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방송(EBS)은 올해 수능 뒤 기본개념과 원리 등을 깊이 있게 해설하는 강의를 더 도입하겠다고 했으나 ‘70%연계’를 믿고 이비에스 강의를 들었던 올해 수험생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한겨레> 자료사진
[함께하는 교육] 커버스토리 /
“역시나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거죠, 뭐.”
지난 11월7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하자 올해 수능을 치른 대다수 수험생들은 ‘역시나!’라는 반응이었다. 올해 수능에서 표준점수 최고점은 언어 140점, 수리 가형 153점, 수리 나형 147점, 외국어 142점으로 작년 수능보다는 각각 6점, 11점, 5점, 2점 높아졌다. 표준점수는 수험생 개개인의 점수가 평균점수로부터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로 시험이 어려워 전체 평균이 낮으면 표준점수는 높아지고 반대로 평균이 높으면 표준점수는 낮아진다.
“문제 너무 꼬아 내…속았다“
수험생들 연계 체감률 낮아
“정부·언론이 부추겨“ 불만도
“단순 암기식으로 공부한 탓”
일부선 원리·개념 파악 주문
수험생들이 배신감을 느낀 이유는 교육당국이 올 초부터 올해 수능은 이비에스와 연계해 출제하겠다고 여러번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발단은 올해 1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당시 교과부장관은 “현재 30% 수준인 교육방송 강의의 수능 출제 비율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흔들렸다. 학생들은 수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비에스 문제집을 사들였고, 학원에 다녀와서는 이비에스 수능 인강을 듣기 시작했다.
문제는 뚜껑이 열리고 터졌다. 지난 11월18일 수능 시험이 치러진 뒤 학생들은 분노했다. 학생들이 느끼는 ‘연계 체감율’이 낮은 탓이었다. 학생들은 “연계라고 하는데 정말 연계가 된 건지 체감이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성적이 중상위권이라는 서울 ㄱ아무개고의 한 수험생은 “보도가 나온 뒤로 교육방송을 열심히 봤지만 가채점 결과 언어에서 30점이 떨어졌다”며 “연계가 됐다고 하는데 체감이 정말 안 된다”고 했다. 서울 ㅁ아무개여고의 한 수험생은 “문제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는데 너무 꼬아낸 것 같아서 차라리 안 본 문제를 푸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고 했다. 반면 문제를 풀어본 교사들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입학상담센터에서 입시 상담을 해주고 있는 한 고교교사는 “어떤 개념이나 원리를 갖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야 하는 문제였을 뿐이지 연계가 안 된 건 절대 아니다”라며 “교재를 단순히 외우다시피 공부한 경우, 불만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모호한 ‘연계’의 정체는 뭘까? 올해 자녀가 수능시험을 치렀다는 한 학부모는 “연계라는 게 문제에서 어휘만 바꾼다는 건지 아니면 유형이 비슷하다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올해 출제된 수능 문제 가운데 이비에스 교재와 연계된 문제들을 보면 이 학부모의 이야기 중 어휘만 바꾸는 방식은 연계에 포함이 안 된다. 현장 교사들은 “거의 똑같이 그대로 출제하는 건 연계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비에스 수능 강의를 하는 교사들은 연계를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김인봉 국어교사는 “일단, 지문을 활용해 가져오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고 했다. 올해 언어영역 듣기평가 4번 문제는 지문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로 도서관 운영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한 사람들의 토론을 담은 지문이 <파이널 실전 모의고사>에서 표현, 어휘 등을 빼고 비슷하게 활용돼 나왔다. 이밖에도 연계의 방법에는 지문 및 자료를 활용한 경우, 문제 유형을 활용한 경우, 문제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활용한 경우 등으로 나뉜다. 언어영역의 경우, 13번~16번 문제에 나온 고은 시인의 <선제리 아낙네들>은 <인터넷 수능-시문학> 교재 34, 35쪽에도 그대로 나온 적이 있었다. 이렇게 학생들한테 익숙한 지문이 있었던 반면, 32~35번에 나온 과학 지문은 이비에스 교재 지문과 연계 활용한 경우임에도 학생들이 매우 어려워했던 지문이었다. 덕수고 윤혜정 국어교사는 “교육방송 교재에 비슷한 내용의 지문이 나왔었지만 기술, 과학, 사회 등 비문학 지문일 경우에는 학생들이 원래 어렵다고 느끼는 독해 지문이라 연계 체감율이 낮을 거고, 연계됐다고 해도 기억이 안 난다고 느끼기 쉽다”고 했다. 사실상 연계에 대한 체감율은 학생들 각자 느끼기 나름일 수밖에 없다.
모든 학생들이 연계율이 낮았다고 말하는 건 아니었다. 경기도 한 외고의 ㅈ아무개 양은 “몇몇 문제를 빼놓고선 연계율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학생이 다니는 학교는 교육방송 문제집에서 정기고사 문제를 출제하고 있었고, 학생들은 정기고사 대비를 위해 교육방송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결국, 겉핥기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문제의 개념과 원리 등을 깊이 있게 들여다봤다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 중하위권 학생들의 경우, 지문을 읽어보고, 답이 뭔지를 맞춰보는 문제풀이 방식으로 접근을 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이 ‘연계’라는 말을 지나치게 만만하게 봤다고도 지적했다. 윤혜정 교사는 “교육방송 보도가 나간 뒤 마치 이 교재들이 시험범위라고 생각하고 이 안에서만 나올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며 “이런 문제집들만 건드리면 문제가 어느 정도 쉽게 풀릴 거라는 안일한 대응방식도 문제였던 것 같다”고 했다. 이비에스를 도구 교재로 삼아 공부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학생들이 교육방송 연계와 관련해 올해 수능을 물로 봤다고 몰아갈 일만은 아니다. 대통령, 언론이 나서 헛바람을 부추긴 점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한 수험생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교육방송 수능 강의만 받고도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제도로 가자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어렵게 나올 줄은 몰랐다”며 “사실상 이비에스 인강 자체도 문제풀이식이었지 원리나 개념을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고교 수학교사는 “나도 이비에스로 공부하라고는 했지만 연계라는 게 참 모호한 개념이다”라며 “교재에 나온 2천개 문제 가운데서 도형 삽화를 하나를 활용해서 낸 경우를 두고 ‘연계’라고 하면 모래밭에서 빨간색 돌 하나 찾으라는 이야기와도 같은 건데 연계란 말을 안 꺼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계’는 논란이 뜨거울 수밖에 없는 주제다. 교육방송에서 나온 문제를 대부분 직접 연계할 경우, 이 방송은 수능대비 족집게 방송으로 공식 인정되는 것이고, 연계가 지나치게 간접적이고 연계 체감율이 떨어질 경우, 교육방송 연계로 사교육을 잡겠다는 본래 취지는 무의미해진다. 올해 수능을 치른 충주고 박래현 군은 “이비에스 이니셜을 따서 만든 ‘이배속 파헤치기’ 등의 사교육 패키지 프로그램은 이미 등장했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수능과 교육방송 연계 정책은 계속될 예정이다. 지난 11월30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방송은 ‘수능-교육방송 연계 방향에 대한 논의’를 통해 “기본 개념과 원리 및 문항을 심도있게 설명하는 강의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교육방송 강의의 질을 제고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수능을 치른 한 수험생은 “내년에 수능을 치를 동생이 있다면 교육방송 문제를 깊이 있게 해석해주는 사교육부터 접수하라고 할 거다”라며 “올해 연계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은 학생들 사이에선 우리가 마루타가 아니냐란 이야기도 한다”고 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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