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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역사교육은 과거에서 배우는 미래의 이정표”

등록 2010-08-29 15:50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의 이신철(45·성균관대 연구교수) 공동위원장.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의 이신철(45·성균관대 연구교수) 공동위원장.
[교육 인터뷰] 이신철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공동위원장
서로 다른 한·중·일 역사인식 ‘동아시아적’ 접근 필요
독도는 부차적 문제…보수쪽 교과서 개편이 더 심각
베트남 전쟁 참전 등 우리가 준 고통도 되돌아봐야
올해는 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0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담화를 통해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지만 아직도 한-일 관계 회복은 멀기만 하다. 중국의 ‘동북공정’ 사업 또한 고구려사 왜곡을 불러일으키며 한국과 갈등을 빚었다. 역사를 둘러싼 논란만큼 한·중·일 청소년들도 서로에 대한 선입견을 강하게 갖고 있다. 수학여행 등을 통해 교류가 확대되긴 했지만 공동의 역사인식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 내의 역사교육 역시 점점 후퇴하고 있다. 몇년 전 국사가 선택과목이 된 데 이어 2014학년도 입시부터는 역사 과목이 더 축소된다고 한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바로잡고 20세기 침략과 저항에 대한 아시아 공동의 역사인식을 위해 2003년 설립됐다. 처음으로 한·중·일 공동 역사부교재인 <미래를 여는 역사>(한겨레출판)를 펴냈고, 청소년들이 역사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한·중·일 청소년 역사체험캠프’를 9회째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의 이신철(45·사진·성균관대 연구교수) 공동위원장을 만나 바람직한 역사교육은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봤다.

‘제9회 한·중·일 청소년 역사체험캠프’가 최근 일본에서 열렸다고 들었다. 한·중·일 청소년들은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일본 지바현에서 열렸다. 한·중·일이 매년 돌아가면서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동안 받은 교육이나 사회로부터 접한 생각에 갇혀서 그런지 처음엔 한국 학생들도 일본에 대해 적대적인 편이었다. 일본 상품이나 문화에 대해선 친근감을 느끼지만 아무래도 역사적 장벽은 뛰어넘지 못했다. 전쟁과 침략이라는 나쁜 짓을 한 조상을 가졌기 때문에 학생들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선입관이 있었다. 중국 학생들도 일본의 과거사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몇 시간 얘기하는 사이에 이런 편견들이 다 깨졌다. 걸그룹 ‘소녀시대’ 춤도 추고 만화 얘기도 하면서 비슷한 또래고 친구라는 걸 느끼게 됐다. 헤어질 땐 아쉬워서 모두 울었다.

근데 일본 학생들이 강제병합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과 토론하고 실제 역사 현장에 가보면서 역사적 사실을 깨닫더라. 일본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주변 국가들이 많은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일본 학생이 많았다. 왜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지, 이런 끔찍한 전쟁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려면 활발한 교류와 함께 공동의 역사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한다. 한·중·일 역사교과서는 서로에 대해 어떻게 쓰고 있나?

“역사 인식에 대한 생각이 확연히 다르다. 각자 모순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공통의 핵심은 식민 지배와 전쟁의 문제다. 한국은 일본의 강제적인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지적한다. 하지만 일본 교과서의 대부분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에 대해선 다루지 않는다. 식민 지배는 조선이 원했고 경제 성장과 근대식 교육의 토대가 이뤄졌다는 식이다. 최근에야 한국의 반발 때문에 식민지 시기 조선인들의 고통에 대해 약간 언급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한국 교과서에는 세계사적인, 동아시아적인 개념들이 실리지 못했다. ‘역사교과서’에 검정제도가 도입되면서 다양한 시각을 가진 교과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서술 폭도 넓어졌다. 하지만 지나치게 독립운동만을 강조하고 친일문제는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일본 내부에서도 식민 지배에 반대하는 흐름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맹목적인 반일의식에서 벗어난 서술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또 한국전쟁을 둘러싼 이념적 논쟁 때문인지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인식도 부족한 편이다.

중국 교과서에는 ‘애국주의’를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내용이 많다. 54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나라여서 그런지 이들을 통합하기 위해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 같다. 애국주의는 패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은연중에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 과거사 문제보다는 경제 성장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일본과는 독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독도교육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는데 어떻게 보나?

“독도 문제를 강조하면 할수록 일본 우익의 전략에 말려든다고 본다. 독도는 식민지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다. 하지만 일본은 역사 문제를 영토 문제로 돌리려고 한다. 과거사 문제를 덮기 위한 것이다. 언론도 교과서에서 독도가 소홀히 다뤄진다고 지적하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 같다. 지금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도 괜찮다. 독도는 이미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땅 아닌가. 미래를 위해 독도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러면 과거사는 청산하지 못한다. 우리가 더 불리해지는 것이다.

독도 문제는 역사 교육의 핵심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역사 과목을 개편하고 교과서 내용을 바꾼 게 더 문제다. 지금도 ‘국사’가 선택과목이지만,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한국 근현대사’가 없어지고 ‘한국사’가 만들어졌다. 역시 선택과목이다. 사회적 논의는 물론 법적인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과목명을 변경했고 내용을 수정했다. 새 역사교과서에는 지난해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들이 요구한 집필 기준이 반영되기도 했다. 독도 문제로 일시적인 국민감정을 무마하고, 이런 문제를 덮으려는 것 같다.”

2014학년도 수능 개편에 따라 역사과목 수업 시간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도 외울 게 많은 암기과목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보나?

“수능 사회탐구 영역 선택과목으로 ‘국사’를 하겠다고 하면 ‘너, 서울대 갈 거냐?’란 놀림을 받는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과목이라 더 기피하는 것도 있다. 외우는 게 많아서 싫다고 하는 학생도 있지만, 역사 시험 문제가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되는 것도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독일의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학기 중에 역사 현장에 방문해야 한다고 한다. 유대인 대량 학살이 일어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서 실제 비극이 일어난 현장을 보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

서울에 있는 학생들은 서대문형무소를 많이 방문한다. 하지만 조선인이 고문을 당하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일본에 대한 적대심만 느끼게 된다. 역사 현장에서 피해자의 증언을 듣거나 아이들 수준에 맞는 영상을 볼 수가 없다. 역사 현장에서 뭘 배우느냐가 중요하지만, 아직까진 획일화되고 선악이 구분된 역사교육 현장이 많다.”

학교 선생님들도 다양한 수업 방식을 시도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교육현장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아직까지 자국사와 근현대사에 대한 교육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사 속의 세계인이 목표라면 자국에 대한 정체성을 더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부터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검정 권한을 국사편찬위원회(국편위)에 넘기겠다고 한다. 국편위는 과거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온 곳이다. 기존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하던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일본에 대해선 국가가 역사교과서에 개입하는 걸 문제삼는다. 우린 그런 문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의문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교육정책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역사교육은 더 흔들리고 있다. 국사를 한 학기만 배우면 되기 때문에 담당 선생님이 2학기에는 할 일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학교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탓이다. 수업 시수도 부족하다 보니 마지막 부분은 잘 가르치지 않는다.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수업이 끝나 게 되는 것이다.”

역사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또 ‘바람직한 역사교육’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나?

“역사교육은 자기 정체성, 세계관의 문제이다. 과거에서 뭘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조상들은 과거에 어떤 인식을 가졌는가. 왜 조선인들은 그렇게 독립국가를 열망했나.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뭔가. 나를 둘러싼 세계에 관심을 갖기 위해 역사교육은 중요하다.

역사교과서는 가해의 역사보다는 피해의 역사를 기술한다. 일본이 우리를 아프게 한 역사가 있지만, 우리도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면서 다른 나라를 아프게 한 적이 있다. 물론 일본과 우리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권을 유린한 어느 정도의 국가 책임은 있다. 최근 다문화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앞으로 동남아 국가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어떤 국가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아닌 평화공동체’가 더 시급한 과제다. 식민주의적 역사인식을 청산하면서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역사교육이 절실하다.”

글·사진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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