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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대~한민국 떠받치는 ‘시민종교’

등록 2010-06-20 16:26수정 2010-06-21 13:25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난이도 수준 고2~고3]

38. “나는 왜 나쁜 습관을 못 버릴까?” 프로이트에게 묻는다면

39. 붉은 악마는 종교가 될 수 있을까? - 열정에게 종교를 묻는다면

40. 축구하는 호모 루덴스, 왜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할까?

‘거룩한 시간, 거룩한 공간, 거룩한 인물.’ 종교학자 엘리아데에 따르면 이 셋은 종교가 꼭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다. 예컨대, 기독교인들에게 일요일 예배는 성스러운 시간이다. 예배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성스러운 공간이고, 존경받는 성직자가 예언자와 성인(聖人)을 기리곤 한다. 이 셋이 갖추어진 속에서 사람들은 일상을 뛰어넘는 성스러운 감동을 느끼곤 한다.

이렇게 본다면,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도 ‘종교 체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월드컵 경기 90분은 ‘성스러운 시간’이다.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걸어서 들어갈 수 없었던 차도(車道)가 열리고 거리는 시민들로 가득 찬다. 응원이 이루어지는 광장도 금기가 풀린 ‘성스러운 공간’으로 바뀐다. 나아가, 축구선수들은 사람들의 존경과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성스러운 인물’로 거듭난다. 모두가 붉은색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나 된 순간, 가슴속 뭔가가 울컥하고 올라온다.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이 감정은 ‘종교적 감동’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싶다.

<사회계약론>
루소 지음, 정성환 옮김
홍신문화사
<사회계약론> 루소 지음, 정성환 옮김 홍신문화사
우리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종교적이다. 종교학자 로버트 벨라는 ‘시민종교'(Civil Religion)라는 말로 이런 현상을 풀어준다. 그는 미국 사회를 예로 든다. 미국에는 국교(國敎)가 없다. 특정 종교를 믿으라고 시민들을 몰아붙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뿌리에는 깊은 신앙심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을 세운 청교도들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당연히 그들 마음에는 ‘신에게 선택받은 자’라는 자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벨라는 미국인들은 ‘소명’(召命)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신이 고른 사람들이라면 세상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인들에게는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청교도들의 절박함이 아직도 살아 있는 셈이다.

조지 워싱턴은 그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빠져나온 모세와 같은 인물이다. 조지 워싱턴도 모세처럼 영국의 손아귀에서 미국인들을 빼내지 않았던가.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링컨 같은 인물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도, 성인들이나 갖고 있을 법한 신성함이 풍긴다.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날들이다. 심지어 미국 지폐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대통령이 취임을 할 때도 기독교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를 한다.

미국은 스스로를 기독교 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미국인들의 삶의 밑바닥까지 영향을 미친다. 기독교에 맞서는 입장을 폈다간, 미국에서 제대로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다. 시민종교란 이처럼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종교적인 열정을 말한다.

<글로벌 시대 한국의 시민종교>
차성환 지음
삼영사
<글로벌 시대 한국의 시민종교> 차성환 지음 삼영사
우리 사회에도 시민종교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 종교학자 차성환은 유교 전통에서 우리 사회의 시민종교를 찾는다. 추석이나 설은 우리에게 가장 큰 명절이다. 기독교를 따르건, 불교를 믿건, 누구나 명절에는 부모가 계신 곳으로 간다. 부모를 중심으로 가족관계가 맺어지는 유교문화가 오롯이 살아 있는 셈이다. 논리보다 의리가 앞서곤 하는 우리의 도덕윤리도 마찬가지다. 이 또한 사람의 도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의 영향이라고 하겠다.

이제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을 다시 살펴보자. 축제는 무의식에 숨어 있던 시민종교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일본과 미국, 유럽과 우리나라의 관중석 분위기는 제각각이다. 문화의 뿌리가 서로 다른 탓이다.

중동(中東)에 있는 나라에서 붉은 악마처럼 자발적인 응원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남미 특유의 원주민 문화가 없다면 삼바 축제가 지금처럼 떠들썩할까? 마찬가지로 유교적인 분위기가 없다면, 길거리 응원에서 벌어지는 ‘대동단결’의 끈끈함은 이루어지기 힘들 듯하다. 그러나 우리네 길거리 응원에서 보이는 모습은 유교 문화를 뛰어넘는다. 일본도 우리와 같은 유교 문화권에 있는 나라다. 하지만 일본에서 우리나라 같은 길거리 응원이 펼쳐질 것 같지 않다. 길거리 응원은 대한민국만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러나는 우리의 시민종교는 어떤 모습일까?

권력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축제를 끌고 가려 한다. 제5공화국의 권력자들은 ‘국풍 81’이라는 잔치판을 벌였다. 하지만 국풍(國風)은 우리 문화 속에 자리잡지 못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도 권력자들은 마라, 샬리에 등의 혁명가들을 기리는 축제를 열었다. 심지어 혁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성의 축제’, ‘최고 존재의 축제’ 같은 기념일을 만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억지로 만든 축제치고 성공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축제는 시민들의 심성과 걸맞을 때 제대로 흥이 나고 살아나는 법이다.

‘시민종교’는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처음 썼던 말이다. 그는 국가와 법이 오롯하게 서려면 사회 밑바탕에 모두가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민종교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길거리 응원은 때마다 되살아난다. 거기서 우리는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시민종교의 본모습을 보곤 한다. 뜨겁지만 난잡하지 않으며 열정 넘치면서도 질서가 있다. 모두가 하나로 아우러지면서도 제각각 개성을 뽐낸다.

독일인들은 나치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보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그곳에도 열정과 질서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열정은 결국 그릇된 결과를 낳았다. 올곧은 시민종교를 잃어버린 열정은 위험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외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무엇으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어야 할까? 건전한 국가관을 잃은 열정은 광기(狂氣)일 뿐이다. ‘대한민국스러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때이다.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안광복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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