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24. 논쟁에서 이기는 39가지 방법
25. 나는 고발한다. 생각의 함정들을
26. 감시와 처벌, 사회가 감옥이 된다면 1922년, 미얀마에 배치된 영국인 경찰 에릭 블레어는 희한한 부탁을 받았다. 거리에 코끼리가 날뛰고 있으니 어떻게든 해보라는 거였다. 블레어가 현장에 다다랐을 때, 코끼리는 이미 진정되어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그럼에도 블레어는 총을 빼어들었다. 주변에 몰려든 구경꾼은 무려 2000여 명. 그들의 웅성거림은 자신을 겁쟁이라며 비웃는 소리처럼 들렸다. 대영제국의 관리가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는 법, 블레어는 태연한 척 코끼리를 쏘았다. 코끼리는 아주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이 사건은 블레어에게 잊지 못할 상처가 되었다. 영국에 돌아간 그는 경찰을 그만두고 작가가 됐다. 블레어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가짜 이름을 썼다. <1984년>으로 유명한 소설가 조지 오웰이 바로 이 사람이다. ‘노출불안’이란 자신의 약한 모습이 드러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주눅 든 남자들은 되레 자신이 ‘만능’인 양 뻐기며 거드름을 피운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자신감 없는 이들이 오히려 차갑고 강한 척하지 않던가. 이 점은 국가도 똑같다. 1870년,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크게 지고 말았다. 프랑스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이런 분위기에서 일어났다. 1894년, 드레퓌스 대위는 독일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증거는 독일군에게 넘겨진 암호의 ‘D’가 드레퓌스의 이름 첫 자와 같다는 것 정도였다.
“드레퓌스는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압니다. 유죄. 그의 방에는 위험한 서류가 한 장도 없었습니다. 유죄. 그는 가끔 조상의 나라에 갑니다. 유죄. 그는 성실하고 모든 것을 알려고 합니다. 유죄. 그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유죄. 그의 마음은 흔들립니다. 유죄. 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들인지요!” <나는 고발한다>에서 프랑스의 지식인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재판을 바라보며 외치는 말이다. 당시 프랑스는 ‘노출불안’에 제대로 빠져 있었다. 나라가 내린 판단이 틀렸다고 한다면 국가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더구나 드레퓌스는 사람들이 미워하던 유태인이었다. 드레퓌스 자신도 동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드레퓌스는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짓밟을 희생양이 될 만한 인물이었다. 고집부리는 이들은 ‘정보집착’과 ‘정보배제’에도 빠져들기 마련이다. 정보집착이란 자기 잘못이 드러날까 두려워 정보를 감추는 모습을 말한다. 드레퓌스를 고발한 사람들은 ‘결정적 증거’를 ‘보안’이라는 이유로 드러내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는 감추거나 무시해버렸다. 정보배제란 이런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역사학자 자카리 쇼어는 판단을 제대로 내리려면 상상력과 공감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남의 입장에서 문제를 되짚어 보라는 말이다. 하지만 상처받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좀처럼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자카리 쇼어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지도자들이 ‘사내답고’ 당당하기를 바란다. 다치거나 슬프고 화가 나도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강해지기 위해’ 씩씩하게 참고 견뎌내라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그 결과, 지도층들은 ‘정서적인 해독능력’을 잃어버린다. 자신의 감정이 어떻고 남들의 마음은 어떤지를 헤아리는 능력을 놓아버린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사내란 원래 그런 법이야.”라는 식으로 강하고 센 척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솔직히 드러낼 줄 아는 이들을 더 존경하는데도 말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V세대’들은 건강하고 바람직하다. V세대란 서울올림픽 이후에 태어나 글로벌 시대에 맞게 자란 세대, 용감하고(valiant) 다양하고(various) 발랄한(vivid) 특징을 가진 세대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이들은 국가와 민족 같은 거대한 틀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지만, 패배자가 될까 두려워 아등바등하지는 않는다. 경쟁을 즐기며 ‘쿨’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엣지 있게’ 처신할 줄 안다. 모두가 개성을 한껏 뽐내는 사회에서는 패배자가 있을 리 없다. 어느 부분에서는 뒤지더라도 다른 분야에서는 앞서가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높이 사는 나라의 국민들이 자존감이 높은 이유다. 나아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은 외곬으로 빠지지도 않는다. 남들의 생각을 배려하고 보듬을 만큼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바로 그랬다. 드레퓌스 사건이 옳지 않다고 외친 사람들은 프랑스 지식인들이었다. “땅에 묻혀버린 진실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밝혀진 진실은 온 세상을 날려 버릴 것입니다.” 드레퓌스 사건에 잘못을 지적하며 에밀 졸라가 내뱉은 말이다. 프랑스인들은 자유, 평등, 박애를 앞세운 혁명을 치러본 시민들이다. 그들만큼 졸라의 주장에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독재자들은 시민들을 겁에 질리게 만든다. 짓눌린 사람들은 끊임없이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다. 독재자들은 ‘누구 탓에’ 시민들이 이렇게 불행해졌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해주려 한다. 독재국가일수록 ‘나라의 적’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V세대들에게도 ‘국가의 적’이 있을까? 어느 시대에나 나이 든 이들 눈에 젊은 세대는 마뜩지 않다. 수천 년 된 함무라비 법전에도 “요새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적혀 있을 정도다. 기성세대들에게 젊은이들의 용감하고 다양하며 발랄한 모습이 좋게만 보이지는 않을 테다. ‘안보의식’과 ‘사명감’이 없는 세대라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양한 꿈을 인정하는 세상에서는 좀처럼 편견이 생기지 않는다. 힘자랑을 해서 남들을 누르려고 하지도 않는다. V세대가 이끌어갈 대한민국의 미래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 |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