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함께하는 교육]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난이도 수준-고2~고3]
22. 쿨하게 사과하라 - ‘사과’, 루저를 위너로 만드는 관계의 기술
<쿨하게 사과하라> 김호·정재승 지음 어크로스
“사과란 어쩔 수 없을 때만 하는 것이다.”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이다. 얼굴이 널리 알려진 이들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큰 책임을 맡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죄송하다는 말은 ‘책임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돌을 맞겠다며 스스로 나서기가 어디 쉽겠는가.
그래도 사과를 꼭 해야 할 만큼 심각한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사과 아닌 사과’(non-apology apology)를 내뱉곤 한다. “포로수용소에서 이라크 병사들과 그들의 가족이 겪은 굴욕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2004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한 사과(?)다. 당시 이라크 아부다비 수용소에서는 엄청난 포로 학대가 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말 속에는 ‘누가’ 잘못을 했는지,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과 책임 인정은 한마디도 없다. 그냥 상대방이 안쓰럽다는 ‘동정’이 담겨 있을 뿐이다.
부시의 말을 들은 이라크인들은 화를 가라앉혔을까? 분위기만 되레 더 흉흉해졌을 뿐이다. 이런 일은 우리 정치에서도 흔하게 벌어진다. 문제가 불거지면 “그런 일 절대 없다”며 버틴다. 며칠 뒤에는 “무슨 일이 있긴 했지만, 돈을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러다 몇 달 뒤에는 고개 숙이고 포토라인에 서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드물지 않다. ‘쿨’하게 사과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쉽게 만든다. “숨기면 작은 것도 커지고, 밝히면 큰 것도 작아진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호와 뇌과학자인 정재승 교수의 충고다. 그러나 사과를 제대로 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김호와 정재승 교수는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을 찬찬히 일러준다.
사과에는 ‘3R'(regret, responsibility, remedy)가 담겨 있어야 한다. 먼저 ‘유감’(regret)을 절절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냥 “죄송합니다”라는 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며 사과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하라.
잘못이 나한테 있는지가 분명치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때에도 안타까운 감정만큼은 재빨리 전해주어야 한다.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이 누그러들 테다. 내 잘못 아니라고 묵묵하게 있다간 의혹만 눈덩이처럼 커진다.
둘째, 내 ‘책임’(responsibility)임을 분명히 한다. “실수가 있었습니다”라는 말은 비겁해 보인다.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라며 잘못을 분명하게 받아들여라. 사과 뒤에 “그러나”, “하지만” 등의 말을 붙여서도 안 된다. 구차해 보일뿐더러, 상대는 내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것이다. 물론 오해가 있다면 해명을 해야 한다. 그러나 변명하는 내용은 전체 사과의 20%를 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되레 책임을 피하려 한다는 좋지 않은 인상만을 준다. 또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지만 ‘의도’는 그렇지는 않았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마지막에는 구체적인 ‘보상’(remedy) 방안을 담아야 한다. 입힌 피해를 보듬어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는지 밝히라는 뜻이다.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저의 사과를 받아주시겠습니까?”라며 정중하게 직접 용서를 구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과가 곧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있다. 잘못이 크고 상처가 깊을수록 그렇다. 이럴 때는 ‘분노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상대가 맺힌 감정을 충분히 풀어낼 수 있도록 화를 받아주어야 한다. 사과는 한 번으로 부족할 때도 있다. 거듭 사과하며 미안한 마음을 보인다면, 상대는 결국 나의 진심을 받아들일 테다.
또한 상대방과 내가 동등한 처지에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무안을 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망신당한 이에게만 사과를 조용히 건넬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게 했다면, 나 역시 똑같은 상황에서 용서를 구해야 한다. 공개적으로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사과를 전하라는 뜻이다.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실수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미덕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하지만 사과는 여전히 ‘용기가 필요한 일’로 여겨진다. 사과를 하면 내가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상대가 무리한 요구를 해와도 다 들어주어야 할 테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료 사고가 일어났을 때 병원들은 보통 ‘부인과 방어’(deny and defend)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국 미시간대학 병원은 ‘투명한 사건 자료 공개와 의료진의 적극적인 사과’를 내세웠다. 실수를 했을 때 곧바로 유감과 책임 인정, 대책 마련을 담은 사과를 건넨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법정까지 가는 분쟁은 드물어졌다. 이뿐만 아니라,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도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웃는 얼굴에 침 뱉기는 어렵다. 진심을 담은 사과에 끝까지 인상을 쓰고 있기란 쉽지 않다. 사과야말로 꼬인 관계를 푸는 확실한 열쇠인 셈이다.
큐레이터 신정아씨의 자전적 에세이 <4001>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그는 예일대 박사학위 위조 사건으로 한때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인물이다. 그는 여전히 ‘부절적한 방법으로 학위를 받기는 했지만 위조는 아니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나 보다.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그가 올곧지 못한 처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신정아 전 교수에게 무엇을 바랄까? ‘폭로’에 앞서 절절한 사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용서받지 못할 잘못은 없다. 그러나 뉘우치지 않는 자는 용서받을 길이 없다. 그가 유능한 미술 전문가로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진정 필요한 일부터 했으면 좋겠다.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부시의 말을 들은 이라크인들은 화를 가라앉혔을까? 분위기만 되레 더 흉흉해졌을 뿐이다. 이런 일은 우리 정치에서도 흔하게 벌어진다. 문제가 불거지면 “그런 일 절대 없다”며 버틴다. 며칠 뒤에는 “무슨 일이 있긴 했지만, 돈을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러다 몇 달 뒤에는 고개 숙이고 포토라인에 서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드물지 않다. ‘쿨’하게 사과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쉽게 만든다. “숨기면 작은 것도 커지고, 밝히면 큰 것도 작아진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호와 뇌과학자인 정재승 교수의 충고다. 그러나 사과를 제대로 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김호와 정재승 교수는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을 찬찬히 일러준다.
<쿨하게 사과하라> 김호·정재승 지음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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