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부터 종교학자이자 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총무를 지낸 김천배 선생님을 모시고 시작한 ‘바이블 스터디’ 모임은 80년 광주항쟁의 고통을 이겨내는 데 큰힘이 됐다. 83년 3월 모임 때 찍은 사진. 앞줄 왼쪽 세번째가 필자, 다섯번째가 김천배 선생.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21
1979년 여름 첫 유럽여행 때 들른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에서는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와 마찬가지로 강대국의 문화재 약탈에 씁쓸함을 느꼈지만 그나마 보관과 보존이 잘돼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콩코르드 광장에서는 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피의 항쟁’의 역사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특히 파리에서 가장 놀라고 큰 감동을 받은 선진 문물은 지하철이었다. 우리 숙소를 방문한 현지 한국대사관 직원이 지하철로 함께 이동하면서 안내를 해주었다. 그가 “지하철 바퀴가 무엇으로 된 줄 아느냐”고 묻기에 우리는 당연히 쇠로 됐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의외의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특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는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다른 지역까지는 아직 보급되지 않았고 파리에서만 운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돈을 많이 들여 운행할 필요가 있느냐?”는 한 일행의 질문에 대사관 직원은 “쇠바퀴의 진동과 소음으로부터 시민들의 뇌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해줬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센강이 그때까지 한번도 범람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한달에 한두번씩 차로 강의 밑바닥을 청소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비나 물살에 의해 밀려온 흙이나 모래가 쌓여 강바닥이 높아지면 그 모래를 바다까지 밀어내는 준설작업을 정기적으로 해서 강물의 깊이가 항상 15m가 되도록 유지하기 때문에 강이 범람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 설명을 듣자, 문학소녀 시절 <장발장>에서 하수구를 통해 도망가는 장면을 읽으며 ‘무슨 하수구가 사람이 뛰어서 도망다닐 정도로 넓은가’ 하고 품었던 의문도 함께 풀렸다.
학교에서 늘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라고 배웠듯이 직접 방문해 보니 호텔 장식 하나까지 모든 게 예술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지하철 바퀴라든지 에펠탑 그리고 센강을 보면서는 ‘아, 프랑스는 과학의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더해졌다. 지하철 바퀴 하나까지도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 정신이 내겐 감동과 함께 생각 거리를 던져주었다.
유럽 방문에서 돌아오는 길에 홍콩에도 들렀는데, 학교마다 운동장이 없어 체육수업을 가까운 체육관이나 공설운동장을 빌려 한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또 홍콩의 카이탁 공항에서 도심까지는 일본이 시공해 만든 해저터널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도 당시에는 굉장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돌아온 뒤 나는 사진에 담아온 유럽의 여러 도서관과 도시문화들을 슬라이드로 제작해 수업시간에 활용했고 다른 선생님들도 활용하도록 공유했다. 유신 말기, 외국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을 뿐 아니라 밤에는 통행금지 시간이 있어 야간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던 때였다. 국민의 알 권리는 무시당한 채 정부에 유리한 내용만 일방적으로 보도됐고, 언론 탄압으로 해직기자들이 속출했다. ‘우물 안 개구리’를 강요당하던 상황에서 드물게 직접 보고 들은 유럽의 문화 현장을 자료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참으로 기쁘고 보람을 느꼈다.
그해 도서관대회에 참가하기 직전부터 나는 교사와 직장인 15명과 함께 김천배 선생님을 모시고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 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총무를 지낸 김 선생님은 일본 도쿄대와 미국 예일대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공부했고, 광주와이엠시에이에서도 많은 활동을 한 훌륭한 인품의 사상가였다. 우리는 월요일 저녁마다 퇴근 뒤 7시부터 광주와이엠시에이 백제실에서 두 시간 동안 기독교에 대한 공부를 했다.
우리 집안은 한국전쟁 때 큰아버지의 죽음 이후 할아버지와 일가친척이 성당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전남여고 다닐 때 친구의 권유로 동부교회에 나가 백영흠 목사님의 설교도 들어봤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다. 또 도서관 운영을 맡으면서 수많은 책이 내 손을 거쳐 정리됐지만 성경을 비롯한 종교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즈음 기독교가 어떤 철학을 가진 종교인지 알고 싶었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으며 존경하는 인류 스승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진리의 길을 찾고 싶었다.
성경 공부를 하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선생님, 저는 참선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참선 공부를 하고 싶어요” 했더니 김천배 선생님은 불교에 대해서도 폭넓게 설명해주며 “정 선생, 참선 공부할 때 나도 끼워줘요”라고 했다. 그럴 정도로 김 선생님은 어떤 편견과 경계에도 걸림이 없이 열린 어른이었다. 이효영·고진형·이경희·최화자·반숙희 선생님이 그때 같이 공부한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이후 5·18 민주항쟁을 겪으면서 기막힌 시대의 아픔을 같이 나누며 마음을 다독여주는 든든한 동지가 되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성경 공부를 하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선생님, 저는 참선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참선 공부를 하고 싶어요” 했더니 김천배 선생님은 불교에 대해서도 폭넓게 설명해주며 “정 선생, 참선 공부할 때 나도 끼워줘요”라고 했다. 그럴 정도로 김 선생님은 어떤 편견과 경계에도 걸림이 없이 열린 어른이었다. 이효영·고진형·이경희·최화자·반숙희 선생님이 그때 같이 공부한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이후 5·18 민주항쟁을 겪으면서 기막힌 시대의 아픔을 같이 나누며 마음을 다독여주는 든든한 동지가 되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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