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쓰기는 구성력 떨어뜨려
지식을 내것으로 만드는 실마리
지식을 내것으로 만드는 실마리
김창석 기자의 서술형·논수형 대비법 /
52. 컴퓨터로 쓰기와 손으로 쓰기
요즘엔 컴퓨터로 글을 쓰는 이가 많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손으로 직접 종이에 쓰는 걸 잊어버린 듯싶다. 그래서 종이편지를 한번 쓰려면 대단한 결심을 해야 한다. 사실 컴퓨터로 쓰면 편리한 점이 많아 보인다. 고치고 싶을 때 언제나 쉽게 고칠 수 있다. 미리 구상하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어 글쓰기를 시작하기에도 효과적으로 여겨진다. 여러 개의 문장이나 문단 전체의 순서를 완전히 바꾸고 싶다면 종이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컴퓨터에서는 식은 죽 먹기다 .
그런데 이런 편리함의 이면에 숨어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우리가 잊고 있는 건 아닐까. 언제나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글을 쓰게 된다면 결정적으로 구성력이 떨어지게 된다. 구성력은 ‘표현력’, ‘내용’과 함께 좋은 글쓰기의 3대 요소에 해당할 만큼 중요한 능력이다. 특히 논술처럼 논리적인 글을 쓸 때는 전체 글의 논지와 논거, 문단의 내용, 문단 순서, 처음과 끝의 내용 등에 대해서 미리 치밀하게 계획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적당한 위치와 순서, 적당한 내용으로 꾸며져야 한다는 긴장감으로 쓰는 글과, 언제나 고칠 수 있다는 안이함으로 쓰는 글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을 이용해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는 점도 글쓰기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유리한 점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글쓰기를 하면서 검색의 유혹을 받기 시작하면 자신의 머리로 자기만의 생각을 하기에 앞서 검색부터 하게 된다. 자신의 힘으로 생각해낸 내용이나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검색에 의존하면 할수록 ‘생각의 힘’보다 ‘검색 실력’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글쓰기를 하면서 생각하는 힘을 효과적으로 기르기 위해서는 손으로 직접 종이에 쓰는 게 좋다. 손으로 직접 쓰려면 구성을 미리 해야 한다. 분량과 흐름, 순서에 대한 계산과 계획이 선행되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손으로 쓰는 글이 학습력을 기르는 데 더 효과적인 이유는 구성주의 학습이론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구성주의 학습이론의 핵심은 학습자가 기존의 학습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갈 수 있고, 그것이 학습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교사가 주입하는 정보가 개별 학습자들에게 의미있는 지식으로 바뀌려면 학습자 스스로가 정보를 지식으로 바꾸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손으로 글을 쓰게 되면 컴퓨터로 글을 쓸 때와는 달리 혼자서 여러 가지 구상과 계획을 많이 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맛깔나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빨리 쓸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의 여지가 생기고, 생각의 속도도 자연스럽게 조절된다. 급한 판단보다는 신중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도 만들어지는 셈이다. 종이에 직접 글을 쓰는 물리적 과정은 뇌에 저장되는 지식을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글쓰기를 통해서 암기한 내용이 잘 잊혀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디지털의 속성보다는 아날로그의 속성을 닮았다. 짧은 시간에 대량복제나 무한반복 등을 글쓰기에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오랜 준비와 계획, 훈련이 필요하다. 또 쓸 때마다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독자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다른 이의 글을 베껴 쓰는 방식의 글쓰기 공부를 권장하지 않는 편이다. 소품종 다량생산이 아니라 무한품종 단일생산이라는 글쓰기의 본질을 깨달은 소치다.
게다가 학교에서 치르는 내신시험의 논술형 문제나 대학입학시험으로 치르는 논술시험에서는 직접 손으로 종이에 쓰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컴퓨터의 검색 기능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 결과다. 이래저래 시험에서 치러지는 글쓰기 유형에 익숙해지려면 손으로 쓰는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kimcs@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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