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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디베이트? 가장 질서있는 말하기 훈련”

등록 2011-01-10 09:34

캐린 리. 디베이트 교육 전문가.
캐린 리. 디베이트 교육 전문가.
[함께하는 교육]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 /
찬반 입장 확실해 반박 논리 탄탄해져
심판이 초시계 들고 발언시간·순서 점검
1. 놀라운 유대인 교육 효과의 비밀 - 토론

2. 디베이트를 ‘형식적인 토론’이라고 하는 이유

3.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를 한꺼번에 - 디베이트의 놀라운 효과1

벌써 7년 전 이야기다. 당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교육신문을 발행하고 있던 나는 주입식 교육에 둘러싸인 한인 커뮤니티에 새로운 교육 모델을 소개하고 싶었다.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고, 리더십까지 준비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 답은 디베이트(Debate, 토론)였다.

나는 디베이트야말로 주입식 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판단하여 정열적으로 밀어붙였다. 교육신문에 관련 기사를 계속 내고, 어머니들을 만나 강연회를 했다. 학원장들을 설득해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도록 요청했고, 일 년에 두어 차례 디베이트 경시대회도 열었다. 그 결과 지금은, 적어도 남캘리포니아(남가주)에서, 디베이트는 가장 중요한 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자부한다. 내 인생에서 큰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일 가운데 하나다.

이제 그 디베이트 프로그램이 한국에서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대학에 관련 동아리가 생기는가 하면 여기저기서 경시대회도 간혹 열린다. 나는 단언컨대, 대한민국 교육을 살릴 것은 디베이트라고 믿는다. 나는 디베이트 전도사가 되고 싶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미스터 디베이터(Mr. Debater)라고 불러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게 된 연유를 지금부터 소개하겠다. 디베이트를 알게 된 독자라면 나 같은 디베이트 전도사가 될 수밖에 없으리라고 본다. 그러니 처음 듣는 이야기일지라도, 우리 아이를 살리는 교육은 디베이트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읽어줬으면 좋겠다.

디베이트는 다른 토론과 비교할 때 꽉 짜인 형식을 갖추고 있어 일반적인 토론에서 벌어지는 문제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으며 교육 프로그램으로 적당하다. 사진은 2007년에 열렸던 세계고등학교 토론대회에서 학생들이 찬반 입장으로 나뉘어 토론하는 모습.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디베이트는 다른 토론과 비교할 때 꽉 짜인 형식을 갖추고 있어 일반적인 토론에서 벌어지는 문제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으며 교육 프로그램으로 적당하다. 사진은 2007년에 열렸던 세계고등학교 토론대회에서 학생들이 찬반 입장으로 나뉘어 토론하는 모습.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처음에 어머니들을 만나 디베이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 어머니들 중에는 디베이트란 말을 따라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디…뭐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디베이트의 필요성을 알리고, 조직화했다.

당시 나는 디베이트를 디스커션(Discussion, 토론)과 비교해서 설명하곤 했다. 둘 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토론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너무 다르다. 해서 나는 디베이트가 영어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디베이트라고 불러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디베이트가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가 살아난다고 본다. 게다가 현재 한국 실정에서 토론은 지나치게 광범위한 의미로 혼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백분토론 혹은 끝장토론, 독서토론, 자유토론이라 했을 때 토론이란 말에서 디베이트를 떠올리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래서 당분간 디베이트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같은 토론인데 왜 다를까? 디스커션은 토론이기는 하되 형식적 제약이 없다. 따라서 토론의 결과가 다양하게 나온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은?”이라는 주제로 토론한다고 하자. 그럼 다양한 견해가 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을, 어떤 사람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어떤 사람은 케네디 대통령을 언급할 것이다.

그런데 디베이트는 같은 토론이면서도 이상과 같이 진행되지 않는다. 형식적인 제약이 큰 것이 디베이트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형식적인 제약이 크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첫째, 디베이트는 찬반이 확실한 주제를 선택해서 토론한다. 그러다 보니 참가 팀은 찬성팀과 반대팀 두 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점심에는 뭘 먹을까?” 같은 주제는 디베이트 주제가 될 수 없다. 다양한 결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베이트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 “중국의 1가족 1자녀 정책이 인권의 입장에서 볼 때 옳은가 그른가”라는 식으로 찬성과 반대가 명료한 주제를 택한다.

엔에프엘이 2009년 10월 개정한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의 최신 진행 방법
엔에프엘이 2009년 10월 개정한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의 최신 진행 방법

둘째로 디베이트는 발언 시간, 발언 순서가 미리 정해져 있다. 찬성쪽에서 2분 이야기하면 반대쪽에서도 2분 이야기한다. 찬성편에 1분 준비할 시간을 주면, 반대편에도 1분 준비할 시간을 준다. 이 시간을 어기면 감점이다. 그래서 디베이트 경시대회를 할 때 심판들은 초시계를 갖고 참석한다. 발언 순서도 마찬가지다. 이쪽에서 주제발표를 하면, 다음에는 다른 쪽의 주제발표다. 이쪽의 반박 순서가 끝나면 다른 쪽에도 반박 순서가 있다.

구체적으로 한 예를 들어보자. 디베이트의 한 종류인 퍼블릭 포럼(Public Forum) 디베이트를 살펴보자. 이는 저학년 학생들에게 적합한 디베이트 방법이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디베이트 조직인 엔에프엘(NFL, National Forensic League)이 2009년 10월 개정한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의 최신 진행방법은 왼쪽 표와 같다. 디베이트가 원래 서양에서 시작된 것이라 디베이트를 설명할 때 영어가 많이 튀어나온다. 어려우면 지금은 그냥 ‘아, 디베이트는 이렇게 시간을 정해 하는구나!’라고 하고 넘어가자.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한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렇게 질서있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훈련을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만 이야기를 독점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할 시간에 머릿속으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다가 엉뚱한 소리를 한다. 생각이 다르면 금방 이야기가 과열되고 고성으로 번진다.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디베이트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베이트 교육을 제대로 받은 학생들은 자기가 말한 만큼 상대방에게도 말할 기회를 준다. 상대방이 말할 때는 그 핵심을 파악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야 다음 순서에서 반박을 할 수 있으니까. 흥분해서 떠들어봐야 디베이트 경시대회에 나가면 점수만 깎인다.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디스커션과 달리 디베이트는 분명한 형식이 있다. 찬성과 반대로 나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해서, 참가자들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정해진 진행 순서와 부여된 시간에 따라 공정하게 토론하는 것이다. 그래서 디베이트를 ‘형식적인 제약이 큰 토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발언 순서, 발언 시간을 미리 정하고, 또 찬성과 반대로 확연히 나눠 토론하는 이유는 뭘까? 이렇게 하면 오히려 발언자의 자유로운 발언을 제약하지는 않을까?

디베이트를 할 때 사전에 이렇게 정해두고 하는 이유는, 이렇게 토론했을 때 서로의 토론 기량 차이를 쉽게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팀도 여럿이 있고, 팀별로 성원의 수도 다르고, 서로 토론하는 주제도 다르고, 발언하는 순서도 뒤죽박죽이고, 발언 시간도 다르면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공정하지 않은 환경에서 누가 더 잘 토론했는지를 결정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전에 규칙을 정해두고, 서로 똑같은 조건에서 공정하게 토론하면 토론 기량을 비교하는 데 수월하다. 공정하기 때문에 시비가 일 여지도 없다.

자, 이번엔 실제로 사전을 살펴보자. 영어사전은 디베이트는 ‘a formal discussion, often in front of an audience, in which two or more people put forward opposing views on a particular subject’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를 하나하나 분석하면 이렇다. 디베이트는 (1)특별한 주제를 두고, (2)청중들 앞에서, (3)두 명 이상의 사람이, (4)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개진하는, (5)형식이 분명한 토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디베이트가 교육 프로그램의 형태를 갖게 되면, 여기에 몇 가지 의미가 더 추가된다. (1)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계속되고, (2)토론의 승부보다는 그 조사(리서치)와 준비 과정, 그리고 실제 디베이트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교육적 효과를 중시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상을 염두에 두면서 디베이트 프로그램을 다시 정의해보면, (1)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2)정기적으로 매주 모여, (3)제시된 주제와 관련된 조사와 준비를 마치고, (4)서로 반대되는 입장에서, (5)형식이 분명한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6)주제에 대한 깊고 논리적인 인식을 추구하고, (7)더불어 팀워크와 리더십을 함양하며, (8)자신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스피치 훈련을 하는 종합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아직은 너무 어려울까? 그렇다면 우선은 디베이트는 찬반으로 나눠 하는 토론, 이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 디베이트 프로그램이라고 간단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자. Help@TogetherDebate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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