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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성균관 스캔들’ 인기, 불편한 뒷면

등록 2010-11-01 09:29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난이도 수준-고2~고3]

7.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2 - <성균관 스캔들>의 인기, 불편한 뒷면

조선시대에 견주면 지금의 ‘입시 지옥’도 별것 아니다. 선비라면 마땅히 대과(大科) 급제가 인생 목표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3년마다 치러지던 과거(科擧) 시험, 최종 합격자는 33명뿐이다. 대과를 보는 자격을 얻는 소과(小科) 합격자 수도 겨우 200명이다. 소과를 통과한 이들이라야 비로소 이름에 진사, 생원이란 꼬리표를 붙였다. 조선 대부분의 군현(郡縣)에서 진사, 생원은 10년에 1명 나올까 말까 할 정도였단다. 합격자의 평균 연령도 소과는 35세, 대과 급제는 38세 남짓이었다. 60세까지 살기도 힘들던 시절, 과거가 얼마나 힘겨운 ‘입시’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진사, 생원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成均館)의 입학 자격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성균관에 대한 인상이 꼭 좋지만은 않았다. 성균관은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학력과잉’은 늘 유교(儒敎)가 끼친 안 좋은 영향으로 꼽히지 않던가.

하지만 요새 성균관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덕분이다. 드라마의 인기는 잘생긴 청춘스타들 덕분만은 아니다. 성공의 큰 이유는 원작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튼실한 얼개와 재미에서 찾을 수 있을 듯싶다.


주인공 윤희는 몰락한 남인 가문 처녀다. 살길이 막막했던 그녀는 남자인 척 꾸미고 글품을 판다. 멋진 필체로 책을 베껴 팔거나, 남의 시험답안을 대신 적어주는 사수(寫手)가 그녀의 ‘직업’이다. 어느 날, 그녀는 병에 걸린 남동생을 대신해서 소과 시험을 치른다.

놀랍게도 윤희는 단번에 과거에 합격하고 만다. 그것도 우수한 성적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모른다. 무척 곤란한 상황, 정조(正祖) 임금은 직접 그녀를 불러 성균관에서 공부하도록 명을 내린다.

더욱 곤란하게도, 그녀는 남자 둘과 한방을 써야 하는 처지다. ‘룸메이트’는 둘 다 걸출한 인재들이다. 좌의정의 아들 이선준과 사헌부 대사헌의 아들 문재신. 이들의 아버지는 권력을 누리던 노론과 소론의 대표격인 사람들이다. 게다가 둘은 실력 있는데다 잘생기기까지 했다. 여기에 옆방에는 돈 많은 한량인 구용하가 있다. 그 역시 ‘럭셔리’하고 세련된 외모다. 남자로 속이고 사는 윤희 역시 야들야들한 ‘예쁜 선비’로 눈길을 모은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2정은궐 지음  파란미디어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2정은궐 지음 파란미디어

이 넷은 성균관에서 ‘질금 4인방’으로 인기를 끈다. 그들만 보면 여인들이 오줌을 질금거릴 만큼 넋을 놓는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영락없는 ‘조선시대판 F4’인 셈이다. 소설은 이선준과 윤희, 문재신의 ‘삼각 러브라인’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성균관의 빡빡한 일상에 엮여 대과 급제에까지 다다른다. 이선준과 윤희의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도 행복한 혼례로 끝을 맺는다. 달콤한 사랑 이야기에 성공 스토리까지, 첫 장을 펼치면 좀처럼 손에서 떼기 어려운 책이다. 그만큼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재미있다.

단순히 재밌기만 하다면 이 책은 여느 인기 소설들과 다를 바 없다. 잘나가는 선남선녀가 만나서 이끌어가는 사랑 이야기는 너무 흔하지 않던가. 하지만 우리는 왜 선준과 윤희의 사랑이 관심을 끄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역사물들은 유행을 타기 마련이다. 어느 때는 장희빈이, 다른 때는 이순신이 인기를 끄는 식이다. 지금은 정조 시절 이야기들에 관심이 모인다. <이산>,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등 정조 이야기를 다룬 역사물들이 차고 넘치는 요즘이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도 정조 시대가 배경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사람들의 관심은 나라를 구한 영웅호걸 이야기에 꽂힌다. 장희빈 같은 궁중 암투는 선거철에 봐야 제격이다. 공감이 되어야 몰입도 되기 마련, 역사물은 지금 시대에 맥이 맞닿아야 흥미가 당기는 법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시대에는 정조에게 관심이 갈까?

정조는 개혁을 꿈꾸던 군주였다. 소설 곳곳에는 어둡고 답답했던 시대 상황이 잘 그려져 있다. 윤희의 처지만 해도 그렇다. 윤희의 불행은 부모에게서 비롯되었다. 당파가 다르면 결혼은 꿈도 못 꿀 만큼 당쟁(黨爭)이 심할 때였다. 윤희의 아버지는 남인, 어머니는 노론이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쓴 혼인은 그들을 세상 밖으로 몰아내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지친 윤희는 남 대신 과거를 보아 큰돈을 챙기려 했다. 돈 있는 자들은 답안을 대신 써주는 거벽(巨擘)과 이를 멋들어지게 옮기는 사수까지 동원해서 과거를 치렀다. 입시 비리가 일종의 ‘시스템’으로 굳어진 셈이다.

세상 곳곳에 뿌리내린 부정 앞에는 임금도 별 소용이 없었다. 왕조차도 당파에 밀려 누명을 쓴 이선준을 어쩌지 못했다. 당파싸움 앞에서는 ‘증거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은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에게서도 기어이 허울을 끄집어낸다. 작정을 하고 ‘표적수사’를 하는데 누가 피할 수 있겠는가.

점점 노론의 지배 아래 들어가는 세상, 그 밖의 사람들은 설 곳이 없었다. 성균관 안에서도 별 볼 일 없는 가문 출신은 힘없이 밀려났다. 이들에게는 과거시험 또한 희망이 되지 못했다. 그들에게 미래는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희망이 사라질 때 사람들은 환상에 빠져든다. 이루지 못할 소망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라.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개혁을 외친다. 그러나 뿌리내린 비리와 무능력은 ‘시스템’으로 굳어져 간다. 그럴수록 바꾸기는 더 어렵다. 특권층 또한 점점 굳어져 간다. 명문대에는 집안 좋은 아이들로 넘쳐난다. 개천에서 용 나기란 점점 불가능한 일처럼 되고 있다.

지금의 현실은 정조 시대와 얼마나 다를까? 시대를 주름잡는 인기는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사랑 이야기가 유쾌발랄하게만 다가오지 않는 까닭이다.

<성균관 스캔들>은

정은궐 장편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원작으로 한 티브이 드라마다. 이른바 ‘성스 폐인’들을 낳을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제 드라마는 종영을 한 주 앞두고 있다. 하지만 미키 유천 등 청춘스타가 대거 출연한 ‘성스’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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