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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청소년, ‘인문학’을 만나다

등록 2011-07-18 11:30

‘인문학’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찾고 진로까지 바꾼 서인석, 송성호, 김준혁씨(왼쪽부터)가 자리를 함께했다.
‘인문학’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찾고 진로까지 바꾼 서인석, 송성호, 김준혁씨(왼쪽부터)가 자리를 함께했다.
[커버스토리]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청소년
인문학 공부 과정 담은 책 출간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 돼
‘배움의 즐거움’도 스스로 찾아
공부나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노래방과 피시방을 들락거렸고 학교는 잠자는 곳에 불과했다. 당연히 학교 선생님과도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시름은 깊어졌다. 억지로 학교에 가긴 했지만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대학 진학도 하지 않았다. 최근 <우리는 인문학교다>(학이시습)라는 책을 낸 저자들의 공통점이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서인석, 송성호, 김준혁씨는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청년들이다. 학교에선 ‘문제아’였지만 이젠 2권짜리 두툼한 책을 낸 인문학 저자가 됐다.

“비판적인 시선이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이들도 있더군요. 하지만 지난 1년6개월간의 인문학교 수업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서인석씨는 틈틈이 써온 시와 에세이를 모아 또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서울 강북구 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을 기획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말수가 적고 남들 앞에 나서길 꺼리던 김준혁씨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됐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큰 변화예요. ‘나도 공부를 할 수 있고 내 의견을 이렇게 말할 수 있구나’ 알게 된 계기였죠. 학교에 다닐 때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거든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인 이들은 한 친구의 소개로 5년 전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을 알게 됐다. 학교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문화기획과 책읽기에는 관심이 갔다.

“처음부터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지역 축제를 기획하면서 조금씩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거죠. 지역 축제이다 보니 문화와 역사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단순히 앉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우리의 활동과 연결된 공부여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살아있는 공부’라고 할 수 있죠.” 송성호씨는 공부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또다른 공부가 될 수 있었다.

인문학 공부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학교처럼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첫 수업의 주제는 ‘내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였다. 매주 ‘품’의 심한기 대표와 공부하면서 그때그때 수업의 방향을 세워 나갔다. 주로 책을 정해서 함께 읽어갔지만 공부가 지겨워질 때면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렇게 2009년 2월부터 시작한 인문학교는 2010년 5월에 논문을 쓰고 지난 6월에는 책을 출간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최근 이들은 ‘괜찮은 청년문화기획교육집단 세 개(犬)’를 창업했다. 각자가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느낀 변화를 다른 청소년들에게도 나눠주기 위해서다. 특히 경제적·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 매주 목요일에는 고리울 청소년 문화의집 ‘꾸마’를 찾아 3시간씩 강의를 한다. 토요일은 ‘품’에서 연 ‘무늬만 학교’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진로 선택을 하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신의 삶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인문학 공부가 큰 도움이 되죠. 십대들이 사회 안에서 분리되거나 구분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해요. 지금도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아이들이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10대를 보내고 있죠. 이런 아이들과 소통을 해보고 싶어요.”


지난 3월에 출간된 <다른 십대의 탄생>(그린비)은 김해완(18)씨의 치열했던 인문학 공부 기록을 담고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니체’에 매력을 느껴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충북 제천에 머물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번은 서울 남산에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찾는다. “대안학교를 다녔지만 ‘대안’을 발견하진 못했죠. 입시 위주의 교육 방식은 여전했거든요. 물론 학교를 자퇴한 이유는 복합적이었어요. 자퇴한 뒤에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생활하며 인문학 공부를 했죠. 모르는 게 많았기 때문에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어요.”

최근엔 역사 공부에 빠져 있다. “국사 교과서는 재미가 없었는데, ‘이야기가 있는 역사’는 무척 흥미로운 것 같아요. 인류학을 공부하며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사유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됐죠. 예전부터 블로그 등에 글을 올리면서 저 자신을 넘어서고 싶었어요. 인문학 책을 읽으며 사유의 힘을 얻게 된 것 같아요.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니까요.”


지난 2009년 부산 인디고서원 옆 뜰에서 열린 ‘정세청세’ 토론 행사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조별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인디고서원 제공
지난 2009년 부산 인디고서원 옆 뜰에서 열린 ‘정세청세’ 토론 행사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조별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인디고서원 제공
김씨는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자기 언어’를 찾게 됐다. “남의 언어에 기대지 않게 됐어요. 중졸 백수이지만 삶의 좌표를 찾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연연하지 않는 힘을 갖게 됐죠. 내년에는 탈학교 청소년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강좌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학교 밖에서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 경우도 있지만 학교 안에서 인문적 사고를 키우는 이들도 있다. 서울 중동고는 특성화 교과로 일주일 2시간씩 ‘후앰아이’(나는 누구인가)라는 가치탐구 프로젝트 수업을 하고 있다. 자기탐색을 거친 청소년들은 진로 선택을 할 때도 더 적극적인 편이라고 한다. 안광복 철학교사는 “철학자의 이론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어떤 삶이 가치 있고 바람직한 것인지를 수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 준다”며 “인문학 공부의 흐름도 교양 철학사에서 의미와 정체성을 찾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동고 3학년 김두겸군은 논리학 수업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가끔 친구들과 의견 충돌로 부딪힐 때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많았다. 감정 표현이 서툴러 소통이 힘들 때도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가 됐던 일을 적고 어떤 행동을 했어야 하는지 발표를 했죠. 설득이나 사과를 할 때 어떻게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알게 됐고요. 일상생활에서 겪는 문제들을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풀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인문학을 이렇게 일상생활과 연결짓다 보니 학생들도 흥미를 갖고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

김군은 또 인문학 수업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제가 좀 다혈질이었거든요. 친구의 머리를 크게 다치게 한 적도 있었죠.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차분히 감정을 조절하게 됐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어요.” 대학 입시에 대한 두려움도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전공도 사회학을 생각하고 있다.

인천 안남고 1학년 박규호군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부평에 있는 청소년 인문학도서관 ‘두잉’에 자주 들른다. 인천 ‘정세청세’(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 기획팀장으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청소년 인문학도서관이 처음 생길 때부터 참여했다고 한다. ‘정세청세’는 부산 인디고서원에서 시작된 인문학 토론 프로그램으로 2009년부터는 대구, 울산, 서울, 순천, 전주, 인천 등에서도 열리고 있다.

“지난 4월부터 12월까지 월 1회씩 진행되고 있어요. 지역 청소년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고 있죠. 인천에서는 30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사회적인 이슈가 아니라 ‘정의’나 ‘희망’과 같은 가치의 문제가 토론 주제가 됩니다. 조별 토론을 거친 뒤 자유롭게 발표하는 시간을 갖죠. 도서관에서 단순히 책만 읽는 게 아니라 인문학적 성찰과 사유를 할 수 있었으면 해요. 주변의 이웃들을 돌보며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글·사진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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