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식이 종말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33. 과식의 종말 - 과식은 사회 탓? 우리가 음식 그릇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
<과식의 종말>
데이비드 A. 케슬러 지음 이순영 옮김/문예출판사 1980년대 들어 뚱뚱한 사람이 갑자기 늘어났단다. 사실, 무작정 먹어대기도 쉽지 않다. 배가 부르면 입맛이 사라지는 탓이다. 그러나 요새는 하염없는 먹성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배가 남산만해져서도 사람들은 먹고 또 먹는다. 주전부리를 입에 달고 있기에, 허기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 데이비드 A. 케슬러는 그 이유를 간단하게 풀어준다. 식품 회사들은 ‘음식 중독’을 일으키는 세 가지 열쇠를 찾아냈다. 설탕, 소금, 지방이 그것이다. 달달하고 짭짤하면서도 부드러운 풍미(風味)가 있는 음식은 배불러도 계속 먹게 된다. 잔뜩 먹고도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에 또 손이 가게 되는 이유다.
음식은 마약과도 같다. 마음을 달래주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구실도 한다는 의미다. 설탕, 소금, 지방은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곤 한다. 이 셋을 잔뜩 먹으면 잠깐 동안은 행복한 느낌에 젖어들게 된다. 이렇듯 사람들은 음식에 ‘중독’된다. 식품 회사들은 음식 그릇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이 반갑기만 하다. 대식가들이 늘어날수록 회사들은 더 많은 수입을 챙길 테다. 그래서 음식 회사들은 먹어도 또 먹고 싶은 요리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닭 날개를 기름에 튀긴 음식인 버펄로 윙을 예로 들어 보자. 여기에는 당연히 지방이 담뿍 들어 있다. 대개는 닭 날개 생산 공장에서 한번 튀겨진 식재료를, 레스토랑에서 다시 튀긴다. 이것을 사람들은 소금과 당분이 담뿍 들어간 디핑 소스에 찍어 먹는다. ‘지방 위에 지방 위에 소금 위에’ 설탕을 찍어 먹는 꼴이다. 채소 요리도 별다르지 않다. 기름에 튀긴 채소에는 물기 대신 지방이 가득 차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채식을 하더라도 지방만 잔뜩 먹는 셈이다. 게다가 식품 회사들은 음식을 씹기 좋게 내어놓는다. 요리는 대개 한입에 쏙 넣을 만한 크기로 나온다. 고기는 충분히 다져져서 씹을 필요도 별로 없다. 지방이 충분히 들어 있는 음식은 말 그대로 입에서 ‘녹는다.’ 꿀꺽 넘어갈 때의 식감(食感)도 부드럽다. 이렇게 조리된 요리는 과식하기 쉽다. 포만감을 느끼려면 식사 시간이 길어야 한다. 그래야 먹는 도중에 배부른 느낌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술 잘 들어가는 음식은 배가 찼음을 느낄 만한 짬을 놓치게 한다. 숨쉬기도 힘든 지경이 되어서야, 자신이 포식했음을 겨우 깨닫게 된다. 그뿐 아니다. 식품 회사는 끊임없이 식욕을 자극한다. 요즘은 어디 가나 음식 광고 일색이다. 거리에도 달곰하고 짭조름하며 기름진 음식 냄새가 가실 날 없다. 배고프지 않아도 음식이 당기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더구나 음식점들은 그릇의 크기를 점점 키운다. 그러면 식사량도 덩달아 늘어난다. 극장에서 팝콘을 커다란 용기에 담아 파는 이유다. 대식(大食)은 시대의 조류가 됐다. 과연 과식과 비만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케슬러는 몇 가지 비법을 일러준다. 동물은 설탕, 소금, 지방에 맞설 수 없다. 본능적으로 이 셋에 끌리는 탓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자신이 음식에 끌리고 있음을 분명하게 ‘의식’하면, 그리고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유혹에 맞설 수 있다. 과연 내가 배가 고파서 음식이 당기는지를 스스로 되물어보라. 아니라면 단호하게 음식에서 물러서야 한다. 유혹을 뿌리칠 순간은 음식과 마주한 첫 순간뿐이다. 맛만 보자며 몇 점 집어든 순간, 이내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후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다. 둘째는 ‘경쟁 행동’을 만들어야 한다. 자꾸만 냉장고 문을 열게 되는가? 그렇다면 아예 냉장고 곁에 가지 않는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너무 많은 음식이 나왔는가? 그러면 처음부터 음식을 덜어내자. 천천히 먹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속도를 낮추고 덜어내라.” 식탐에서 벗어나려면 이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셋째는 ‘경쟁 생각’을 떠올리는 일이다. “몇 점 집어 먹겠다고? 보나 마나 끝까지 먹게 될 텐데 뭘.” 이런 식으로 과거에 실패한 경험을 떠올린다. 그리고 허겁지겁 먹고 났을 때 늘어날 뱃살과 후회를 되새겨본다. 음식에 혹하던 마음이 싹 가실 테다. 맛있는 음식에 입맛 다시기보다, “설탕과 소금, 지방이 잔뜩 들었군” 하며 이마를 찌푸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마지막은 ‘지지자’를 얻는 작업이다. 과식과의 싸움은 평생 계속된다. 폭식하는 친구 곁에서 절제 있는 식생활을 꾸리기란 어렵다. 건강한 식습관을 함께할 동료를 많이 만드는 게 좋겠다.
케슬러는 사회적인 해결책도 함께 내놓는다. 그는 식당 메뉴판에 칼로리와 설탕, 소금, 지방을 얼마나 썼는지 적어놓게 하자고 주장한다. 주문할 음식이 몸에 좋은지, 해로운지를 손님들에게 확인하도록 하자는 뜻이다. 매출이 떨어질 식당들은 알아서 칼로리 낮고 설탕과 소금, 지방을 덜 쓰면서도 맛있는 메뉴를 개발하려고 애쓸 것이다.
다큐멘터리 <트루맛쇼>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트루맛쇼>는 진짜 맛집보다는, 홍보에 애단 식당을 골라 소개하는 텔레비전 음식 프로그램들을 고발한다. 하지만 전파를 타고 싶어 안달하는 식당들만 욕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입맛은 이미 티브이 사기극에 놀아날 만큼 ‘저질’이 되어버렸다. 설탕, 소금, 지방에 길들여진 혀로 진짜 ‘맛집’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맛과 건강이 따로 노는 우리 시대의 식탁 풍경이 서글퍼지는 요즘이다.
>>시사브리핑: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돌풍지난 2일 <트루맛쇼>가 개봉됐다. 6월5일까지 영화의 누적 관객은 1700명을 돌파했다. 상영관이 10곳에 불과하고 하루 1~4회 제한 상영을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좋은 성적이다. <트루맛쇼>는 김재환 감독이 “대박 식당을 위한 미디어 활용법을 실험하겠다”며 직접 식당을 차려 운영하고 1인칭 시점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텔레비전 맛집 정보 프로그램에 얽힌 방송사, 외주제작사, 식당 간 유착 관계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데이비드 A. 케슬러 지음 이순영 옮김/문예출판사 1980년대 들어 뚱뚱한 사람이 갑자기 늘어났단다. 사실, 무작정 먹어대기도 쉽지 않다. 배가 부르면 입맛이 사라지는 탓이다. 그러나 요새는 하염없는 먹성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배가 남산만해져서도 사람들은 먹고 또 먹는다. 주전부리를 입에 달고 있기에, 허기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 데이비드 A. 케슬러는 그 이유를 간단하게 풀어준다. 식품 회사들은 ‘음식 중독’을 일으키는 세 가지 열쇠를 찾아냈다. 설탕, 소금, 지방이 그것이다. 달달하고 짭짤하면서도 부드러운 풍미(風味)가 있는 음식은 배불러도 계속 먹게 된다. 잔뜩 먹고도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에 또 손이 가게 되는 이유다.
음식은 마약과도 같다. 마음을 달래주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구실도 한다는 의미다. 설탕, 소금, 지방은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곤 한다. 이 셋을 잔뜩 먹으면 잠깐 동안은 행복한 느낌에 젖어들게 된다. 이렇듯 사람들은 음식에 ‘중독’된다. 식품 회사들은 음식 그릇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이 반갑기만 하다. 대식가들이 늘어날수록 회사들은 더 많은 수입을 챙길 테다. 그래서 음식 회사들은 먹어도 또 먹고 싶은 요리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닭 날개를 기름에 튀긴 음식인 버펄로 윙을 예로 들어 보자. 여기에는 당연히 지방이 담뿍 들어 있다. 대개는 닭 날개 생산 공장에서 한번 튀겨진 식재료를, 레스토랑에서 다시 튀긴다. 이것을 사람들은 소금과 당분이 담뿍 들어간 디핑 소스에 찍어 먹는다. ‘지방 위에 지방 위에 소금 위에’ 설탕을 찍어 먹는 꼴이다. 채소 요리도 별다르지 않다. 기름에 튀긴 채소에는 물기 대신 지방이 가득 차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채식을 하더라도 지방만 잔뜩 먹는 셈이다. 게다가 식품 회사들은 음식을 씹기 좋게 내어놓는다. 요리는 대개 한입에 쏙 넣을 만한 크기로 나온다. 고기는 충분히 다져져서 씹을 필요도 별로 없다. 지방이 충분히 들어 있는 음식은 말 그대로 입에서 ‘녹는다.’ 꿀꺽 넘어갈 때의 식감(食感)도 부드럽다. 이렇게 조리된 요리는 과식하기 쉽다. 포만감을 느끼려면 식사 시간이 길어야 한다. 그래야 먹는 도중에 배부른 느낌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술 잘 들어가는 음식은 배가 찼음을 느낄 만한 짬을 놓치게 한다. 숨쉬기도 힘든 지경이 되어서야, 자신이 포식했음을 겨우 깨닫게 된다. 그뿐 아니다. 식품 회사는 끊임없이 식욕을 자극한다. 요즘은 어디 가나 음식 광고 일색이다. 거리에도 달곰하고 짭조름하며 기름진 음식 냄새가 가실 날 없다. 배고프지 않아도 음식이 당기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더구나 음식점들은 그릇의 크기를 점점 키운다. 그러면 식사량도 덩달아 늘어난다. 극장에서 팝콘을 커다란 용기에 담아 파는 이유다. 대식(大食)은 시대의 조류가 됐다. 과연 과식과 비만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케슬러는 몇 가지 비법을 일러준다. 동물은 설탕, 소금, 지방에 맞설 수 없다. 본능적으로 이 셋에 끌리는 탓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자신이 음식에 끌리고 있음을 분명하게 ‘의식’하면, 그리고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유혹에 맞설 수 있다. 과연 내가 배가 고파서 음식이 당기는지를 스스로 되물어보라. 아니라면 단호하게 음식에서 물러서야 한다. 유혹을 뿌리칠 순간은 음식과 마주한 첫 순간뿐이다. 맛만 보자며 몇 점 집어든 순간, 이내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후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다. 둘째는 ‘경쟁 행동’을 만들어야 한다. 자꾸만 냉장고 문을 열게 되는가? 그렇다면 아예 냉장고 곁에 가지 않는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너무 많은 음식이 나왔는가? 그러면 처음부터 음식을 덜어내자. 천천히 먹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속도를 낮추고 덜어내라.” 식탐에서 벗어나려면 이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셋째는 ‘경쟁 생각’을 떠올리는 일이다. “몇 점 집어 먹겠다고? 보나 마나 끝까지 먹게 될 텐데 뭘.” 이런 식으로 과거에 실패한 경험을 떠올린다. 그리고 허겁지겁 먹고 났을 때 늘어날 뱃살과 후회를 되새겨본다. 음식에 혹하던 마음이 싹 가실 테다. 맛있는 음식에 입맛 다시기보다, “설탕과 소금, 지방이 잔뜩 들었군” 하며 이마를 찌푸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마지막은 ‘지지자’를 얻는 작업이다. 과식과의 싸움은 평생 계속된다. 폭식하는 친구 곁에서 절제 있는 식생활을 꾸리기란 어렵다. 건강한 식습관을 함께할 동료를 많이 만드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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