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업무 시키거나 부전공 압박 등 ‘수난시대’
정원 미달로 재정부담 불구 국영수 채용 늘려
정원 미달로 재정부담 불구 국영수 채용 늘려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인 서울 ㅅ고 지리교사였던 ㄱ씨는 지난해 8월 명예퇴직을 했다. 교장이 “더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퇴직을 종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자사고로 전환된 뒤 부임한 교장은 교사와 학부모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구조조정을 하러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ㄱ씨는 “교육과정을 주요 대학 입시에 유리한 과목 위주로 편성한 탓에 비주류 과목이 홀대를 받게 되면서, 지난해 8월 이후 퇴직한 교사가 우리 학교에서만 10여명 정도 된다”며 “학교 쪽이 비주류 과목 교사들에게 행정업무를 보게 하는 등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서울 지역 자사고들이 교육과정을 입시 위주로 파행 운영하면서, 입시와 관련이 없는 교과의 교사들을 아예 학교에서 퇴출시키거나 부전공을 하라고 압박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학교 정보 공시 사이트인 ‘학교알리미’(schoolinfo.go.kr)에 올려진 ㅅ고의 ‘교과별 교원현황’(2010년 4월 기준)을 보면, 자사고 학생으로 입학한 1학년을 가르치는 교사가 국어는 4명으로 2009년 3명에서 1명이 늘었고, 영어는 2009년 2명에서 지난해 5명으로 3명이나 증가했다. 과학도 3명에서 7명으로 늘었다. 반면 2009년 3명이던 기술·가정은 1학년엔 아예 배정되지 않았고, 체육은 2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또다른 자사고인 ㅂ고의 한 교사는 “얼마 전 교감이 기술·가정, 컴퓨터, 제2외국어 교사를 모아 놓고 1·2·3학년이 모두 자사고 학생이 되는 내년에는 해당 과목을 교육과정에 편성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김행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립위원회 정책국장은 “실업계에서 자사고로 전환한 학교의 경우 실업 과목 교사에게 상담교사 자격증을 따라고 해놓고 자격증을 따자 자사고에는 상담교사가 필요 없다며 사실상 퇴직을 종용하는 사례도 있다”며 “컴퓨터나 일부 사회교과 교사들까지 학교로부터 국·영·수 등 입시 과목을 부전공하라는 압박을 받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밝혔다.
자사고들의 교사 구조조정 움직임은 예산 절감을 위한 방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ㅇ고의 한 교사는 “학생들 등록금으로 운영하는 1·2학년에는 연봉이 적은 젊은 교사들을 배치하고, 교육청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3학년에는 연봉이 높은 고참 교사들을 배치했다”며 “1~3학년이 모두 자사고로 입학한 학생들로 채워지는 1~2년 뒤에는 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교들의 경우 당장 재정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비입시 과목 교사들을 구조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고에서 인건비 부담이 적은 기간제교사나 시간강사 등 비정규직 교사 비율이 높은 것도 같은 이유다. ㅇ고의 경우 전체 교사 98명 가운데 비정규직 교사 비율이 31.6%(31명)로 전국 평균(10.2%)의 3배 이상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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