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난이도 수준 고2~고3]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
30. 마음의 시계 - ‘자발성 의존’을 넘어서는 정신력의 힘
<마음의 시계>
엘렌 랭어 지음 변용란 옮김/사이언스북스 앞으로는 피검사로 몇살까지 살지를 알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영국 <인디펜던트>의 보도를 보면, 염색체 맨 끝의 길이를 재서 예상 수명을 알아내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검사비도 700달러 남짓 정도밖에 안 되리라는 전망이다. 의학의 발전은 놀랍다. 내 건강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과학적’ 자료들은 차고 넘친다. 지금도 의사의 충고대로만 살면 병 없이 살아갈 듯싶다. 조만간 완벽한 ‘건강 매뉴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내 몸 상태를 철저하게 점검해서, 가장 적절한 생활패턴을 일러주는 가이드북 말이다.
그러나 심리학자 엘렌 랭어는 의학의 발전이 되레 우리를 부실하게 만들 수 있다고 걱정한다. 랭어는 그 근거로, ‘자발성 의존’(self-induced dependence)을 보여주는 여러 실험 결과를 들이댄다. 자발성 의존이란 과학적 검사 결과에 의심 없이 매달리는 태도를 말한다.
어떤 사람을 “누구의 ‘조수’ 아무개입니다”라고 소개하면 어떨까? 실제로 그는 아주 뛰어난 머리와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조수’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그는 딱 심부름꾼 정도 수준의 인간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의 지능과 행동 또한 조수에 어울리는 정도로 낮아지곤 한다.
엘렌 랭어는 또다른 사례를 보여준다. 그는 수학을 잘하는 아시아계 여성들을 대상으로 심리 실험을 했다. 그는 여인들에게 “당신은 아시아인이다”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어떤 때는 “당신은 여자다”라는 생각을 분명하게 하게 한 뒤 수학 시험을 치르게 했다. 이 두 경우에 차이는 얼마나 났을까?
자신이 아시아인이라고 여겼을 때, 여인들은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보통 아시아인들은 수학을 잘한다고 알려져 있는 덕분이다. 반면 여자라는 점을 강조했을 때는 수학 실력이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수학을 못한다고 믿어지지 않던가. 꼬리표를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실력은 춤을 춘다. 랭어에 따르면, 이런 모습은 건강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암’이나 ‘에이즈’라고 진단받았다고 해보자. 그때부터 사람들은 자신을 암 환자나 에이즈 보균자로 여긴다. 질병 진단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던져버리는 이들도 있다. 불치병이라는 소리를 들은 뒤 급하게 병세가 나빠지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 드물지 않게 있다. 랭어는 진단이 곧 운명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의학적 판단과 상관없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질병을 이겨내는 사례도 없지 않다. 자신을 믿지 않고 의학의 힘에 완전히 기대버리는 ‘자발성 의존’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다. 1979년 그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counterclockwise)라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대상은 노인 요양원에서 지내던 70~80대 남자들이었다. 랭어는 주변을 1959년처럼 꾸며놓았다. 그때 유행했던 음악을 틀고, 인테리어나 생활 소품도 1950년대와 똑같이 꾸며놓는 식이다. 시계를 20여년 뒤로 돌려놓은 듯한 세상에서 노인들은 일주일을 살았다. 이때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다시 젊어진 듯 보였다. 실험 전, 노인 중에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만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자 노인들은 자기 스스로 일을 해내기 시작했다. 혼자서 짐을 옮기고 주변 정리를 했다. 자기주장도 많아졌고, 심지어 실험 마지막 날에는 미식축구 공을 패스하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랭어는 마음가짐에 따라 우리의 건강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스스로 자신을 어떻다고 보는지에 따라 건강 상태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는 노인들이 있었던 요양원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요양원에서는 모든 문이 열려 있었다. 늙은이들을 홀로 두면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주변에는 흰 가운을 입은 도우미들이 곳곳에 있었다. 노인들은 보호를 받으며 정해진 하루 일과를 따랐다. 한마디로 자신이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늙은이임을 받아들이게 하는 분위기다. ‘점화효과’란, 낱말이나 분위기가 생각의 흐름을 이끄는 모습을 뜻한다. 예컨대 건강에 대한 설명을 들은 사람은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기가 쉽다. 유니폼을 입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할 가능성이 높다. 요양원은 노인들을 스스로 약자라고 여기게끔 점화효과를 일으켰던 셈이다. 그렇다면 의학적인 진단은 우리에게 어떤 점화효과를 낳을까? 과학은 ‘평균’을 이야기할 뿐이다. 감기만 해도 그렇다. 세상에 똑같은 감기는 없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도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의사가 “거기는 아플 리가 없는데요”라고 말하면, 마치 내가 잘못 느끼고 있는 듯한 걱정이 밀려든다. 나의 느낌보다는 ‘평균적인 인간’을 상대로 만들어진 진단을 더 믿는 모양새다. 과학이 대세가 된 세상이다. ‘과학적’인 심리검사 수치는 내가 누구인지를 밝혀주곤 한다. 세상은 내 몸에 대한 나의 느낌보다는, 건강 검진표에 적힌 수치가 나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려준다고 여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처방’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심지어 내가 어떤 심성을 지녔는지, 무엇에 적성이 있는지도 과학적인 검사 결과에 따라 판결이 내려지곤 한다. ‘정신력’은 못살던 시절에나 외쳤던 덜떨어진 소리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사회는 과학적인 진단과 해결 노력을 더 높이 사는 분위기다. 하지만 인류의 발전을 이끌었던 것은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이었다. 과학의 시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정신문화’의 소중함을 되짚어봐야 할 때다.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엘렌 랭어 지음 변용란 옮김/사이언스북스 앞으로는 피검사로 몇살까지 살지를 알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영국 <인디펜던트>의 보도를 보면, 염색체 맨 끝의 길이를 재서 예상 수명을 알아내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검사비도 700달러 남짓 정도밖에 안 되리라는 전망이다. 의학의 발전은 놀랍다. 내 건강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과학적’ 자료들은 차고 넘친다. 지금도 의사의 충고대로만 살면 병 없이 살아갈 듯싶다. 조만간 완벽한 ‘건강 매뉴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내 몸 상태를 철저하게 점검해서, 가장 적절한 생활패턴을 일러주는 가이드북 말이다.
<마음의 시계>
자신이 아시아인이라고 여겼을 때, 여인들은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보통 아시아인들은 수학을 잘한다고 알려져 있는 덕분이다. 반면 여자라는 점을 강조했을 때는 수학 실력이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수학을 못한다고 믿어지지 않던가. 꼬리표를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실력은 춤을 춘다. 랭어에 따르면, 이런 모습은 건강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암’이나 ‘에이즈’라고 진단받았다고 해보자. 그때부터 사람들은 자신을 암 환자나 에이즈 보균자로 여긴다. 질병 진단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던져버리는 이들도 있다. 불치병이라는 소리를 들은 뒤 급하게 병세가 나빠지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 드물지 않게 있다. 랭어는 진단이 곧 운명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의학적 판단과 상관없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질병을 이겨내는 사례도 없지 않다. 자신을 믿지 않고 의학의 힘에 완전히 기대버리는 ‘자발성 의존’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다. 1979년 그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counterclockwise)라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대상은 노인 요양원에서 지내던 70~80대 남자들이었다. 랭어는 주변을 1959년처럼 꾸며놓았다. 그때 유행했던 음악을 틀고, 인테리어나 생활 소품도 1950년대와 똑같이 꾸며놓는 식이다. 시계를 20여년 뒤로 돌려놓은 듯한 세상에서 노인들은 일주일을 살았다. 이때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다시 젊어진 듯 보였다. 실험 전, 노인 중에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만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자 노인들은 자기 스스로 일을 해내기 시작했다. 혼자서 짐을 옮기고 주변 정리를 했다. 자기주장도 많아졌고, 심지어 실험 마지막 날에는 미식축구 공을 패스하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랭어는 마음가짐에 따라 우리의 건강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스스로 자신을 어떻다고 보는지에 따라 건강 상태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는 노인들이 있었던 요양원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요양원에서는 모든 문이 열려 있었다. 늙은이들을 홀로 두면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주변에는 흰 가운을 입은 도우미들이 곳곳에 있었다. 노인들은 보호를 받으며 정해진 하루 일과를 따랐다. 한마디로 자신이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늙은이임을 받아들이게 하는 분위기다. ‘점화효과’란, 낱말이나 분위기가 생각의 흐름을 이끄는 모습을 뜻한다. 예컨대 건강에 대한 설명을 들은 사람은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기가 쉽다. 유니폼을 입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할 가능성이 높다. 요양원은 노인들을 스스로 약자라고 여기게끔 점화효과를 일으켰던 셈이다. 그렇다면 의학적인 진단은 우리에게 어떤 점화효과를 낳을까? 과학은 ‘평균’을 이야기할 뿐이다. 감기만 해도 그렇다. 세상에 똑같은 감기는 없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도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의사가 “거기는 아플 리가 없는데요”라고 말하면, 마치 내가 잘못 느끼고 있는 듯한 걱정이 밀려든다. 나의 느낌보다는 ‘평균적인 인간’을 상대로 만들어진 진단을 더 믿는 모양새다. 과학이 대세가 된 세상이다. ‘과학적’인 심리검사 수치는 내가 누구인지를 밝혀주곤 한다. 세상은 내 몸에 대한 나의 느낌보다는, 건강 검진표에 적힌 수치가 나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려준다고 여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처방’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심지어 내가 어떤 심성을 지녔는지, 무엇에 적성이 있는지도 과학적인 검사 결과에 따라 판결이 내려지곤 한다. ‘정신력’은 못살던 시절에나 외쳤던 덜떨어진 소리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사회는 과학적인 진단과 해결 노력을 더 높이 사는 분위기다. 하지만 인류의 발전을 이끌었던 것은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이었다. 과학의 시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정신문화’의 소중함을 되짚어봐야 할 때다.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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