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대통령 부인 육영수씨가 저격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터진 이후 유신정권은 전국적으로 반공궐기대회를 열어 국민을 총동원하다시피 했다. 필자는 이 무렵 전남지역 교직원 궐기대회에서 대표 낭독자로 뽑혔으나 고사하기도 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17
1972년 유신헌법 통과 이후 국민들에게 침묵과 굴종을 강요하는 정부의 탄압은 계속되었다. 긴급조치 1, 2호가 선포되며 날로 독재의 서슬이 엄혹했던 74년, 전남여고생 1명을 포함해 남녀 각각 2명씩 광주시내 고교생 대표 4명이 의논할 일이 있다며 학교로 찾아왔다. 고교 독서클럽 지도교사인 문병란 선생님(시인)이 당국의 압력으로 소환당해 지도교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회원 학생들끼리 의논한 끝에 나한테 요청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독서클럽에 한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맡겠냐” 했더니 “우리끼리 클럽을 꾸려가기 어려워 자칫 해체를 해야 할 상황이니 지도교사를 꼭 맡아달라”고 간청을 했다. 사실은 학생들이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강당에서 독서보고대회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 행사를 못하게 하려고 당국이 압박을 한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답을 하기 어렵고 내일이나 모레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는 학생들을 돌려보낸 나는 고심 끝에 맡기로 결심했다.
예정대로 독서대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행사 직전 일요일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학교로 나와 달라는 전화가 왔다. 교장실로 갔더니 독서클럽 지도를 맡았느냐고 묻더니 “지도교사를 그만하시는 게 좋겠다. (정보)기관에서 정해숙 선생님을 막으라는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교장 선생님, 학생들과 한 약속입니다. 나름 생각해보고 수락한 일입니다. 지금은 독서대회 준비를 하고 있고 별다른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안 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지도교사로서….” 나는 그 자리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을 했고, 교장은 계속 “그래도…”를 연발하며 계속 사퇴를 종용했다. 윗선의 압력과 내 소신 사이에서 난처해하던 교장 선생님의 얼굴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회날, 나는 지도교사로서 잘해주리라 믿는다는 격려와 주의의 말을 했고, 학생들은 독서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하며 무난히 행사를 마쳤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문제교사’로 찍혀 유신정권의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그해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대통령 부인 육영수씨 피살 사건이 터진 이후 반공궐기대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전남지역 교직원들도 광주고 운동장에 모여 반공궐기대회를 열기로 했다. 당시 교원단체로는 교총이 유일무이해서 초·중·고 교사뿐 아니라 교수들도 회원으로 가입해 있었다. 그날 출근해 도서관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교감 선생님이 불렀다. “오늘 아침에 임원회의를 했는데 오후에 있을 반공궐기대회에서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 낭독을 정해숙 선생님이 하도록 논의가 되었습니다.” 전남여고에 여교사가 많으니 전남 대표로 메시지를 낭독할 교사를 추천하라는 교육청의 전첩이 왔다는 것이었다. “(치마 차림인 나를 보고) 바지로 갈아입었으면 좋겠고, 낭독할 내용은 교육청에서 준비하여 보내올 테니까 읽기만 하면 됩니다. 시간 되면 기관에서 교문 앞으로 차가 오니까 복장만 갖추고 기다렸다가 행사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바지로 갈아입기 위해 집에 다녀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나갈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학교에서 교사를 대표해 나를 추천해준 것은 고맙지만 전남지역 교총 회원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제안을 포함한 메시지이니 틀림없이 ‘존경하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라는 내용으로 시작할 터였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20대 중반 이후로 나는 그때까지 ‘박정희’라는 이름 뒤에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단 한번도 붙여서 불러본 적이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는 왔지만 나는 다시 교감실을 찾아가서 못하겠다고 얘기했다. “아니, 왜요? 교장 선생님은 정 선생님이 하는 것으로 알고 회의에 가셨습니다” 하며 난감해하던 교감 선생님은 잠시 뒤 내게 다른 선생님을 추천하라고 했다. 결국 교련 선생님이 대신 성명서를 낭독했다.
5·16 쿠데타 자체를 부당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교사들을 유신헌법 선전요원으로 동원할 때도 참여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도저히 그 자리에 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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