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 [난이도 수준-고2~고3]
1. 정의란 무엇인가 - ‘공정 사회’ 논란에 불을 붙이다.
이번 호부터 시사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글쓰기를 위해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병역 기피’는 관리들에게 뜨거운 감자다. 군대 안 가려고 꼼수 부렸다가 망신당한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하지만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그들 역사에서는 지도층들도 당당하게(?) 군대를 안 갔다. 우리 잣대로 하자면, 앤드루 카네기, 제이피 모건,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아버지 등은 모두 ‘병역 기피자’였다. 그들은 군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당시에는 1700달러만 주면 대신 군대 갈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군입대 대리인 고용’은 법을 어기는 짓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중에는 국가가 나서서 ‘병역 장사’를 하기까지 했다. 나라에 300달러만 내면 군에 안 가도 되었다. 그러니 남북전쟁에는 ‘부자들의 전쟁, 가난한 자들의 싸움’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버드대학교의 정치학자 마이클 샌델은 문제를 다르게 보게 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여기서 손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대하는 청년은 목돈을 거머쥐어서 기뻤을 테다. 돈을 준 사람은 목숨을 잃을 위기를 벗어났다. 국가까지도 한몫을 챙겼다. 필요한 장정을 구했을뿐더러 세금까지 거두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병역 기피를 도끼눈으로 봐야 할 까닭이 뭐 있겠는가?
샌델은 문제를 점점 넓게 벌린다. 2007년, 미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노동자들보다 평균 344배나 많은 봉급을 받았다. 날이 갈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더욱 커진다. 그러나 이 또한 뭐가 문제란 말인가?
윤리학자 노직에 따르면, 돈 때문에 손가락질받아야 하는 때는 두 가지뿐이다. 옳지 못한 돈과 자리를 밑천으로 돈을 벌었을 경우, 그리고 자유로운 협상이 아닌 협박 등으로 재산을 쌓았을 경우. 올곧은 노력으로 부자가 되었다면 되레 박수를 받아야 맞다. 이쯤 되면 독자들의 머리는 어찔어찔할 테다. 하지만 샌델의 말은 끝까지 들어보아야 한다. 콩팥을 사고파는 짓은 과연 옳을까? 이때도 논리는 앞서와 똑같을 테다. 자기 몸의 내장을 파는 사람은 돈을 벌어서 좋다. 콩팥을 사는 이는 건강을 챙겨서 좋고. 그런데 콩팥을 ‘마술 소품’으로 사는 경우는 어떤가? 마술에서 볼거리로 쓰고 버리기 위해 인간 몸을 사려 한다면?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인간’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샌델은 바로 이 점에서 ‘정의’(justice)의 핵심을 짚어낸다. 이익이 된다 해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가 있지 않던가. 사람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경제가 가장 소중한 일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시장판에서는 이익이 최고다. 또한, 거래를 제대로 하려면 사람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아야 한다. 사람들이 ‘이익’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게 된 까닭이다. 하지만 칸트는 인간이란 세상 무엇과도 다른 존재라고 잘라 말한다. 짐승은 배고프면 먹고, 화나면 으르렁댄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은 ‘자유롭다’고 말한다. 짐승은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이지만, 인간은 도리를 좇아 삶을 꾸린다. “이익에 신중하고 약삭빠르게 되는 것은 덕 있는 사람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칸트가 말한 ‘자유’를 살려내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어느덧 ‘경제 살리기’는 정치의 목적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치는 원래 시장이 잘 돌아가도록 뒤치다꺼리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치란 “좋은 시민을 기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지를 좀처럼 묻지 않게 되었다. 정치인들에게 경제를 살려내라고 윽박지르는 이들은 많다. 반면, 좋은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마이클 샌델은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군 입대를 피하는 일은 왜 나쁠까? 공동체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내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면, 전쟁은 언제나 ‘남의 일’이다. 사회 지도층에 군 기피자가 많으면 전쟁은 더 자주 일어나기 쉽다. 전쟁이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는 상관없는 탓이다. 빈부격차는 왜 문제일까? 이 또한 공동체를 깨뜨리기에 나쁘다. 밤거리를 다니기 무서운 지경이 되면, 부자들은 따로 모여 살기 시작한다. 그들은 경비원을 불러다 자기 동네를 지키게 한다. 버스와 지하철이 낡고 불편하다면? 부자들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그만이다. 그럴수록 부자들의 불만은 늘어만 간다. 경찰서를 짓고 대중교통을 늘리는 일은 자신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나와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내 돈을 써야 하는가 말이다. 내 재산을 건드려서 내 권리를 흔들지 말고, 저들끼리 알아서 살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내가 사는 공동체가 무너지면 나의 삶도 흔들린다. 우리가 끊임없이 ‘바람직한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샌델은 이렇게 말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공정한 사회’를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어떤 이들은 청와대에서 ‘공정한 사회’를 내세운 탓에, 반대편에게 꼬투리만 잡혔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이는 병을 제대로 짚어냈다고 의사를 탓하는 꼴이다. 병은 내버려둘수록 커진다. ‘경제 살리기’를 넘어 ‘공정한 사회’를 고민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국격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 공정사회론이란?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8·15 경축사’에서 내세운 새로운 국정 방향이다. 친서민, 상생,노블레스 오블리주,기회 균등 등이 합해진 개념이다. 최근 장관 임용 등에서, ‘공정한 사회’의 정확한 개념과 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호부터 시사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글쓰기를 위해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병역 기피’는 관리들에게 뜨거운 감자다. 군대 안 가려고 꼼수 부렸다가 망신당한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하지만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그들 역사에서는 지도층들도 당당하게(?) 군대를 안 갔다. 우리 잣대로 하자면, 앤드루 카네기, 제이피 모건,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아버지 등은 모두 ‘병역 기피자’였다. 그들은 군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당시에는 1700달러만 주면 대신 군대 갈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군입대 대리인 고용’은 법을 어기는 짓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중에는 국가가 나서서 ‘병역 장사’를 하기까지 했다. 나라에 300달러만 내면 군에 안 가도 되었다. 그러니 남북전쟁에는 ‘부자들의 전쟁, 가난한 자들의 싸움’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윤리학자 노직에 따르면, 돈 때문에 손가락질받아야 하는 때는 두 가지뿐이다. 옳지 못한 돈과 자리를 밑천으로 돈을 벌었을 경우, 그리고 자유로운 협상이 아닌 협박 등으로 재산을 쌓았을 경우. 올곧은 노력으로 부자가 되었다면 되레 박수를 받아야 맞다. 이쯤 되면 독자들의 머리는 어찔어찔할 테다. 하지만 샌델의 말은 끝까지 들어보아야 한다. 콩팥을 사고파는 짓은 과연 옳을까? 이때도 논리는 앞서와 똑같을 테다. 자기 몸의 내장을 파는 사람은 돈을 벌어서 좋다. 콩팥을 사는 이는 건강을 챙겨서 좋고. 그런데 콩팥을 ‘마술 소품’으로 사는 경우는 어떤가? 마술에서 볼거리로 쓰고 버리기 위해 인간 몸을 사려 한다면?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인간’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샌델은 바로 이 점에서 ‘정의’(justice)의 핵심을 짚어낸다. 이익이 된다 해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가 있지 않던가. 사람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경제가 가장 소중한 일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시장판에서는 이익이 최고다. 또한, 거래를 제대로 하려면 사람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아야 한다. 사람들이 ‘이익’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게 된 까닭이다. 하지만 칸트는 인간이란 세상 무엇과도 다른 존재라고 잘라 말한다. 짐승은 배고프면 먹고, 화나면 으르렁댄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은 ‘자유롭다’고 말한다. 짐승은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이지만, 인간은 도리를 좇아 삶을 꾸린다. “이익에 신중하고 약삭빠르게 되는 것은 덕 있는 사람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칸트가 말한 ‘자유’를 살려내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어느덧 ‘경제 살리기’는 정치의 목적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치는 원래 시장이 잘 돌아가도록 뒤치다꺼리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치란 “좋은 시민을 기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지를 좀처럼 묻지 않게 되었다. 정치인들에게 경제를 살려내라고 윽박지르는 이들은 많다. 반면, 좋은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마이클 샌델은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군 입대를 피하는 일은 왜 나쁠까? 공동체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내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면, 전쟁은 언제나 ‘남의 일’이다. 사회 지도층에 군 기피자가 많으면 전쟁은 더 자주 일어나기 쉽다. 전쟁이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는 상관없는 탓이다. 빈부격차는 왜 문제일까? 이 또한 공동체를 깨뜨리기에 나쁘다. 밤거리를 다니기 무서운 지경이 되면, 부자들은 따로 모여 살기 시작한다. 그들은 경비원을 불러다 자기 동네를 지키게 한다. 버스와 지하철이 낡고 불편하다면? 부자들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그만이다. 그럴수록 부자들의 불만은 늘어만 간다. 경찰서를 짓고 대중교통을 늘리는 일은 자신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나와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내 돈을 써야 하는가 말이다. 내 재산을 건드려서 내 권리를 흔들지 말고, 저들끼리 알아서 살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내가 사는 공동체가 무너지면 나의 삶도 흔들린다. 우리가 끊임없이 ‘바람직한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샌델은 이렇게 말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공정한 사회’를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어떤 이들은 청와대에서 ‘공정한 사회’를 내세운 탓에, 반대편에게 꼬투리만 잡혔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이는 병을 제대로 짚어냈다고 의사를 탓하는 꼴이다. 병은 내버려둘수록 커진다. ‘경제 살리기’를 넘어 ‘공정한 사회’를 고민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국격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 공정사회론이란?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8·15 경축사’에서 내세운 새로운 국정 방향이다. 친서민, 상생,노블레스 오블리주,기회 균등 등이 합해진 개념이다. 최근 장관 임용 등에서, ‘공정한 사회’의 정확한 개념과 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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