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글쓰기 홈스쿨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⑩
[난이도 수준-중2~고1]
“정말 너무하네, 진짜 별로야.”
네 가지 단어로 조합해보았다. 정말, 너무, 진짜, 별로. 내 맘대로 선정한 이 부사 4총사를 꼬마들이 ‘정말’ ‘너무’ 사용해서다. 이 4총사가 글을 ‘진짜’ ‘별로’ 깔끔하지 않게 해서다.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로 글밭의 잡초를 뽑는다. 공책을 더럽히는 볼펜 똥을 지운다. 지난호의 주인공이 접속사, 즉 접속부사였다면 오늘은 화자의 태도를 나타내는 부사들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양태부사’라 한다. 동사나 형용사 앞에 놓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분명한 건 좋은데 구차해서 문제다.
“그 냄새만 없다면 빨래란 것이 정말 즐거울 텐데, 엄마가 고생하시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엄마가 냄새 때문에 고생하시는지는 진짜 모르겠으나…) 그리고 그 냄새를 맡으면 마법에 걸린 듯하다. 생각하면, 정말 멀미해서 진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준석의 ‘실내화를 빨며’)
“모르는 문제가 자꾸 나왔다. 너무 어려웠다. 그 수학문제는 ‘몇의 절반은?’ 같은 거였다. 4만의 절반, 2만의 절반을 푸는 문제는 너무 쉬웠다. 하지만 5십만의 절반, 7십만의 절반은 안 배워서 너무 어려웠다.”(은서의 ‘수학은 골치 아파’)
강박이다. ‘정말’이라고 해야 내 맘을 정말로 표현할 것만 같다. ‘진짜’라고 해야 독자들이 진짜 이해할 것 같다. ‘너무’라고 해야 내가 말하는 심각성이 드러날 것 같다. ‘별로’라고 해야 내 시큰둥함이 전달될 것만 같다. 오, 거대한 착각이여.
“벌써 두 번이나 본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한번 본 영화여서 다시 보면 별로 재미가 없을 줄 알았다. 물론 영화관 크기가 엄청 작았지만 그래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역시, 용을 좋아하는 탓인가?(준석의 ‘드래곤 길들이기’) “엄마한테 아부를 할 때 정말 오빠가 밉다. 큰 여동생이라면 벌써 사춘기라서 신경을 안 쓰고, 그 사춘기가 된 여동생의 오빠도 당연히 사춘기이니, 싸울 일이 별로 없겠지만, 나같이 어린 동생은 아직 사춘기에 안 들어간 오빠가 아부할 때 정말 싫다.”(은서의 ‘나에게 오빠란 무엇인가’) ‘정말, 너무, 진짜, 별로’ 말고도 많다. 위 예문에 표시를 한 것처럼 자꾸, 벌써, 물론, 엄청, 아직, 역시 따위가 보인다. 아이들이 쓴 다른 글을 꼼꼼히 분석해보니 줄줄이 사탕이다. 막상, 바로, 매우, 거의, 비록, 아직, 비교적, 대충, 가장, 일단, 의외로, 당연히, 특히, 왠지…. 이들을 빼고 글을 읽어보았다. 어색하지 않았다. 부사들을 소탕하거나 멸종시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결코’ 아니다, 라고 쓰려다가 깜짝 놀란다. 안 돼~~^^) 아끼며 쓰면 된다. 부사는 일종의 습관이다.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 부사들을 안 쓰면 글이 밍밍하고 불명확하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그런 점에서 부사는 어쩌면 ‘콤플렉스 덩어리’의 품사다.(‘날카롭게’ ‘굳게’ 등 상황을 더 묘사하려 몸부림치는(!) ‘고차원 부사’들은 생략한다. 아이들의 글에선 찾기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썰렁한 농담 하나. ‘부사’는 사과의 품종 중 하나다. 내가 이름을 외우는 건 국광, 홍옥, 아오이, 부사(후지) 딱 네 개인데, 경험칙으로 판단할 때 ‘부사’가 가장 비싸다. 글의 세계에서 ‘부사’는 비싼 티가 안 난다. 거꾸로, 싸다 싸! 쓸수록 저렴한 글이 된다. 비싼 글을 쓰자.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벌써 두 번이나 본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한번 본 영화여서 다시 보면 별로 재미가 없을 줄 알았다. 물론 영화관 크기가 엄청 작았지만 그래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역시, 용을 좋아하는 탓인가?(준석의 ‘드래곤 길들이기’) “엄마한테 아부를 할 때 정말 오빠가 밉다. 큰 여동생이라면 벌써 사춘기라서 신경을 안 쓰고, 그 사춘기가 된 여동생의 오빠도 당연히 사춘기이니, 싸울 일이 별로 없겠지만, 나같이 어린 동생은 아직 사춘기에 안 들어간 오빠가 아부할 때 정말 싫다.”(은서의 ‘나에게 오빠란 무엇인가’) ‘정말, 너무, 진짜, 별로’ 말고도 많다. 위 예문에 표시를 한 것처럼 자꾸, 벌써, 물론, 엄청, 아직, 역시 따위가 보인다. 아이들이 쓴 다른 글을 꼼꼼히 분석해보니 줄줄이 사탕이다. 막상, 바로, 매우, 거의, 비록, 아직, 비교적, 대충, 가장, 일단, 의외로, 당연히, 특히, 왠지…. 이들을 빼고 글을 읽어보았다. 어색하지 않았다. 부사들을 소탕하거나 멸종시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결코’ 아니다, 라고 쓰려다가 깜짝 놀란다. 안 돼~~^^) 아끼며 쓰면 된다. 부사는 일종의 습관이다.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 부사들을 안 쓰면 글이 밍밍하고 불명확하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그런 점에서 부사는 어쩌면 ‘콤플렉스 덩어리’의 품사다.(‘날카롭게’ ‘굳게’ 등 상황을 더 묘사하려 몸부림치는(!) ‘고차원 부사’들은 생략한다. 아이들의 글에선 찾기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썰렁한 농담 하나. ‘부사’는 사과의 품종 중 하나다. 내가 이름을 외우는 건 국광, 홍옥, 아오이, 부사(후지) 딱 네 개인데, 경험칙으로 판단할 때 ‘부사’가 가장 비싸다. 글의 세계에서 ‘부사’는 비싼 티가 안 난다. 거꾸로, 싸다 싸! 쓸수록 저렴한 글이 된다. 비싼 글을 쓰자.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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