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김택현 옮김/까치
<역사란 무엇인가>는 1961년 출판되자마자 역사학도뿐만 아니라 현대 지식인의 필독서가 됐다. 저자 에드워드 핼릿 카는 1961년부터 20년간 영국 외무부 공무원으로 근무했으며, 이후 <더 타임스> 부편집인, 옥스퍼드대학 정치학 교수를 지내는 등 이력이 다양하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랑케의 실증주의 사관을 비판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말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마지막에 있다. 카는 “역사는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한 사람들이 아닌 기존 질서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사람들에 의해 진보했다”고 썼다. 카는 책 곳곳에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했고 공감을 표했다. 이 때문에 <역사란 무엇인가>는 군사독재 시절 한국에서는 금서로 묶이기도 했다.
풀무질
질문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무엇일까?
답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아돌프 히틀러(1889~1945)의 사악함 때문이다.
이런 질문과 답변은 흔하다.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한 개인의 성격이나 욕망 탓으로 돌린다. 그런데 1914년 이전 100년 동안에는 국지적인 소규모 전쟁만 있었으나, 이후 두 차례의 거대한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만약 19세기의 마지막 75년 동안에 비해 20세기의 처음 50년 동안에 전쟁을 원했던 개인들이 더 많았다고 주장한다면? 1929년 대공황도 어떤 개인이 일으키려고 했다거나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면? 이런 논리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인의 천재성을 역사의 창조력으로 간주하려는 욕망은 역사의식의 원시적인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과거의 업적물에다 그것을 이룩했다고 생각되는 으뜸가는 영웅의 이름을 붙이기 좋아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서사시를 호메로스라고 불리는 어느 음유시인의 업적으로, 그들의 법률과 제도는 리쿠르고스(기원전 9세기 전설상의 인물, 스파르타의 법제를 만들었다고 함)나 솔론(기원전 630?~560?)이라는 사람의 업적으로 돌렸다.
이런 이론은 사회가 더 단순했던, 그리고 공적인 일들을 소수의 유명한 개인들이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그럴듯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더욱 복잡한 사회에 대해서는 들어맞지 않는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혁명은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의 어리석음 때문에 발생했다거나, 칭기즈칸과 히틀러를 ‘나쁜 인간들’이라고 비난하거나, 볼셰비키 혁명의 사회적 원인을 연구하기보다는 당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멍청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이들의 역사의식 수준에 불과하다.
역사는 숫자의 문제다
역사상 존재했던 인간을 개인으로 보는 견해는 인간을 집단의 성원으로 보는 견해보다 다소간 잘못된 정도가 아니다. 심각한 문제는 개인과 집단을 분리하려는 태도다. 개인은 당연히 한 사회의 혹은 하나-그 하나를 집단·계급·종족·민족 등으로 부르건, 아니면 그 밖의 무엇으로 부르건 상관없이-이상의 사회의 성원이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전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은, 소유하고 싸우는 것은 오히려 인간, 즉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이다.”
문제는 현실의 살아 있는 이 인간이 집단으로부터 고립된 ‘순수한 개인’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우선 역사란 상당한 정도까지 숫자의 문제다. ‘역사란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라고 했던 토머스 칼라일(1795~1881)은 프랑스 혁명을 분석하면서 “2500만명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굶주림과 헐벗음과 악몽 같은 억압이 프랑스 혁명의 주요한 동인이었다”며 “어떤 나라에서든지 그와 비슷한 모든 혁명의 경우에는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레닌은 “정치는 대중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수천명이 있는 곳이 아니라 수백만명이 있는 곳, 그곳이 진정한 정치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칼라일과 레닌이 말한 수백만은 수백만의 개인들이었다. 거기에는 비인격적인 것이란 전혀 없다. 역사가는 불만을 품고 있는 한 사람의 농민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수백만명의 농민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역사가라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된다.
둘째, 사유방식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상가들도 인간의 개인적인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는 흔히 그 행위가 의도하거나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헤겔의 ‘이성의 간계’가 말하고 있는 것은 개인 스스로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그 보이지 않는 손이나 이성을 위해서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대에 저항했던 니체도 시대의 산물이다
자기가 살고 있던 시대나 국가·사회에 대해 니체보다 더 격렬하게 반항했던 인물은 없다. 그러나 니체는 유럽 사회, 좀더 특수하게는 독일 사회의 직접적인 산물로, 중국이나 페루에서는 발생할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이 개인으로 표현되었던 유럽의 사회적 힘, 특히 독일의 사회적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는 그가 죽은 지 한 세대 후의 사람들에게 더욱 분명해졌다. 그래서 니체는 그 자신의 세대보다도 후세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인물이 됐다.
위인은 한 사람의 개인이지만, 탁월한 개인이기 때문에 현저히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청교도 혁명을 일으킨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이나 17세기 프랑스의 유명 정치가 장 레츠 같은 천재도 오늘날이라면 눈에 띄지 않은 채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위인을 역사의 밖에 놓아둔 채 그들은 위대하기 때문에 역사에 간섭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그 시대의 위인이란 자기 시대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고, 그 의지가 무엇인지를 그 시대에 전달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행하는 것은 그의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실현한다.
마치질
다윈·마르크스·프로이트의 공통점
진화론의 찰스 다윈, 사회주의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사진), 인간 무의식을 발견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성향이 전혀 다르다. 그러나 이 셋은 ‘인간은 특별하다’는 수천년 고정관념을 깼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인간을 신의 피조물 또는 고상한 자기 의지의 산물로부터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다윈) 또는 경제적 제 관계(마르크스)나 무의식의 지배(프로이트)를 받는 존재로 ‘전락’시켰다.
따라서 다윈의 <종의 기원>(1859), 마르크스의 <자본론>(1867),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은 인류 역사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온 3대 저작으로 불린다.
“인간은 자기들의 생활의 사회적 생산에서 일정한·필연적인, 그들의 의지에서 독립된 제 관계, 즉 그들의 물질적 생산 제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생산 제 관계를 수용한다. 이런 생산 제 관계의 총체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즉 그 위에 일정한 법률적 및 정치적인 상부구조가 솟아오르며, 그리고 여기에 일정한 사회적 의식의 제 형태가 조응하는 현실적인 토대를 형성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은 사회적·정치적·정신적인 생활과정 일반을 제약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에 나오는 마르크스의 이 말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람의 주체적인 역할을 부정하고 생산력 발전의 도구로 전락시켜, 인간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도 인간을 무시한다. 인간은 원숭이가 진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와 헤겔 모두의 제자인 마르크스는 합리적인 자연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계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에드워드 핼릿 카에 따르면, 역사가에게 프로이트는 매우 중요하다. 프로이트는 사람들의 행동은 그들이 스스로 주장하거나 믿고 있는 행위의 동기를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는 오랜 환상의 관(棺)에 최후의 못질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시장 경제학도 마르크스의 경제법칙과 비슷한 면이 있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양조장·빵집 주인들이 관대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자유시장 경제학에 따르면 시장은 오직 자기 자신이나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에너지를 완벽하게 아울러서 사회적 조화를 만들어 낸다. 이 ‘이기적인 인간’은 ‘시장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은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 일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값싼 제품을 공급하는 선한 일을 하게 되는 건 시장의 법칙 때문이다. 이는 인간은 결국 경제적 제 관계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마르크스의 말과 비슷하다.
인터넷 시대가 와서 과거의 산업구조는 완전히 바뀌었으며, 국경 없는 세계가 열렸다고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도 마르크스의 생산력설과 비슷하다.
마르크스는 “맷돌은 중세 봉건영주의 세계를 만들고, 증기제분기는 근대 산업자본가의 세계를 만든다”고 설파했다. 생산도구가 바뀌면 생산력이 높아지고, 새로운 생산관계가 생겨나 다른 세계가 창출된다는 게 사적유물론이다. 이는 인터넷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통한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애덤 스미스를 본떠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지만, 그러나 역사에 남을 인류의 보편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일에서는 무의식적인 도구가 되다’고 말했다.
담금질
개인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을까
중국 고대 역사서를 보면 모든 문물제도를 황제(黃帝)가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황제는 신하인 창힐을 시켜 문자를 창조했으며, 처음으로 의관제도를 제정했고, 배와 수레를 만들었다. 황제는 오늘날 나침반과 비슷한 지남거를 만들어 치우와의 싸움에서 이겼으며, 숫자·음률·의학도 창조했다.
예를 들어 가장 오래된 중국 의학서의 이름은 <황제내경>이다. 전하는 바로는 황제와 그의 신하이며 천하의 명의인 기백(岐伯)이 의술을 놓고 벌인 토론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께의 진한(秦漢)시대에 황제의 이름을 거짓으로 내세워 지은 책으로 본다. 이는 중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개인의 천재성을 역사의 창조력으로 간주하려는 욕망은 역사의식의 원시적인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단군신화도 비슷하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고조선의 건국은 단군이라는 한 위대한 인물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사> 교과서는 단군신화를 “신석기 시대 말기에서 청동기 시대로 발전하는 시기에 사유 재산의 성립과 계급의 분화에 따라 지배자가 등장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 질서가 성립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환웅 부족은 주위의 다른 부족을 통합하고 지배해 갔다. 곰을 숭배하는 부족은 환웅 부족과 연합하여 고조선을 형성했으나,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은 연합에서 배제되었다. 단군은 제정일치 사회의 지배자로, 고조선의 성장과 더불어 주변의 부족을 통합하고 지배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조상을 하늘에 연결시켰다.”(고등학교 <국사> 33쪽)
<국사> 교과서는 단군신화를 몇몇 부족의 집단적 움직임의 반영으로 여길 뿐 단군이라는 실존 여부도 불분명한 한 개인의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대사 관련 기록은 남아 있는 게 얼마 없다. 빈틈이 많다. 따라서 역사가는 빈틈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채워야 한다. 가뜩이나 고대 기록은 인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역사가의 역사적 상상이 더해지니 고대사 역사 서술은 진실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힘들다.
벼리기 아래 논제를 읽고 글을 쓴 뒤, <아하! 한겨레> 누리집(www.ahahan.co.kr)에 올려 주세요. 잘 쓴 글을 선택해 ‘통합논술 세미나’에 실어 줍니다. 1. <삼국지>를 보면 주인공 조조가 인물 평가를 잘한다는 허소라는 사람을 찾아가 자신의 인물 됨됨이를 품평해 달라고 한다. 허소는 “당신은 치세(治世)의 능신(能臣),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이라고 말한다. 에드워드 핼릿 카가 설명한 ‘역사와 개인’에 대한 관점에서 허소의 말을 해석해 보시오. (600자) 2. 다음 2개의 글을 읽고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고대인들의 생각과 현대 신자유주의자들의 생각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써 보시오. (800자) (1) 그 이론(=영웅이 역사를 창조한다)은 사회가 보다 단순했던 그리고 공적인 일들을 소수의 유명한 개인들이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그럴듯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더욱 복잡한 사회에 대해서는 분명히 들어맞지 않는다. 따라서 19세기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한 것은 이 증대하는 복잡성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그러나 오래된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역사란 위인들의 전기다’라는 말은 여전히 존중받는 금언(金言)이었다. 어느 저명한 미국의 역사가가 자신의 동료들을 ‘역사적 인물들의 대량 학살자’라고 부르면서 그 인물들을 ‘사회경제적 힘의 꼭두각시들’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서 비난한 일이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2장 (2) 비록 절대군주에게서 부분적인 자금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콜럼버스가 의회 다수파의 명령에 따라 중국으로 가는 새 항로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아인슈타인과 보어, 셰익스피어, 밀턴, 파스테르나크, 휘트니, 매코믹과 에디슨, 헨리 포드, 제인 애덤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알베르트 슈바이처와 같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정부의 지시에 따라 인간에 대한 지식과 이해, 문학, 기술적 가능성 혹은 박애사업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아니다. 그들의 업적은 개인의 뛰어난 재능, 완강하게 고수한 소수 의견, 다양성과 차이를 용납한 사회 분위기의 합작품이었다. …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에 걸쳐 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전개되어온 지적 운동은 자유가 궁극적인 목표이고, 개인은 사회를 이루는 궁극적 실체임을 강조했다.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서론 3. ‘만약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를 주제로 글을 써 보시오. (1000자) 김태경 <아하! 한겨레>편집장/ ‘한겨레글쓰기연구소’ 연구위원 중학생의 공부하는 힘 1318클래스(1318class.com) 공동기획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김택현 옮김/까치
풀무질
나치 강제수용소에 남은 주인 없는 신발은 독일의 유대인 대량 살상을 소리 없이 은유한다. 워크룸프레스 제공
마치질
다윈·마르크스·프로이트의 공통점
카를 마르크스
담금질
개인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을까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사직단 단군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모습. 이종찬 선임기자
벼리기 아래 논제를 읽고 글을 쓴 뒤, <아하! 한겨레> 누리집(www.ahahan.co.kr)에 올려 주세요. 잘 쓴 글을 선택해 ‘통합논술 세미나’에 실어 줍니다. 1. <삼국지>를 보면 주인공 조조가 인물 평가를 잘한다는 허소라는 사람을 찾아가 자신의 인물 됨됨이를 품평해 달라고 한다. 허소는 “당신은 치세(治世)의 능신(能臣),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이라고 말한다. 에드워드 핼릿 카가 설명한 ‘역사와 개인’에 대한 관점에서 허소의 말을 해석해 보시오. (600자) 2. 다음 2개의 글을 읽고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고대인들의 생각과 현대 신자유주의자들의 생각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써 보시오. (800자) (1) 그 이론(=영웅이 역사를 창조한다)은 사회가 보다 단순했던 그리고 공적인 일들을 소수의 유명한 개인들이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그럴듯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더욱 복잡한 사회에 대해서는 분명히 들어맞지 않는다. 따라서 19세기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한 것은 이 증대하는 복잡성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그러나 오래된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역사란 위인들의 전기다’라는 말은 여전히 존중받는 금언(金言)이었다. 어느 저명한 미국의 역사가가 자신의 동료들을 ‘역사적 인물들의 대량 학살자’라고 부르면서 그 인물들을 ‘사회경제적 힘의 꼭두각시들’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서 비난한 일이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2장 (2) 비록 절대군주에게서 부분적인 자금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콜럼버스가 의회 다수파의 명령에 따라 중국으로 가는 새 항로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아인슈타인과 보어, 셰익스피어, 밀턴, 파스테르나크, 휘트니, 매코믹과 에디슨, 헨리 포드, 제인 애덤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알베르트 슈바이처와 같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정부의 지시에 따라 인간에 대한 지식과 이해, 문학, 기술적 가능성 혹은 박애사업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아니다. 그들의 업적은 개인의 뛰어난 재능, 완강하게 고수한 소수 의견, 다양성과 차이를 용납한 사회 분위기의 합작품이었다. …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에 걸쳐 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전개되어온 지적 운동은 자유가 궁극적인 목표이고, 개인은 사회를 이루는 궁극적 실체임을 강조했다.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서론 3. ‘만약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를 주제로 글을 써 보시오. (1000자) 김태경 <아하! 한겨레>편집장/ ‘한겨레글쓰기연구소’ 연구위원 중학생의 공부하는 힘 1318클래스(1318class.com)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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