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혁신학교 흥덕고 이범희 교장
[교육 인터뷰] 경기도 혁신학교 흥덕고 이범희 교장
교육과정 자율권 보장, 소규모로 운영
소통·참여 통해 아이들을 수업 주체로
공청회 열어 학생들이 규범 만들기도
교육과정 자율권 보장, 소규모로 운영
소통·참여 통해 아이들을 수업 주체로
공청회 열어 학생들이 규범 만들기도
한 남학생이 교장선생님 품에 안기며 말한다. “냄새 맡아보세요. 담배 끊었어요.” 교장은 반색하며 학생을 품에 안는다. “오! 정말 끊었네. 잘했다, 잘했어!” 점심시간, 맞은편에서 밥을 먹는 한 남학생에게 교장선생님이 묻는다. “오늘 등교 때 안 보이더라. 늦었니?” “아뇨. 안 늦었는데.” “아! 내가 쓰레기 줍는 동안 들어왔나 보네. 난 왜 안 오나 했어.” 지난 4월26일, 경기 흥덕고에서 만난 이 학교 이범희(49·사진) 교장이 오전 시간, 학생들과 나눈 대화 가운데 일부다. 이 학교는 경기도교육청 지정 혁신학교 가운데 한 곳이다. 혁신학교란, 교육과정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학생의 수업 집중도와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한 학년에 6학급 안팎, 한 학급에 25명 이하의 소규모로 운영하는 학교다. 아버지 또는 삼촌 같은 이 교장은 학교가 개교한 지난 3월4일, 내부형 교장공모제(15~20년 정도 일정한 교육 경력이 있으면 지원할 수 있음)로 이 학교에 부임했다. 이 교장을 만나 흥덕고에서 보낸 50여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교 누리집에서 ‘교장실에서 보낸 편지’ 1호를 읽어봤다. “또 다른 부모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개교 50여일이 지났다. 그간의 여정은 어땠나? “학생생활지도와 관련한 현안이 많이 생기고 있다. 대응하다 보니 좀 바쁘다. 사실 조금 전, 동네 노인회 어르신들이 다녀가셨다. 학교가 생기고 나서 동네에서 시끄럽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거나 담배를 피우며 아이들이 몰려 나오고 있다고 하시더라. 우리 학교는 이런 학교이고, 조금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계속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학교 상황을 설명했더니 기도를 해주고 가셨다.” ‘이런 학교’라는 게 단순히 혁신학교의 자율성을 의미하는 건 아닐 거다. 혁신학교의 특성에 더해 흥덕고만의 특수한 상황이나 문제도 있지 않나? “맞다. 모든 혁신학교에 생활지도가 필요한 학생만 있는 건 아닐 거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거다. 우리만의 특수 상황이 있다. 용인이 비평준화 지역이라 보통 부모님, 아이들이 선호하는 학교는 기존에 검증된 학교들이지 우리처럼 신설학교를 선호하진 않는다. 사실 우리 학교엔 각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꽤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성취도가 낮은 이유는 단순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기보단 제도권 교육, 부모, 교사 등 어디선가 상처 받은 면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년간 교사로 근무하다 내부형 교장공모제로 부임했다. 지원하게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나?
“교사이신 아버지, 어머니가 아이들을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처럼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꿔왔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교사들도 현실적인 이유로 제도에 순응해 학생을 가르치는 상황들이 발생하곤 한다. 교육운동 하는 이들이 최소한의 영역인 학급 안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다. 학교 틀이 바뀌지 않으면 벽에 부닥친다. 예를 들어, 아침부터 두발 단속에 걸려 짜증 나 있는 아이들, 저녁에 정말 하기 싫은 야자나 보충수업을 억지로 하는 아이들에게 담임교사로서 할 수 있는 말이나 대답은 제한적이고 궁색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학교의 틀이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지, 인간을 육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 이런 것들을 본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던 차에 혁신학교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고, 그 가운데 내부형 공모가 있어 지원을 하게 됐다.” 학교 교육목표에 ‘참여’와 ‘소통’이란 말이 있다. 교사들과 ‘참여소통교사모임’도 만든 걸로안다. 참여와 소통이라는 게 구호로만 끝나기 쉬운데. “교실에서 수업이 안 되는 이유를 고민해보면 결국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수업을 이끌기 때문이다. 아이들과의 소통이 전제된 참여가 있을 때 교실이 살아날 수 있다. 무조건 참여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라 속내를 읽어주는 게 중요하다. 교사 처지에서 보면 학생 35명이지만 아이들로선 교과담임 한 명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속내를 읽어주는 돌봄, 치유를 바탕으로 하는 소통이 필요하다. 흥덕고에 ‘돌봄’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건 아니다. 들어오다 봐서 알겠지만 학교 벽 현수막에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걸어놨다. 모든 아이들이 이걸 다 읽어보고 이해하진 않지만 읽고 얘기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아이들에게 성장 동기를 심어주는 게 소통이다. 그래야 참여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수동적으로 교사가 시키는 것에 순응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자신을 찾아보고, 잠재력을 끌어내보도록 주체로 세우는 분위기 조성을 하려고 한다.” 수업에 직접 들어간다고 들었다. “진로와 지도 수업이나 보·결강 등에 들어간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려면 수업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전교생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학생 이름도 다 외운다. 교사들과 소통하려는 의미도 있다. 수업을 학생 위주로 바꾸려면 교사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걸 얘기하자면 기존 교감이나 교장들은 교사 때 정말 완벽했던 것처럼 말하곤 한다.(웃음) 현장이 어떤지를 알고, 교사들의 어려움이 뭔지 알아야 설득력 있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거다.” 부임하며 몇 가지 계획을 밝혔었다. 크게 보면 학생들을 주체로 세우는 자율권 부여나 학부모와 일상적인 소통 등을 많이 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잘되고 있나? “일단, 규범 자체를 학생들이 만든다. 아침조회도 없고, 교가도 없다. 이번주에 학부모와 학생이 규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마지막 공청회가 있다. 결정된 사항 가운데 하나는 두발은 특별히 규제 안 한다는 거다. 폭탄머리 등만 아니면 된다. 일부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요란스럽게 하진 않는다. 우리나라 학교에선 규정상 아이들이 규범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생 스스로 참여해서 어떤 규정을 만드는 사례는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거라고 본다. 그 밖에 공모제 하면서 내세운 계획은 하나씩 실천하고 있다. 근데 현실적으로 아이들과 관계된 자율성 부분은 어려움이 많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있긴 하다. 아이들의 생활 태도 자체가 지나치게 수업을 방해한다는 거다. 학교에서 단호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좀더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있다. 자율권이라는 말 때문에 방종까지 허용하는 학교로 오해하지 않도록 아이들을 지도하는 게 필요하다. 학부모와의 소통은 열심히 하고 있다. 누리집을 와보면 알겠지만 온라인을 통해 생각을 전하고 학교에 관심을 기울이는 학부모가 많다.” 학부모 아카데미를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것인가.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교가 일방주의였다. 우린 상호주의를 지향한다. 학교와 교사, 학부모와 아이들,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를 지향한다. 그러려면 함께 성장해야 한다. 먼저 교사들이 동료의식을 갖고, 전문성을 나누고 혁신학교의 철학을 공유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또 하나는 학부모의 성장이다. 그런 뜻에서 한 해 동안 전반기, 후반기로 나눠 각각 4회씩 학부모 아카데미를 연다. 지난주엔 “모난 돌이 쓰임새가 많다”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학부모가 변해야 아이들이 변할 수 있다. 다행히 학부모의 절반 정도가 참여했고, 지역 주민도 일부 참여했다.” 혁신학교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보는 눈이 많아 부담이 있을 거 같다. “사실 부담이 되어서 요새 병날까 싶기도 하다.(웃음) 여기저기서 요구하는 게 많다. 외부에선 혁신학교로서의 기대도 있고, 학부모들은 언제까지 기다리느냐고도 하신다. 아이들은 처음이랑 다르게 학교가 단호해지고 있다고도 한다.(웃음) 하지만 희망이 있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학교의 노력을 이해하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 그런 일이 있었다. 등교 시간이 8시10분인데 나는 아침마다 나가서 아이들을 맞는다. 눈이 많이 오던 날, 한 학생이 부모님에게 “눈 많이 오는데 오늘도 선생님이 과연 나와 계실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내가 나와 있는 걸 보고 “얼마나 추우실까…”라고 하면서 슈퍼에서 따뜻한 커피 하나 사다 드리자고 했단다. 부모님께서 아이한테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시더라. 마음이 짠했고, 기뻤다. 그런 이야기들이 다 힘이 된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 년 동안 문화를 잘 구축할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가까운 곳을 보지 말고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고 싶다. 어느 날, 외부에 일이 있어 나갔다가 오는 길에 아이들 주고 싶어 초콜릿을 사 왔었다. 나눠주려고 학교 곳곳을 돌아봤는데 한쪽에선 연극반이 교사와 연습을 하고 있고, 한쪽에선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 아이들이 스스로 좋아서 뭔가를 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찼다. 교실에서 문제풀이만 하거나 교과서를 외우거나 하는 학교생활보다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기획력, 창의력 등을 키워갔으면 좋겠다. 대학에 가도 좋고, 사회 진출을 할 수도 있다. 학생 본인의 적성을 잘 찾고, 행복한 미래를 그려보도록 돕고 싶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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