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8월12일치 <경향신문>에 보도된 ‘교원 소양평가고사 실시’ 관련 기사. 당시 전두환 정권은 ‘5·18’로 격앙된 광주·전남 민심을 다잡는 수단으로 교육 사상 처음이자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이 지역에서 교원 평가를 시행하도록 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39
교사의 봉급날은 매달 17일이다. 1980년대는 지금처럼 계좌이체 방식이 아니라 행정실에서 직접 현금으로 받았기 때문에 방학 중에도 봉급날엔 학교에 나와야 했다. 그래서 그날 방학 중 알릴 사항들을 전달하기 위해 직원회의를 여는 것이 관례였다.
1983년 여름방학 시작 무렵부터 교원소양평가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광주를 포함해 전라남도 전체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무슨 교사들 시험을 치른다고…’ 하면서 웃어넘겼다.
그런데 8월17일 직원회의를 간단히 마치자 교감 선생님이 ‘장학사가 시험지를 가지고 오셨으니 도서관에서 빠짐없이 응시해달라’고 공지를 했다. 소양평가 결과를 점수로 매겨 인사이동 때 반영한다고 해서 몇몇 선생님들은 나름대로 준비도 했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낙도나 멀리 시골로 발령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광주농고 담당 장학사의 감독 아래 시험지를 받아드니 주관식 다섯 문항이 출제됐다. 그런데 맨 앞 표지에 학교와 이름을 쓴 뒤 시험문제를 읽어보니 그 저급한 수준에 ‘도저히 응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문제지를 덮고는 표지에 커다랗게 느낌표만 해놓고 나왔다.
학교에서부터 시내버스 타는 곳까지 꽤 먼 거리를 혼자 걸어 나왔다. 집에 도착해보니 석간 지역신문인 <광주일보>가 와 있었다. 마침 ‘교사소양평가에 대해서’라는 사설이 실려 있었다. 평가를 거부하고 나온 터라 눈에 얼른 들어와 읽어보니 ‘교사소양평가를 해야 한다, 교육감이 참 잘한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또 한번 자존심이 상했다.
사설을 다 읽자마자 신문사 논설위원실로 전화를 했다. “수고 많으십니다. 저는 교사이고 독자인데 혹시 교사소양평가에 대해 사설 쓰신 논설위원이십니까?” 했더니 “지금 자리에 안 계신다”고 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해달라며 얘기를 시작했다. “저는 오늘 교사소양평가 시험지를 받고 어이가 없어 엎어놓고 나온 사람입니다. 곧장 집에 와 신문을 보니 교육감이 교사소양평가를 실시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교사들 평가해야 된다고 쓰여 있네요?” “그런데요?” “지금 말하고 있는데 그런데요가 뭡니까?” 다분히 신경질적인 반응에 나는 나대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우리 교사들은 정부가 인정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겨울방학, 여름방학 등 각종 연수 때마다 끝나면 평가를 받습니다. 교과별, 주제별 연수가 많다는 것 아마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또 느닷없이 교사소양평가라니요?” “아, 왜 그것이 어째서요?” “논설위원들께서는 정부가 인정하는 자격증 안 갖고 있잖아요. 시험 한번 보실랍니까? 사설이라는 것이 사회의 나침반 구실을 하는 것인데 함부로 쓰면 됩니까? 자격증 없잖아요. 사설 쓸 만한 자격이 있는지 시험 한번 보실래요?” 나는 거침없이 할 말을 이어간 뒤 ‘소양평가를 거부한 교사가 전화했다는 사실을 그 논설위원에게 전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끊었다. 다음날 들리는 얘기로, 전남여고에서도 도서관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교사들이 <문화방송> 카메라기자들의 취재를 거부했다고 했다.
이 소동을 계기로, 나는 처음으로 ‘교사들의 뜻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 나도 교총 회원이었다. 그러나 교총 회원은 개별 의사를 묻지 않고 교사로 임용되면 월급에서 회비를 공제해 자동으로 회원으로 가입이 된 것이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교장실에 가보니 교감 선생님이 ‘교육청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전했다. 전두환 정권이 한창 기세를 떨며 교사 길들이기 차원에서 한 평가에서 백지만 엎어놓고 나왔으니 장학사로서도 곤혹스러웠던 것이다. 교감과 수학과 주임이 시험지에 그냥 ‘무궁화’나 ‘태극기’만이라도 써주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교육청에서 그렇게 연락이 온 모양이었다. “그것이 말이 됩니까? 쓰려면 그때 썼지요.” “인사이동이….” “시골이든, 섬이든 어디 보내도 괜찮습니다. 알아서 하시지요.” 나는 끝까지 쓰기를 거부했다.
사실 교직사회에는 근무평정이라는 평가제도가 있다. 교장과 교감 선생님이 늘상 교사들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승진에 반영한다. 문제는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승진 줄세우기식, 순치시키기 위한 평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30년이 지난 최근에도 교원평가를 두고 교사들이 무조건 거부하는 것처럼 비판하는 여론이 있다. 그러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목적의 객관적이고 올바른 평가체계가 있다면 왜 거부하겠는가. 오래전 내 경험을 떠올리면서 교직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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