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번째 카이스트 학생 박아무개(19·수리과학과 2학년)씨의 빈소가 마련된 인천 남구 주안동 ㄹ병원 장례식장에서 8일 오전 한 유가족이 허탈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인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서남표식 ‘무한경쟁 교육’
효율·속도·성과주의…
승자독식 이데올로기
카이스트에 직접 이식
대학을 ‘정글’로…절망 키워
효율·속도·성과주의…
승자독식 이데올로기
카이스트에 직접 이식
대학을 ‘정글’로…절망 키워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죽음 뒤에는 서남표 총장으로 대표되는 무한경쟁 사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요 몇년 동안 ‘서남표’란 이름은 ‘생존경쟁-효율-속도-성과주의’로 집약되는 한국 사회의 상징 기호였기 때문이다.
2006년 서남표 총장이 취임한 뒤부터 학교 안팎에선 ‘학문적 열정은 사라지고 살아남기 위한 경쟁만 남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서 총장은 자신의 적자생존 교육철학을 밀어붙였다. 이른바 ‘서남표식 개혁’엔 △성적에 따라 납부액을 달리하는 ‘차등적 등록금제’ △100% 영어강의 △‘테뉴어’(정년보장) 심사에서 교수 15명 탈락 등이 있다.
서 총장의 공세적 행보에선 미국에서 익힌 ‘경쟁지상주의적 사고체계’가 엿보인다. 고등학교 2학년 때(1954년) 미국으로 이민간 그는 52년 동안 거주하며 미국식 개인주의와 경쟁체제의 효율성을 신념화한 것으로 보인다. 서 총장은 매사추세츠공대(MIT), 카네기멜런대 등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매사추세츠공대 학과장과 미 국립과학재단 부총재를 맡은 바 있다. 그는 첫번째 자살 학생(1월8일)이 나온 뒤인 1월29일 언론 인터뷰에서조차 “세상에 압력 안 받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 차등적 등록금제를 폐지한다고 (자살이) 해결되겠냐”고 했다. 네번째 학생이 자살하기 이틀 전에도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있는 일류대학의 경우 개교 이래 학생들의 자살 사건은 계속 있어왔다 …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는 없다 … 미래의 성공을 위해 지금의 실패와 좌절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글을 학교 누리집에 올렸다.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은 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서 총장이 카이스트 부임 뒤 학생 규모를 칼텍(캘리포니아공대)처럼 키우겠다고 하는 등 확장 기조로 갔다”며 “국민이 세금 내서 카이스트를 키운 것은 국가 차원에서 과학인재를 키우자는 것이었는데 서 총장은 외형에만 치중해 왔다”고 비판했다. 정진상 경상대 교수도 “성적에 등록금 액수까지 연계시켜 학생들에게 학문적 자율성을 빼앗는 것은, 넓은 시야로 보면 학문 발전 전체를 말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서남표란 상징 속엔 서남표의 신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서 총장의 학교운영 방식은 ‘승자독식’이란 한국 사회 전체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란 얘기이다. 연쇄 자살이 벌어지기까진 서 총장의 ‘업적’을 상찬하는 분위기가 사회적 대세였다. <조선일보>는 ‘카이스트 확 바꾸는 서남표 총장’(2006년 9월19일) 등의 기사를 여러차례 실으며 ‘서남표식 개혁’을 적극 옹호했다. 지난해 그의 연임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동아일보>는 “서남표 총장은 철밥통 대학사회에 개혁을 몰고 왔다”(6월26일 사설)고 주장했다.
박거용 상명대 교수는 “서 총장의 그릇된 신념뿐 아니라 언론과 우리 사회의 욕망이 한데 얽혀 학생들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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