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통합논술 / [난이도 수준-초등 고학년~중1] 13. 천연자원
14. 역사로의 여행
15. 물 이야기 ■ 생각 열기 1. 다음 사진은 무엇을 찍은 것인가요. 그 내용에 대해 아는 대로 쓰세요.
● 힌트: 수원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 설명:
● 힌트: 조선시대의 일반 교육제도
● 설명: 2. 조선시대를 빛낸 위인들을 두 사람만 쓰고 무슨 일을 했는지 간단히 설명하세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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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읽기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해 보세요. (가) 읍성은 군사적, 행정적으로 중요한 곳에 설치되었다. 읍성은 주민의 주거지역인 평지에 설치되어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역을 방어하는 기능을 하였다. 또, 읍성은 그 안에 지역을 다스리는 행정기관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주민들의 생활중심지가 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90여 곳에 읍성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해미읍성은 고창읍성과 더불어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읍성으로 꼽힌다. 해미읍성의 성벽은 돌로 쌓은 것으로, 높이가 5미터, 둘레가 1.8킬로미터쯤 되는데,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또, 성문이나 망루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해미읍성의 남문인 진남문에 올라 보니 주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북으로 긴 타원형으로 된 성곽이 둘러 있고, 성벽 밖으로 네모지게 쌓은 치도 볼 수 있었다. 치는 성벽에서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하고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정면 또는 측면에서 격퇴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쌓은 구조물이다. <국어 읽기>(6-1) 64쪽, ‘해미읍성을 찾아서’ (나) 조선시대에 태종 임금이 세운 창덕궁은 주변의 경치와 아름답게 어우러진 궁궐로 손꼽히고 있다. ㉠창덕궁에는, 나라의 중요한 행사가 열렸던 인정전을 중심으로 하여 왕이 나라의 일을 보던 곳, 왕과 왕비 및 왕족이 살던 곳 등 여러 건물이 있고, 왕실 도서관과 정자 등이 있는 후원이 있다. ㉡후원은 아름다운 자연과 건물을 조화롭게 배치한 정원으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종묘는 조선시대에 왕과 왕비, 그리고 큰 공을 세운 신하의 제사를 지낸 곳으로, 태조 임금이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해에 지어졌다. 종묘에는 제사를 지내는 데에 필요한 여러 건물이 있다. 이러한 건물들과 제사를 지내는 과정인 종묘제례, 제사를 지낼 때에 연주하는 음악인 종묘제례악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종묘는 충성과 효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과 탐구>(4-2) ‘종묘, 창덕궁’ 1. 조선시대 읍성의 기능은 무엇인지 써보세요. 2. 조선을 건국할 때 본래 조선 임금의 중심 거처는 경복궁이었습니다. 창덕궁이 밑줄 친 ㉠과 같이 중요한 시설로 사용된 것은 언제부터이며 이유는 무엇인가요? 3. 밑줄 친 ㉡에서 설명하는 후원의 공식 명칭은 무엇인가요? 4. 종묘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문화유적입니다.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에 대해 알아봅시다.
■ 주제 넓히기 다음 글을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조선시대에는 풍수지리 이론이 성행했다. 집을 지을 때는 반드시 앞이 남쪽을 향하게 하되 남쪽으로 문을 내기 어려울 경우는 동쪽을 향하도록 하였으며, 뒤쪽으로는 산이나 언덕을 두고 앞으로 물이 흐르는 것을 집짓기에 좋은 위치로 삼았다. 서양 문명이 들어오면서 풍수지리 이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미신적 사상’으로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으나, 현대 과학은 서양 사람들도 미처 알지 못했던 과학적 지혜와 원리가 이 이론 속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우선 집을 남쪽을 바라보게 지으라고 한 것은, 남향집이 햇빛과 바람을 가장 적당하게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지구 북반구에 있는 나라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길을 남쪽에 두게 된다. 따라서 남향집은 햇빛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또한 남쪽을 바라보는 집은 그렇지 않은 집에 비해 드나드는 바람의 양도 아주 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향으로 지은 집에서 뒤쪽에 산을 두는 것은 바로 북쪽에 병풍을 두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겨울에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뒷산이 자연스레 막아주게 된다. 반면 남쪽에는 너른 평지와 물을 두었으니, 남쪽에서 들어오는 햇볕과 따뜻한 바람이 가로막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현대인들이 중시하는 ‘일조권’과 ‘조망권’의 개념을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풍수지리 이론에 따라 중시해왔던 셈이다. 임금이 사는 궁궐 또한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뒤로 산을 두르고 앞으로 너른 들을 두어 백성들이 사는 고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지어졌다. 왼쪽과 오른쪽에는 뒷산에서 각각 뻗어 내린 산줄기가 양쪽에서 궁을 호위하는 형태의 지형을 좋아하였는데, 이 두 산줄기를 일러 좌청룡 우백호라 하였다. 왕궁 오른쪽에는 국조(國祖) 단군을 모신 사직을 두어 하늘을 우러르고, 왼쪽에는 종묘를 두어 선대의 왕들을 모셨다. 나라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임금은 종묘와 사직을 찾아 고하고 하늘과 조상들의 가호를 빌었다. 1. 큰 창문이 각각 동쪽으로 난 집과 서쪽으로 난 집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 습관이 점차 어떻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은가요? 2. 조선시대 임금들은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종묘사직에 고한다’고 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의 생활 관습 가운데 종묘사직에 고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있으면 말하세요.
3. 제시문의 설명을 참조할 때 위 지도와 같은 지형에서 집을 짓기에 가장 좋은 위치는 어디인지 찾아 표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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