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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테러와의 전쟁, 끝나지 않는 이유

등록 2010-07-11 15:53수정 2010-07-11 15:55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초등 고학년~중1]
41. 프랑켄슈타인과 한국 도깨비, 우리 안의 괴물 찾기

42. 전쟁의 매력 - ‘전쟁문화’를 생각하다.

43. 원자 경제에서 비트 경제로 -공짜(Free)가 당연한 세상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군복은 ‘명품’이었다. 강인해 보이는 어깨선과 다리가 길어 보이는 가죽 부츠, 크고 간결한 계급장, 유명 디자이너 휴고 보스의 작품답게 독일 군복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지금도 세상에는 독일군복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겉모양새만 보고 황홀해하는 치들이 한심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나치의 끔찍한 짓거리들을 알고도 과연 독일군복이 멋있어 보일까? 그러나 멋진 군복은 단지 ‘디자인’ 문제만은 아니다. “독일군복을 입고 있으면 너무나 군인다워 보였습니다. 전우들과 오롯하게 하나가 되었다는 뿌듯함이 밀려들었습니다. 다른 나라 군복은 절대 이런 느낌을 주지 못했습니다.” 나치 친위대에 오래 있었던 사람의 말이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지음/그린비<br>

<전쟁본능-전쟁의 두 얼굴>
마르틴 판 크레벨트 지음, 이동훈 옮김
살림프렌즈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지음/그린비
<전쟁본능-전쟁의 두 얼굴> 마르틴 판 크레벨트 지음, 이동훈 옮김 살림프렌즈
전술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또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라고 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차가운 머리로 벌이는 다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전쟁학자 마르틴 판 크레벨트는 이 말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전쟁은 냉철한 수 싸움만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은 심장이 뛰고 피가 끓는 ‘게임’에 가깝다. 전쟁은 사람들을 잡아끄는 매력적인 사건이다. 세상에 싸움만큼 재밌는 구경거리도 없지 않던가. 어떤 역사학자는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때는 역사의 빈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라고까지 내뱉을 정도다.

하지만 전쟁을 이끌어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총알받이로 의미 없는 죽음을 맞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전쟁 문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생명을 던져서라도 싸워야 하는 까닭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멋진 군복도 전쟁 문화의 한 부분이다. 또래들의 부러워하는 눈초리는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힘들고 위험한 군대 생활은 멋진 군복 뒤로 감춰지고, 젊은이들은 군대로 모여들 테다.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앞세우는 군대의 깃발 등도 이와 같은 전쟁 문화에 들어간다.

전쟁 문화는 군복과 군기(軍旗)에서 그치지 않는다. 모든 다툼이 다 ‘전쟁’이 되지는 않는다. 전쟁은 품격에 맞게 치러져야 한다. 전세계에서 정식으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집단은 200여개 정도밖에 안 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국가만 전쟁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를 잔뜩 갖춘 불법 집단과의 다툼은 ‘분쟁’이나 ‘사변(事變)’으로 여겨질 뿐이다.

전쟁은 막무가내로 벌어지는 폭력과는 다르다. 전쟁 문화는 전투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격식을 일러준다. 싸움을 거는 쪽은 먼저 선전포고부터 해야 한다. 선전포고는 상대방을 적으로 삼겠다는 뜻을 전하는 절차다. 1998년과 2000년, 알카에다는 미국 등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떤 대꾸도 돌아오지 않았다. 테러리스트인 알카에다는 인정받는 국가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공식적인 ‘적’조차 될 수 없었다.

서로를 적으로 인정한 사이끼리는 전쟁도 격을 갖추어 이루어진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유럽인들은 상대를 가려가며 싸웠다. 같은 유럽인끼리는 포로도 인격적으로 대했다. 그러나 종교가 다른 터키인들은 훨씬 심하게 다루었다. 제대로 된 적이 아니었던 아프리카인들에 대해서는 학살도 서슴지 않았다. 지금도 정식 군대가 아닌 테러리스트들과의 싸움은 훨씬 더 잔인해지기 쉽다.

나아가, ‘전투는 군복을 입은 군인끼리만 벌이는 것’이라는 전쟁 문화를 함께하는 사이에서는 전쟁이 좀처럼 커지지 않는다. 이런 제한을 넘어서 민간인들도 총을 들고, 여기에 군대가 맞상대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무법천지로 바뀌어 버린다. ‘테러와의 전쟁’이 날로 커져만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다.

전쟁 문화는 싸움이 끝난 후에 이어지는 문제들도 어루만져 준다. 전쟁을 겪은 병사들은 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곤 한다. 가슴을 짓누르는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제대로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옛날 전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 직접 적의 얼굴을 보며 칼부림을 했던 예전의 군인들이 지금의 병사들보다 마음의 상처를 덜 받았을까?

마르틴 판 크레벨트는 옛 병사들이 정신적 충격을 쉽게 이겨냈던 까닭도 전쟁 문화에서 찾는다. 전쟁의 끝에는 죽은 자들을 추스르고 신에게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현대 전쟁에는 이런 절차가 없다. 병사들은 상처를 안은 채 홀로 자신의 원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마무리가 없으면 고통도 끝맺을 틈이 없다. 전쟁 문화가 없으면 상처 회복도 당연히 더딜 수밖에 없다.

나아가, 마르틴 판 크레벨트는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군복이 후줄근하다는 사실도 눈여겨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복은 전투를 위한 작업복일 뿐이다. 독재국가일수록 군복은 화려하고 멋들어지다. 왜 그럴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전쟁 문화를 앞세워야 할 까닭이 없다. 군대가 왜 필요한지, 병사들이 목숨 바쳐 싸워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병사들은 군인임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한다. 또한 자부심 높은 군인은 전쟁 범죄자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제대로 된 전쟁 문화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부터 올곧게 세워야 함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철학자 니체는 인류는 경쟁과 다툼을 통해 더 나아진다고 주장한다. 전투에서는 강하고 우수한 자가 살아남기 마련이다. 반면, 적이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가축처럼 되어 버린다. 삶의 치열함이 사라지고 편안함만을 좇는다는 뜻이다. 무예를 숭상함, 상무(尙武) 정신이 곧 전쟁광(狂)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사도가 서양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듯, 전쟁은 도덕의 발전을 이끌기도 했다. 어느 사회에서나 절제, 용기, 인내, 솔선수범 등 군인의 도덕은 곧 지도자의 덕목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때에도 상무 정신을 되새겨 봐야 하는 이유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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