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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대중매체는 팔딱팔딱 살아있는 국어책

등록 2010-10-25 09:14

광고나 드라마 등 대중매체를 이용하면 우리말을 좀더 흥미롭게 가르칠 수 있다.  사진 공규택 교사 제공
광고나 드라마 등 대중매체를 이용하면 우리말을 좀더 흥미롭게 가르칠 수 있다. 사진 공규택 교사 제공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교육 재미있게 하기 /
TV광고·가요노랫말·외래어 속 틀린 표현 찾고
순우리말 댓글달기 등 일상과 연결된 공부 중요
우리의 삶이 매체와 밀접해지면서 언어문화도 매체와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터넷에서나 쓰던 통신 언어가 일상 언어의 영역을 침범하는가 하면, 텔레비전 속 코미디언의 말을 따라하다 보면 어느덧 유행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양한 매체를 통한 언어문화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매체를 통해 자신의 언어를 생산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인터넷 신문에 댓글을 달고, 트위터로 자신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개진한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추세는 교육계에서도 느낄 수 있다. 2007년 고시된 7차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 ‘매체 언어’ 영역이 신설됨으로써 매체는 교육의 ‘수단’이 아닌 ‘내용’이자 ‘목표’가 되어 가고 있다. 필자의 고민은 바로 이 ‘매체’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은 대중매체에서 우리말 원리의 실마리를 잡으려고 했다. 대중매체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거울로 비추듯 왜곡 없이 여실하게 반영한다. 따라서 대중매체를 살펴보는 것은 곧 우리의 언어생활을 살피는 것이다. 대중매체는 놓칠 수 없는 교육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대중매체는 국어의 원리를 담은 당의(糖衣)

‘갈매기살’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는 가게 문 앞에 기웃대고 있는 갈매기가 문이 열린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다가 ‘갈매기살’이라는 글씨를 마치 본 것처럼 흠칫 놀라 재빨리 뒷걸음치는 갈매기의 모습이 나온다. 어떤 통신사의 코믹한 텔레비전 광고의 한 장면이다. 대중매체를 활용한 우리말 수업은 이 광고 속의 갈매기가 ‘갈매기살’의 정확한 의미를 알았더라면 절대로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서 시작한다. ‘가로막살’에서 출발한 우리말은 몇 단계의 어형 변화를 통해 공교롭게 ‘갈매기살’에 이르는 과정을 밟았다. 이러한 언어의 변화 과정은 텔레비전 광고라는 당의(糖衣)가 있었기에 학습자에게 흥미로운 학습 요소가 된다.

“맞다 게보린”이라는 진통제 광고의 카피는 문법적으로 잘못되어 있음을 미리 제시해도 학습자들은 그 사실을 수긍하지 못한다. ‘맞다’는 동사이기에 현재형을 나타낼 때는 ‘먹는다, 잡는다’처럼 ‘-는-’을 넣어서 표현해야 한다고 하면, 그때서야 몇몇 학생들이 ‘맞는다’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도발적인 카피로 한때 장안의 화제였던 통신사 광고를 가지고, ‘개고생’이 과연 공중파 방송에 써도 좋은가, 아닌가를 토론한 후에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이 말이 표제어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표준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광고 문구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고, 단지 교양 있는 표준어를, 상스럽다고 여긴 뭇사람들의 호들갑이 결국 광고주의 노림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거기에 덤으로 얻는 것은 ‘개-’는 개[犬]와는 전혀 상관없는 접두사라는 사실과 함께 우리말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미의 접두사들을 더불어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저학년 학습자들에게 어려운 개념 중에 하나는 바로 우리말 용언의 ‘활용’(活用)이다. ‘활용’이라는 약(藥)을 먹이기 위해서 아이돌 그룹 에프티아일랜드의 ‘바래’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당의로 사용할 수 있다.

“…다시 태어나도 너만 바래 다시 사랑해도 너만 바래 돌아올 거야 돌아올 거야 네가 없는 나는 없으니까. 이 모든 게 악몽일 거라 나 생각했어. 제발 이 꿈에서 깨기만 바래…”

기본형이 ‘바라다’임을 고려하면 어간 ‘바라-’를 두고서 아무리 활용을 해봐도 ‘바래’가 실현될 수 없음을 보여주면 왜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노랫말이 틀렸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자주 틀리게 되는 ‘삼가하다’나 ‘설레이다’도 그 기본형이 ‘삼가다’와 ‘설레다’라는 것만 알려주면 왜 틀린 말인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대중가요를 통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우리말 ‘활용’의 개념이다.

유명한 홍콩 영화배우 ‘성룡’은 왜 신문기사에서는 ‘청룽’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면, 현실음에 충실해야 한다는 외래어표기법의 기본 원리를 학습시킬 수 있다. ‘짜장면’이 ‘자장면’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중국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적용되는 외래어표기법의 원리가 고스란히 적용됨을 학습자들에게 흥미롭게 제시할 수 있다. 또 학습자들이 즐겨 먹는 간식 중에 ‘죠스바’나 ‘콘’ ‘씨리얼’을 예로 들어 이들을 ‘조스바, 콘칩, 시리얼’로 고쳐 쓰도록 안내하면서 외래어표기법의 세부 규정을 알려줄 수 있다.

대중매체는 살아 있는 우리말 교육자료

우리가 국어를 배우고, 표준어와 맞춤법을 배우는 것은 사회구성원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일상 언어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우리의 국어는 일상과는 유리되어 ‘국어교과서’라는 정전(正典)에 매몰되고 있다. 우리말을 배우는 궁극적 목표가 일상의 언어생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전제하면, 일상의 언어생활을 한치의 왜곡 없이 그대로 비추고 있는 대중매체는 살아서 팔딱팔딱 뛰고 있는, 훌륭한 우리말 교육 자료가 된다.

요즘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일상 언어생활의 영역으로 끌어내려는 노력을 학습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예를 든다면,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 후기에 쓰기에 좋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학생들과 조사하여 ‘다루기에 가볍고 간편하거나 손쉽다’는 뜻의 ‘가든하다’와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아니하고 꼭 알맞다’는 뜻을 지닌 우리말 ‘팽하다’, 그리고 ‘물건에 생긴 조그마한 흠’을 뜻하는 ‘군티’라는 말을 찾아냈다. 이 말을 실제로 인터넷 상품 후기에 사용해보는 활동이다. 지금은 수행평가의 영역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는 누구나 “휴대전화가 복잡한 기능 없이 가든한 게 팽하고 좋네요” “군티가 조금 있어 아쉬워요”라는 상품 후기를 인터넷 곳곳에 남길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이런 활동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우리말의 씨를 뿌리는 활동이다. 우리말은 대중매체가 있어 더 재미있고 즐겁다.

공규택/경기과학고 교사, <국어시간에 신문읽기 1, 2> <우리말 필살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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