매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컴퓨터가 중심이 되는 정보사회는, 앉아서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환상적인 유토피아 세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사회에서 청소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은,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라 비인간화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컴퓨터 화면을 접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살아 있는 인간을 직접 대면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면서, 심각한 문제가 파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살아 있는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기계인 컴퓨터 화면을 주로 대하게 될 때에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생겨날까? 컴퓨터를 통한 간접적인 인간관계나 사이버 인간들과의 관계는 전통적인 인간관계와는 큰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인간관계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고, 일하고, 놀이하는 직접적인 관계이며, 이것이 좀더 확대되면 광의의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다. 반면에, 컴퓨터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인간관계는, 실제 인간들 간의 직접적인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간접적인 관계이다. (중략)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곳에는 해가 뜨고 비도 온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은 나의 ‘아바타’를 통해 바로 나 자신이 한다. 아바타란, 힌두어로 ‘분신’(分身)이라는 뜻이다. 이는 3차원의 캐릭터로, 현실감 있는 가상 입체 공간에서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이루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클릭 한 번으로 온라인 영화관에도 가고, 진짜 물건을 구입하며, 파도 소리가 실감 나는 곳에서 낚시를 할 수도 있다. 또,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에서 사용자의 의식을 다운받아 정말로 사실적인 게임을 즐기며, 다양한 사교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눈 내리는 거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녀의 모습은 현실 세계에서와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나의 ‘아바타’는 진정한 나인가? - 고등학교 <도덕>
■ 해결 방향 이번 논제는 두 제시문을 현대인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것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각 제시문에 대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가)는 소설의 한 장면으로, 여기에는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 피상적인 인간관계가 나타나 있다. 등장인물인 ‘안’과 ‘나’는 ‘사내’가 불안정한 상태인 것을 알지만, 각자 다른 방에서 자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다음날 그들은 사내의 죽음을 목격하지만, 자신의 삶에 귀찮은 문젯거리가 발생할 것을 염려해 피해버린다. 타인에 대한 진정 어린 관심과 애정보다는 자신의 삶의 편의성을 더 추구하는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나)에는 정보화 시대에서 실제의 인간관계보다 컴퓨터에 의한 가상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청소년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혼동해 결국 자기 자신한테서 소외되는 현대인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제시문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이 차단된, 고립된 현대인의 모습이다. 이런 상태에서 맺는 인간관계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이기적인 것이며, 동시에 피상적인 것일 뿐이다. 사람 대신 컴퓨터를 마주할 기회가 잦아지는 현재의 정보화 사회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함께 이뤄질 때 극복될 수 있다. 먼저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란 개인이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 위에 다른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 맺음을 통해 참된 기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이웃사촌’ 등과 같은 사례가 효과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사회적 노력이란 점차 인간의 위상이 줄어드는 사회체제에서 인간이 부품이 아닌 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서 이뤄진다. 이에 대해서는 복지 정책이나 교육 정책에서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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