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책아빠(cafe.daum.net/krbookv) 회원 정규재, 한재호, 신호건, 조범희, 김정호, 이해완, 이동선, 고제열, 황수대씨.
[함께하는 교육] 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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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매개로 모여 교육 수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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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매개로 모여 교육 수다도
“우리 딸은 평범한 아이거든요. 언어능력은 오히려 부족한 편이었는데 제가 무릎에 앉혀두고 책을 많이 읽어줬었죠. 근데 초등학교 4학년쯤 되니까 글쓰기 실력을 발휘하더라구요. 읽기, 쓰기에 특별한 소질이 없더라도 꾸준히 읽어주면 능력을 발휘하던데요.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읽은 아이는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알아서 찾더라구요.” 이해완(49)씨의 말에 나머지 아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호(38)씨도 책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저희는 아이가 넷인데 함께 쉴 만한 공간으로 서점을 자주 갔습니다. 도서관은 나이, 시간 등 제약이 있잖아요. 책을 많이 사는 건 아니지만 일단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공간인 서점을 자주 찾아 책과 친해지게 해줬죠.”
지난 3월18일. 대전 중앙로에 위치한 계룡문고에서는 아홉 명의 아빠가 모여 이렇게 수다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들은 ‘책읽어주는아빠모임’(이하 ‘책아빠’)의 회원들이다.
책아빠는 한 달에 한번 모여 책을 읽고, 책 그리고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모임이다. 2003년께 결성됐지만 중간에 모임을 쉬다가 2007년도부터 다시 시작했다. 모임 때마다 평균 10명의 아빠가 모인다. 3살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자녀를 둔 아빠들의 모임에서 아빠의 나이 그리고 직업은 모두 다르다. ‘책’을 매개로 ‘자녀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아빠’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빼고 모임에 특별한 규정은 없다. 함께 모여 읽는 책도 <까까똥꼬>(한울림어린이), <영국의 독서교육>(대교출판) 등 어린이 책, 어른 책 다양하다. 때로는 직접 그림책 읽어주는 모습을 서로한테 보여주기도 한다.
이 모임이 꾸려지게 된 데는 계룡문고 이동선(49)씨의 공이 컸다. 계룡문고를 찾는 학생들한테 ‘책 읽어주는 아저씨’, ‘왜요 아저씨’로 통하는 이씨는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딸한테 책을 읽어줬던 경험을 바탕으로 서점에서 다양한 책읽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다가 책아빠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지인의 소개로 모임에 참여한 아빠도 있지만 우연히 서점을 찾았다가 모집 공고를 보고 참여한 아빠도 있다. 이해완씨는 “계룡시에서 대전광역시까지 나들이를 왔다가 서점에서 모임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려면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이의 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세상이지만 책아빠들은 “학원비 벌어다 주는 게 아빠의 구실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자녀를 무릎에 앉혀두고 책을 읽어주면서 깨달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책아빠 회원들은 모두 자녀가 어릴 때 무릎에 앉혀두고 책을 직접 읽어준 경험이 있고, 현재도 그런 경험을 쌓아가는 아빠들이다. 4살짜리 쌍둥이 딸을 키우는 조범희(35)씨는 요즘 두 딸을 무릎에 앉혀두고 그림책을 읽어준다. “쌍둥이들한테 사랑을 똑같이 나눠줄 수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이런 모임에 참여하게 됐죠. 아직 어려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림책 읽어준 덕에 쌍둥이들이 또래 아이들보다 의사표현을 잘하는 것 같아요. 물이 필요할 때 그냥 ‘물’이 아니라 ‘아빠! 냉장고에서 물 꺼내주세요!’라고 정확하게 말하거든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신호건(44)씨는 “아들이 사실적인 정보를 담은 과학책 등을 참 좋아하는데 책에서 본 것을 직접 찾으러 가자는 얘기를 아빠인 나한테 많이 한다”며 “매일 ‘왜요? 왜요?’라고 질문하는 습관도 생겼다”고 했다. 흔히 그림책 읽기는 유아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것 같지만 중학생들한테 그림책을 읽어주는 아빠도 있다.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재호(43)씨는 다른 집 자녀한테도 그림책을 읽어준다. “중학생들은 사춘기라 그런지 표현도 잘 안 하고, 글을 써보라고 해도 한두 줄 쓰고 말거든요. 수업 전에 그림책을 읽어주면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어요. 책을 읽어주고 소감을 써보라고 하면 독창적인 소감도 많이 나옵니다. 특히 외국 그림책을 읽으면서는 그곳의 문화, 상식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죠.”
‘아빠표 책 읽어주기’만의 좋은 점도 있다. 책아빠의 한 회원은 “매시간 함께 있는 엄마가 읽어줄 때와 비교하면 집중력을 더 많이 발휘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소한 얘기지만 어른들도 매일 보는 사람이 하는 말은 흘려듣게 되잖아요. 아이들도 하루종일 일터 나갔다가 온 아빠가 읽어주면 귀에 쏙쏙 들어오나 봅니다. 집중을 참 잘해요.” 아빠가 읽어줄 때 더 반응이 좋은 책들도 있다. 책아빠의 고문인 황보태조(66)씨는 “반드시 아빠 영역, 엄마 영역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삼국지 같은 책들은 아무래도 아빠가 읽어줄 때 더 생동감 있게 받아들이더라”고 했다. 아빠가 책 읽어주기에 참여함으로써 전통적으로 엄마 영역으로 인식됐던 육아, 교육, 가사 등이 사실은 엄마, 아빠 모두의 영역이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심어줄 수 있다. 황보씨는 “엄마, 아빠가 함께 읽어주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가정 분위기도 형성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아빠가 책 읽어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아빠는 남성을 대표하는 역할모델도 될 수 있다. <영국의 독서교육>을 쓴 김은하씨는 “아빠가 책을 읽거나 읽어주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특히 남학생들한테 교육적 효과가 크다”고 했다. “아이가 축구선수를 역할모델로 삼는다고 해 보죠. 아이들은 그가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은 알지만 일상의 모습에 대해선 모르잖아요. 하지만 아빠의 경우는 일상의 모습까지 다 보여주는 인물이죠. 그의 일상에 책읽기가 들어 있는지, 안 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죠. 요즘 초등학교에 남자교사 수가 적다는 얘기들 많이 하잖아요. 남자 역할모델이 없는 때인데 이럴 때 아빠는 강력한 역할모델이죠. 특히 아이들한테 책읽기는 막연히 여성적인 활동이라는 인식도 있거든요. 아빠가 책을 열심히 읽어주면 이런 생각도 버릴 수 있습니다.” 아빠의 책 읽어주기가 아이한테만 좋은 효과를 주는 건 아니다. 황수대(46)씨는 “가정에서 아빠의 잃어버린 자리를 찾아주는 게 바로 책”이라고 했다. “제 나이 또래 아빠들 일상을 보세요. 아이와 관계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퇴근한 아빠는 거실에서 텔레비전 보다가 잠들고, 아이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죠. 어릴 때부터 함께 책을 읽어줘서 그런지 제 자녀들은 저한테 거리감이 없습니다. 서점에 가서도 ‘이거 어릴 때 아빠가 읽어줬던 책인데…’라고 말할 때가 있죠. 책을 매개로 공유하는 추억이 있는 겁니다. 아빠의 책읽기는 단순히 아이한테만 좋은 게 아닙니다. 가정에서 아빠의 구실을 찾아주고, 가정 전체를 화목하게 해주죠.” 황보태조씨는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준 덕분인지 커서는 내가 추천한 책에 호기심을 보여주더라”고 했다. “‘아빠가 그 책 읽었는데 참 좋더라’ 소리를 하면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더라구요. 제가 동기유발을 하는 사람이 된 거죠.” 전집은 뭐 샀니? 학습지 어떤 거 해? 학원은 어디로 갈까? 엄마들이 모이면 늘 하는 얘기다. 하지만 책아빠들은 책을 매개로 일상의 교육 경험들을 공유한다. 무한경쟁을 외치는 교육체제 속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아빠들은 용기도 얻고 간다. 정규재(40)씨는 모임을 통해 멘토로 삼고 싶은 선배 아빠도 만났다. “황수대 선생님의 경우는 저한테 일종의 역할모델입니다. 예전에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셨거든요. 이런 시대에 책이 왜 필요한지, 아이들한테 도서관이나 서점과 같은 공간은 왜 중요한지를 많이 말씀해주셨는데 그런 철학을 접하면서 제 생각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저도 획일화, 평준화된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거든요. 황 선생님 같은 선배를 만나면서 지금 아이들한테는 그런 교육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용기도 얻게 되더라구요.” 이동선씨는 “모임 구성원의 철학이나 가치관은 각기 다 다르지만 공통분모는 있다”고 했다. “혼자만 잘살거나 내 아이만 잘된다는 게 아니라 좋은 가치가 있을 때 그걸 함께 나누면서 여러 지혜를 나누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책아빠가 추천하는 아빠의 기본 필독서
‘아빠표 책 읽어주기’만의 좋은 점도 있다. 책아빠의 한 회원은 “매시간 함께 있는 엄마가 읽어줄 때와 비교하면 집중력을 더 많이 발휘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소한 얘기지만 어른들도 매일 보는 사람이 하는 말은 흘려듣게 되잖아요. 아이들도 하루종일 일터 나갔다가 온 아빠가 읽어주면 귀에 쏙쏙 들어오나 봅니다. 집중을 참 잘해요.” 아빠가 읽어줄 때 더 반응이 좋은 책들도 있다. 책아빠의 고문인 황보태조(66)씨는 “반드시 아빠 영역, 엄마 영역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삼국지 같은 책들은 아무래도 아빠가 읽어줄 때 더 생동감 있게 받아들이더라”고 했다. 아빠가 책 읽어주기에 참여함으로써 전통적으로 엄마 영역으로 인식됐던 육아, 교육, 가사 등이 사실은 엄마, 아빠 모두의 영역이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심어줄 수 있다. 황보씨는 “엄마, 아빠가 함께 읽어주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가정 분위기도 형성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아빠가 책 읽어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아빠는 남성을 대표하는 역할모델도 될 수 있다. <영국의 독서교육>을 쓴 김은하씨는 “아빠가 책을 읽거나 읽어주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특히 남학생들한테 교육적 효과가 크다”고 했다. “아이가 축구선수를 역할모델로 삼는다고 해 보죠. 아이들은 그가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은 알지만 일상의 모습에 대해선 모르잖아요. 하지만 아빠의 경우는 일상의 모습까지 다 보여주는 인물이죠. 그의 일상에 책읽기가 들어 있는지, 안 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죠. 요즘 초등학교에 남자교사 수가 적다는 얘기들 많이 하잖아요. 남자 역할모델이 없는 때인데 이럴 때 아빠는 강력한 역할모델이죠. 특히 아이들한테 책읽기는 막연히 여성적인 활동이라는 인식도 있거든요. 아빠가 책을 열심히 읽어주면 이런 생각도 버릴 수 있습니다.” 아빠의 책 읽어주기가 아이한테만 좋은 효과를 주는 건 아니다. 황수대(46)씨는 “가정에서 아빠의 잃어버린 자리를 찾아주는 게 바로 책”이라고 했다. “제 나이 또래 아빠들 일상을 보세요. 아이와 관계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퇴근한 아빠는 거실에서 텔레비전 보다가 잠들고, 아이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죠. 어릴 때부터 함께 책을 읽어줘서 그런지 제 자녀들은 저한테 거리감이 없습니다. 서점에 가서도 ‘이거 어릴 때 아빠가 읽어줬던 책인데…’라고 말할 때가 있죠. 책을 매개로 공유하는 추억이 있는 겁니다. 아빠의 책읽기는 단순히 아이한테만 좋은 게 아닙니다. 가정에서 아빠의 구실을 찾아주고, 가정 전체를 화목하게 해주죠.” 황보태조씨는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준 덕분인지 커서는 내가 추천한 책에 호기심을 보여주더라”고 했다. “‘아빠가 그 책 읽었는데 참 좋더라’ 소리를 하면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더라구요. 제가 동기유발을 하는 사람이 된 거죠.” 전집은 뭐 샀니? 학습지 어떤 거 해? 학원은 어디로 갈까? 엄마들이 모이면 늘 하는 얘기다. 하지만 책아빠들은 책을 매개로 일상의 교육 경험들을 공유한다. 무한경쟁을 외치는 교육체제 속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아빠들은 용기도 얻고 간다. 정규재(40)씨는 모임을 통해 멘토로 삼고 싶은 선배 아빠도 만났다. “황수대 선생님의 경우는 저한테 일종의 역할모델입니다. 예전에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셨거든요. 이런 시대에 책이 왜 필요한지, 아이들한테 도서관이나 서점과 같은 공간은 왜 중요한지를 많이 말씀해주셨는데 그런 철학을 접하면서 제 생각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저도 획일화, 평준화된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거든요. 황 선생님 같은 선배를 만나면서 지금 아이들한테는 그런 교육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용기도 얻게 되더라구요.” 이동선씨는 “모임 구성원의 철학이나 가치관은 각기 다 다르지만 공통분모는 있다”고 했다. “혼자만 잘살거나 내 아이만 잘된다는 게 아니라 좋은 가치가 있을 때 그걸 함께 나누면서 여러 지혜를 나누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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