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일고 김혜남 교사
교육 인터뷰 | 서울 문일고 김혜남 교사
정부가 ‘고교 다양화’ 정책을 추진할수록 고교 양극화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학생선발권이 보장된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율고’)의 확산은 기존 인문계고를 명문대 잘 보내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로 양분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대로 2012년까지 자율고가 100개가 되면, 고교 입시 전기에 선발되는 학생 수는 4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주요 사립대학들 입학 정원이 2만5000명 정도이고, 그 외 서울권 대학들 정원이 약 2만명이다. 앞으로 4~5년 후면 특목고와 자율고 출신 학생들이 서울권 대학을 거의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선발권을 갖지 못한 나머지 일반고들은 이런 급작스런 변화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일반고들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양한 변화들을 시도하고 있지만, ‘출발점’이 달라 따라가기 벅차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고에 다니는 학생이나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도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한겨레>가 지난 19일 서울시 금천구 문일고등학교에서 만난 김혜남(사진) 교사는 일반고 교사로 일반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6월 <대한민국 일반중 일반고 아이들이 입시와 인생의 승자가 되는 법>(명진출판)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일반고 교사로 고등학교가 양극화하고 있음을 언제부터 느끼게 됐나? “1990년대 후반 특목고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내가 몸담고 있는 문일고는 매년 두 자릿수 학생들을 서울대에 보내던 학교였다. 그러나 요즘 교사들 사이에선 “서울대 씨가 말랐다”는 자조 섞인 말이 오간다. 특목고가 ‘서울대’ 들어갈 실력을 갖춘 학생들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서울대 몇 명 보냈는가’로 고등학교를 평가한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인문계 고등학교는 거의 없다. 언론에서 이를 기준으로 고등학교 순위 매긴 걸 볼 때마다 우울해진다. 지난해부터 서울시에서 “뒤떨어지는 학교들 분발하라”며 학교선택제를 시행했지만, 이미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한 특목고나 자율고 등과 ‘입시 성과’를 놓고 경쟁하라는 건 무리다.”
일반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낙담이 심하겠다. 희망이 있다고 보는가? “대입에서 수시 전형이 확대되는 건 긍정적으로 본다. 2000년대 초반 수시 전형이 도입될 당시, 특목고생에 비해 수능이 약한 일반고생들에게 이 전형이 기회가 될 거라 봤다. 수능엔 약하지만, 글쓰기나 말하기에 소질이 있고 적성이 있는 학생들을 찾아 준비시켰다. 성과가 좋았다. 논술이나 면접 등을 잘 봤기 때문이다. 이 성과를 토대로 2003년에 <나는 수시로 대학 간다>란 책을 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무작정 유리한 것도 아니다. 이른바 명문대학들 중심으로 수시에서 최저 학력 기준을 높이고 있다. 수능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일반고 학생들의 입지는 좁아지기 때문이다.” 올해 전체 대입 정원에서 10% 가까이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제는 어떤가? “10%라 하지만 실제 그 절반은 예전 수시 특별전형과 다를 게 없다. 입학사정관제로 대학 갈 수 있는 학생은 아직 많지 않다. 그러나 입시와 상관없이 입학사정관제는 교육 현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먼저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게 됐다. 예전 고3 학생이면 문제집 풀기 바빴는데, 요즘엔 고3인데도 책을 읽는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띈다. 또 일찍부터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고1 때부터 자기소개서를 써 보면서 자신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독서가 일반고 학생들에게 경쟁력을 가져다 줄 거라 보나? “그렇다. 오랫동안 대학 입시를 지도하면서 두 가지 확신을 갖게 됐다. 첫째는 ‘언어 1등급이 수능 1등급이다’이고, 둘째는 ‘독서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이다. 수리나 외국어 영역에서 1등급이고 언어가 2등급인 학생의 경우 사탐이나 과탐에서 좋은 등급 받기 힘들다. 독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독해력은 물론 사고력을 높일 수 있는 게 바로 ‘독서’다. 또 독서는 논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수시=학생부’는 옛이야기다. 지금은 ‘논술’이 대세다. 현재 우리 학교에선 매일 아침 8시10분부터 8시30분까지 20분씩 아침 독서를 하고 있다.” 대입수시전형·입학사정관제 확대는 긍정적
언어영역 준비가 기본…논술은 더 중요해져
질문습관 기르고 배우고 익혀야 ‘저력’ 생겨 현재 ‘전국학부모지원단’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국학부모지원단은 어떤 단체인가? “서울시교육청 대학진학지도지원단 팀장으로 대규모 입시설명회를 할 때였다. 늦게 온 한 학부모가 자료집을 못 받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자식을 위해서 이 정도까지인 줄 몰랐다. 근데 이런 열성에 비해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 학부모는 드물었다. 그래서 학생들만 가르치지 말고 학부모들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3년 전 뜻있는 몇몇 교사들과 함께 이 일을 시작했다. 일종의 ‘학부모 계몽운동’이라 할 수 있다. 5주에 걸쳐 학부모 대상으로 입시전략과 함께 진로와 학습법 등에 대해서도 강연한다. 우리 강연에는 공교육 교사들뿐 아니라 대학교수들, 사교육 종사자들도 함께한다. 구청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는데 호응이 대단하다. 얼마 전 우리 학부모 강연에 참석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사교육 강사들 배제하면 예산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거절했다. 학부모들에게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국학부모지원단 강연에서 강조하는 건 무언가? “우리는 ‘족집게’ 입시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교육의 ‘기본’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학교 수업에 왜 충실해야 하는가에 대해 실감 나게 전한다. 요즘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치우쳐 자녀 교육을 생각하다 보니 투자한 만큼 효과를 보지 못한다. 사실 학생들은 학원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데도,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모른다. 학원 중심의 균형 깨진 공부로는 학습 저력을 기를 수 없다. 우리는 공교육과 사교육의 공존과 균형을 강조한다. 사교육의 가치와 효용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지성과 인성’을 고루 발전시킬 수 있는 공교육의 가치와 효용도 인정하자는 것이다. 또 올바른 자녀 양육법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자녀 양육의 노하우가 부족한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 무엇보다 자녀들과 의사소통을 잘해야 한다. 학부모 설명회에 참석해서 좋은 얘기 많이 들어도 자녀들에게 전달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대화법 등 학부모들의 양육 스킬을 높이는 방법도 강연 내용에 꼭 포함시킨다.” 지난해 6월 펴낸 책을 보면 ‘명품 인생’, ‘학습 저력’ 등이 자주 나온다. 어떤 의미인가? “내가 말하는 ‘명품 인생’이란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선 사람을 가리킨다. 사람마다 재능 있고 강점 있는 분야가 있다. 그 분야에서 “이 분야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명품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선 학벌이 중요하긴 하지만, 학교 수준을 조금 낮추더라도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 대학을 지원한 학생들은 적응도 잘하고 만족감도 높더라. 이를 위해선 평생 동안 지니고 있어야 할 ‘학습 저력’이 필요하다. 학습 저력은 질문하는 힘에서 출발한다. ‘질문 없는 공부는 죽은 공부’라 생각한다. 나 또한 강연을 준비하며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각 분야 전문가들 10여명을 찾아 질문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좀처럼 질문하지 않는다. 교사와 학생이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며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질문’은 학생의 본분이자 공부의 필수요소임을 인식해야 한다. 오늘부터 하루에 단 하나씩이라도 용기를 내 질문해 보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만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알게 되고, 그 지점부터 실력이 생기게 된다. 또 학습 저력은 익히는(習) 데서 자란다. 공부란 배우고(學) 익히는(習) 과정의 연속이다. 결국 학과 습이 조화를 이뤄야만 제대로 된 공부라 할 수 있다. 학이 부족하고 습만 있다면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학만 있고 습이 없으면 실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배우는(學) 데는 거의 광적이다. 그러나 충분히 익히지(習) 못해 배우는 만큼 효과를 보지 못한다. 학원에 열심히 다녀도 성적이 늘 제자리라면 그것은 습의 과정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억과 학습 원리를 보면 주기적으로 7번 반복해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7번이 부담스럽다면 최소 3번은 반복해야 한다. 강의 듣는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그 시간을 습의 과정으로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글·사진 조동영 기자 dycho197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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