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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숨은 우리 역사 눈뜨게 한 ‘두 백제와 증산교’ / 정해숙

등록 2011-07-05 19:51

1982년 농업 전문 외교관 출신인 김성호(왼쪽)씨가 펴낸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오른쪽). 일제의 식민사관을 뒤집은 새로운 역사책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86년 10판까지 나온 당대 베스트셀러였다. 필자 역시 저자와 직접 만나 토론하며 우리 역사에 대한 눈을 떴다.
1982년 농업 전문 외교관 출신인 김성호(왼쪽)씨가 펴낸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오른쪽). 일제의 식민사관을 뒤집은 새로운 역사책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86년 10판까지 나온 당대 베스트셀러였다. 필자 역시 저자와 직접 만나 토론하며 우리 역사에 대한 눈을 떴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37
광주농고에서 나는 우리 역사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생각해볼 기회가 된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바로 김은수 선생이었다.

김은수 선생은 찡그린 얼굴로 항상 이마에 내천(川) 자를 그리고 다녔다. 도서실에 자주 들렀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국어 담당인데 주로 역사책만 빌려갔다. “선생님은 국어 교사인데 왜 역사책만 빌려가시나요?” 어느날 물었더니 뜻밖의 답을 했다. “아! 그럴 이유가 좀 있습니다. 저는 일생일대에 민족의 서사시 하나 남기는 것이 목표입니다.” 민족 서사시를 쓰기 위해 습작을 많이 했는데 우리 역사를 잘 모르니까 막히는 대목이 있어서, 목표를 이루려면 우선 상고사를 비롯해 역사를 공부해야겠다는 것이다. “김 선생님, 대단한 목표를 갖고 계시네요. 훌륭하십니다. 우리 학교에 없는 책도 필요하면 이야기하세요.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다 드릴게요.” “작품은 언제 나올지 모릅니다. 하하!” 김 선생과는 그렇게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그 무렵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이라는 책이 나왔다.(1982년·지문사) 지은이는 아르헨티나 참사관인 김성호씨로, 그는 대학원에서 사학을 전공한 농업관료였는데 아르헨티나로 부임할 때 역사책만 8t을 싣고 갔다고 했다. 당시는 외국 책을 구하기가 무척 힘든 시절이었는데 외교관이어서 외국 자료를 많이 접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마침 외사촌 동생(최양부)이 대학 선배가 낸 책이라며 한 권을 보냈는데, 보자마자 “우선 열 권만 더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김 선생에게 건네주며 “읽어보고 와서 독후감 발표하세요” 했다.

실제로 며칠 뒤 김 선생은 “독후감 발표하러 왔다”며 도서실을 찾아와 인사를 했다. “그동안 민족 서사시 준비하느라 역사책을 많이 봤는데 해방 이후 나온 책 중에서 우리 역사에 가장 접근해 가는 느낌을 주는 최고의 책입니다. 너무 좋은 책을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이 책은 식민사관에 의해 고정된 우리의 역사관을 뒤집는 것이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검토해본 결과, 고대의 한-일 관계는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백제는 한 나라가 아닌 두 개의 나라(비류백제와 온조백제)였으며 그중 비류백제는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가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 선생이 저자와 직접 만나고 싶어하기에 외사촌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광주일보사에서 저자 초청 강연을 계획하고 있었다. 저녁 7시부터 진행된 발표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 강연이 끝난 뒤 저자와 김 선생, 그리고 나 셋이 근처 금수장호텔 커피숍에서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김 선생은 이 책의 내용 가운데 두 가지 점은 자기의 생각과 다르지만 우리 역사 정리가 가장 잘된 좋은 책이라는 점을 누차 얘기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그 이후 김 선생과는 매우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하루는 그간 써온 작품을 읽어보라며 커다란 원고 꾸러미를 갖다주었다. 기회가 되면 책으로 출판하는 것도 생각중이라며 보여준 작품들은 주로 백제문화에 대한 시였다.

김 선생의 우리 역사에 대한 애착과 탐구에 기운을 북돋울 계기가 83년에 또 한차례 찾아왔다. 5·18 이후 몇번 만나 알고 지냈던 도청의 장 과장이 ‘공부 좀 같이 하고 싶다’며 전화를 했다. “무슨 공부인데요?” “증산교에 다니며 공부를 같이 했으면 해서요.” “증산교…? 처음 들어보는데요.” “공부해 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 연락했습니다.” “생각해 볼게요.” 그 뒤로도 끈질기게 전화를 하는 바람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럼 한번 나가보죠” 했더니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해가 잘될 것입니다” 했다.


광주농고에서 꽤 거리가 먼 곳이었는데, 첫날 가보니 의외로 젊은이들이 아주 많았다. ‘아! 이런 공부도 있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내용도 재미있었다. 일부에서는 ‘신흥종교’라고도 하는데 교주 강증산에 대한 사상 연구를 비롯해 대전에도, 전북 김제 금산사 근처에도 본부가 있었다. 서울 은평구에도 증산동이 있고 강원도 정선군에도 증산역(2009년 민둥산역으로 개칭)이 있었다. 한번 마음먹으면 뭐든 꾸준하게 하는 편이어서 토요일마다 개근을 하게 됐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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