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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눈·귀·입 닫으라” 교사들에 ‘죽은 교육’ 강요 / 정해숙

등록 2011-06-29 19:50수정 2011-06-29 19:55

5·18 2주기인 1982년 5월18일 반공연맹 전남지부(지부장 김중채) 주최로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새광주 건설 도민단합대회’ 장면. 당시 전두환 정권은 ‘80년 5월 학살’로 격앙된 지역 민심을 달래기보다는 반공 궐기대회 같은 정신교육과 감시활동에 몰두했다.
5·18 2주기인 1982년 5월18일 반공연맹 전남지부(지부장 김중채) 주최로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새광주 건설 도민단합대회’ 장면. 당시 전두환 정권은 ‘80년 5월 학살’로 격앙된 지역 민심을 달래기보다는 반공 궐기대회 같은 정신교육과 감시활동에 몰두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33
광주시장과의 간담회에서 시장과 반공연맹 지부장의 발언에 항의발언을 하고 돌아온 이튿날인 3월30일 이른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광주농고는 외곽 오치동에 있어 집에서 거리가 멀었다.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해주고 시간 맞춰 통근버스를 타려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아침밥을 짓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전남여고에서 같이 근무했고 간담회에 참여했던 가정과 장학사였다. “정 선생, 나 정 선생이 어제 그렇게 말할 줄 몰랐네.” 첫마디가 그렇게 나오기에 나도 “어떻게 말해야 되는데요?” 하고 되물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그렇게 말해. 나는 정 선생답지 않게 말했다는 생각이 들어.” “정 선생다운 것이 뭔데요? 나는 항상 정장만 하고 살란 말인가요?” 하며 서로 조금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지금 교육청이 난리가 났어.” “어제 저녁 일인데 교육청이 어떻게 난리가 날 수 있나요? 아직 출근할 시간도 아닌데?” “지금 보안사(현 기무사)에서 전화가 오고 난리여. 오늘 교육청에 좀 나와야 할 것 같애.” 알았다고 답하고 끊자마자 역시 간담회장에 있었던 송동휴 장학관이 전화를 해서 같은 얘기를 했다. 나는 ‘학교로 전화해서 요청해주면 가겠다’고 답했다.

밤사이 보안사에서 간담회에 참석했던 장학관과 장학사들에게 전화가 왔던 모양이다. “책임자로 앉아 있으면서 그 여선생 발언에 다른 여교사들이 박수치는 것도 못 막았느냐. 오히려 책임자인 당신들 앞에 앉아 있던 여교사들이 박수를 더 잘 치더라. 그 여교사 사표 받아라. 못 받으면 당신들이 사표 내라.” 그런 내용의 압박 전화였던 모양이다.

출근하니 교장 선생님이 교장실로 불렀다. “정해숙 선생을 몇시까지 교육청에 보내라”는 통지가 왔다며,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물었다. 전날 시장 간담회에서 발언한 것 때문인 듯하다고 했더니 교장 선생님은 본인이 타고 다니는 차를 내줄 테니 갔다 오라고 했다. “기다릴 테니까 늦더라도 학교로 와서 꼭 보고를 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교육청 중등장학과에 들어가니 장학관과 장학사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몇몇 장학사들이 “그 자리에서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왜 말을 했냐”는 식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은 장학사님 생각이지요. 장학사님 어제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아서 시장과 반공연맹 지부장이 우리 여교사들에게 한 발언 내용을 잘 모르시지 않습니까?” 나는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랬더니 오전에 벌써 보안사에서 교육감을 찾아와 ‘그 여선생 사표 받아라. 받지 못하면 담당 장학관과 장학사 사표 받아라’ 지시를 하고 갔다는 것이다. 마침 고재종 당시 교육감은 광주여고 때 담임 선생님이었고 농구 담당 교사였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그래요? 참석 안 하신 장학사님들은 내가 항의했다는 것밖에는 확실히 모르시잖아요. 항의할 내용도 없는데 내가 일없이 항의했겠습니까. 그런 내용의 발언을 듣고 우리 여교사들이, 그리고 교사들이 그냥 되돌아간다면 이 교육은 죽은 교육입니다.”

장학사들로서는 엄중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교사 회장도 하고 모범적인 교사라는 평을 듣는 여선생이 엉뚱한 짓을 해서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표정들이었다. 그 표정을 읽은 송동휴 장학관이 내게 “잠깐 조용히 이야기하자”고 청했다. 다른 장학사들을 돌려보내고는 “정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우리 한번 병신이 되면 안 될까요?” 하며 장학관으로서 고뇌 섞인 속내를 드러냈다. 마음이 참 찡했다. “장학관님, 그 말씀이 너무나 저립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가 미래의 주인공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생각할 때 교사들을 모아놓고 그런 발언을 할 수 있습니까? 교감 간담회 때, 윤리주임 간담회 때 무사통과했다고 여교사들이니까 만만히 보고 말하는데 그냥 물러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제가 장학관님, 장학사님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아픔을 딛고 교육을 살리자는 것이지요.” 나는 내 진심을 장학관에게 전하고 싶었다. 장학관은 “알아요, 알아. 그런데 이런 시기에는 병신이 되어야 돼. 아는 체하면 안 돼” 하는 말을 반복했다. 눈·귀·입 모두 막고 병신이 되어야 생존할 수 있는 참으로 서글픈 시대를 우리는 건너고 있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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