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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종교 내치면 평화가 올까

등록 2010-01-24 21:02수정 2010-01-24 21:57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18. 행복한 밥상, 먹거리에 담긴 인문정신
19. 다윈이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다면
20. 100년 뒤에 사람들은 무엇으로 돈을 벌까? - 소유의 사회학

어린아이들은 어림규칙(rules of thumb)을 따른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어른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른다는 말이다. “뜨거운 불에 뛰어들지 말라.”, “뱀을 손으로 만지지 마라.” 등의 말에 일일이 “왜요?”라고 묻는다 해보자. 그러면 아이는 머리가 트이기도 전에 목숨을 잃고 말 테다.

일일이 이유를 캐물어야 속이 풀렸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르던 아이들은 자식을 남길 나이까지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들이 낳은 아이들의 유전자에는 ‘무조건 순종’이라는 코드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살아남게 되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어느덧 어린이들에게는 ‘어림규칙’이 본능처럼 자리 잡았다. 유전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어림규칙이 나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앞가림할 나이가 될 때까지는 어른 말에 따르는 쪽이 안전하다. 하지만 어림규칙은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기도 한다. 도킨스에 따르면 종교는 어림규칙을 속이는 바이러스와 같다. 아무 명령이나 무조건 받아들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바이러스에 걸리기 쉽다. 마찬가지로, 어림규칙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권위 있는 목소리에 무조건 고개를 조아린다. 종교는 착한 영혼들을 조종하여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른다. 종교가 없었다면 9·11 테러 같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종교가 사라진다면, 사람들은 현실적이고 현명하게 살아갈 것이다. <만들어진 신>에서 도킨스가 펼치는 주장이다.


종교를 내쳐야 한다는 도킨스의 외침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왔을 때의 충격은 이보다 훨씬 컸다. 다윈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도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다윈은 가축을 예로 든다. 농부들은 가축들을 접붙여서 원하는 모양새로 만들곤 한다. 병에 안 걸리는 젖소를 만들고 싶다면 그런 소들만 모아 짝을 지어주는 식으로 말이다. 가축들은 짧은 세월 동안에도 모양이 바뀐다. 야생 상태에서도 생명체들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지지 않았을까? 신이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우수한 놈들은 살아남아 자식을 남겼을 테다. 살고자 하는 다툼이 치열한 자연 속에서는 강한 놈들만 ‘선택’되기 때문이다.

다윈은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에도 <종의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결론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인간은 신이 특별하게 신경 써서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동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기독교 신앙이 굳게 뿌리내렸던 유럽에서 다윈의 주장이 통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그럼에도 다윈의 주장은 점점 널리 퍼졌다. 과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종의 기원>은 당시 영국 사회에서나 나올 수 있었던 책이라고 말한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은 세계 곳곳에 힘을 떨치던 힘 센 나라였다. 강한 자들은 힘이 곧 정의라고 주장하기 마련이다. 거친 세상과 당당하게 맞서 싸워 이겼다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게다가 힘 센 자들은 자유롭게 경쟁하게 하는 쪽이 올바르다고 외친다. 자연에서도 ‘생존경쟁’은 부족한 무리들은 없애버리고 튼실한 부류들만 남게 하지 않던가. 자연은 강하고 튼실한 자들만 남는 쪽으로 ‘진화’하기 마련이다. 인류도 발전하려면 자연의 법칙대로 따라야 한다.

다윈의 이론은 나아가,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쫓아내고 죽였던 근거로도 쓰이곤 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우수한 독일 민족이 열등한 유대인들을 없애버리는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다윈의 원래 뜻과는 차이가 있다. 다윈은 생존 ‘경쟁’이라 말한 적이 없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생존 ‘투쟁’(struggle)을 하고 있다고 했을 뿐이다. 투쟁에는 꼭 남을 누르고 이겨야 한다는 뜻은 없다. 사막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도 살기 위해 애를 쓴다. 이 나무는 누구와 경쟁하지 않는다. 게다가 치열하게 경쟁한다 해서 꼭 상대가 사라져야만 내가 잘 산다는 법도 없다. 같이 숲을 이루던 나무들이 사라지면, 남아 있는 나무들도 버티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다윈은 자연의 진화가 ‘진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다윈이라면 과연 원숭이가 촌충보다 더 낫다고 말했을까? 진화는 살아 있는 것들이 제각각 처한 현실에 맞추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과학 이론들은 현실에 부닥치면 비틀어지기 마련이다. 침략과 전쟁을 좋아하는 정치가들은 다윈의 원래 뜻을 뒤틀어서 ‘경쟁’과 ‘진보’를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처럼 만들어버렸다.

도킨스의 주장은 어떨까? 도킨스는 진화의 법칙을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설명하는 학자이다. 그는 문화에도 진화의 법칙이 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인간만이 유전자의 독재에 맞설 수 있다.”고 외친다. 인간에게는 자연법칙에 따라서만 움직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 있다는 뜻이 되겠다.

반면, DNA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때 우리의 운명이 별들 속에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운명은 우리의 유전자 안에 있음을 안다.”

삶에 대한 열정이나 포부보다, 그동안의 업적평가와 통계자료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다. 과학은 언젠가는 우리 삶을 모두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 도킨스의 생각도 언젠가는 다윈이 그랬듯 일그러진 채 세상에 통하게 되지 않을까? 다윈의 진화론이 오해되어 히틀러라는 괴물을 낳았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과학의 발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종의 기원, 자연 선택의 신비를 밝히다〉〈만들어진 신〉
〈종의 기원, 자연 선택의 신비를 밝히다〉〈만들어진 신〉
<종의 기원, 자연 선택의 신비를 밝히다>
윤소영 풀어씀. 사계절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김영사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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