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6월항쟁’ 민주화 바람타고 전교협 출범 / 정해숙

등록 2011-07-13 19:49수정 2011-07-17 20:44

1987년 9월27일 한신대에서 당국의 원천봉쇄를 뚫고 출범한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창립대회 때 성내운 교수가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공동대표로 참석해 감동적인 격려사를 했다. 사진은 바로 다음달 열린 해직교사복직촉구대회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작가 박용수씨 제공
1987년 9월27일 한신대에서 당국의 원천봉쇄를 뚫고 출범한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창립대회 때 성내운 교수가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공동대표로 참석해 감동적인 격려사를 했다. 사진은 바로 다음달 열린 해직교사복직촉구대회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작가 박용수씨 제공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43
1986년 5월10일 4개 도시에서 시작한 ‘교육민주화 선언’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교사들의 현실인식은 절박했다. 해마다 1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입시지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서울사대 부속여중 3학년생의 자살은 사회 전체에 충격을 주었다. ‘선언’은 이처럼 학생들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교육현실을 바꾸겠다는 교사들의 의지 표현이요 양심선언이었다.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어떤 땐 나보고 혼자 다니라고까지 하면서 두들겨 맞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 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1986년 1월5일 여중생의 유서 ‘친구 H에게’ 중에서)

전두환 정권은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가동하며 탄압의 강도를 높였다. 87년 새 학기 인사에서 서울과 부산시 교육위원회는 이른바 민주교사들을 다른 도의 산간벽지와 낙도·오지로 강제전보했다. 김민곤 선생님은 서울사대부고에서 충북 단양 어성천의 단산고로, 노웅희 선생님은 서울 선린상고에서 인천 백령도 백령중으로, 유동용 선생님은 서울 신도림중에서 강원도 양구중으로, 채석인 선생님은 부산서중에서 경남 남해로, 이은희 선생님은 부산서중에서 경남 하동으로 발령이 났다.

이에 김민곤·노웅희 선생님이 타도 전출을 거부하고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특히 백령도로 발령받은 노 선생님은 끝까지 거부하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북과 대치하고 있는 백령도에서 여차하면 꼬투리를 잡아 간첩으로 몰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듣고 ‘참 지혜로운 결정을 했구나’ 하고 안도했다. 그러나 노 선생님은 결국 해임당하고 말았다.

와이엠시에이 중등교사협의회의 교육민주화 선언 등으로 교사들이 징계받고 좌천을 당하던 무렵 나는 전남교련(현 광주교총)에 처음으로 전화를 했다. “교사들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교련에서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답은 “아! 그거 모르겠는데요”였다. “왜 모르십니까?” “그런 것 연락 못 받았는데요.” “요즈음 중앙일간지나 지역신문 할 것 없이 날마다 보도되는 것 안 봤나요?” 그래도 모른다는 답이었다. 교련 회비는 달마다 자동으로 떼어가면서 교사들의 권익 보호에는 나 몰라라 하다니!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떨던 나는 며칠 뒤 시내 대인동에 있는 교련 사무실로 찾아가 소리쳤다. “이 상황에 대해, 그리고 교사들 권익을 위해 교련에서 관심을 갖고 노력해 주세요.” 그렇게라도 씁쓸한 마음을 혼자서 달래야 했다.

농고 5년 기한을 채운 나는 87년 3월 서구 광천동에 있는 효광여중으로 전출됐다. 원래 다른 고등학교로 가야 했는데 엉뚱하게 중학교로 보낸 것이었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해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6월항쟁,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 6·29 선언, 7~9월 노동자 대투쟁 등으로 정국이 급박하게 흘렀다. 교사들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지역별로 교사협의회가 결성되었고, 단위 학교마다 평교사회가 자발적으로 조직됐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였다.

그 여세를 몰아 9월27일 한신대에서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가 출범했다. 와이교협 전국회장이었던 윤영규 선생님이 초대 회장을 맡기로 했다. 창립식 전날 밤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마리스타 수도원에서 열린 간부회의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이규삼, 이수호, 김민곤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마친 일행은 경찰의 봉쇄에 대비해 이튿날 새벽 6시 승합차를 타고 한신대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오전 8시 무렵 경찰은 학교를 겹겹이 봉쇄해 버렸다. 그래도 뚫고 들어온 200여명이 모여 오후 2시 도서관 앞 잔디밭에서 결성대회를 시작했다. 교문 밖에는 들어오지 못한 선생님들이 훨씬 더 많았다. 김민곤 선생님의 사회로 대회가 시작되자, 선생님들은 경찰과 몸싸움을 하면서도 ‘함께 구호를 외치고 함께 노래하며’ 안팎 구별 없이 하나가 됐다.


당시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성내운 교수님이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들려준 격려사는 바로 우리의 뜻이었다. “아이들이 인간답고 착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당대의 책임이며, 따라서 우리의 권리 주장은 학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는 요구이기 때문에 백번 정당하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