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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나치 군복은 왜 멋질까?

등록 2011-07-18 12:00

파시즘
파시즘
[함께하는 교육]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38. 파시즘 - 파시즘식(式) 유혹의 기술

<파시즘> 마크 네오클레우스 지음정준영 옮김/이후

‘휴고 보스’(Hugo Boss)는 나치(Nazi) 군복을 디자인했다. 지금도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 회사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에도 독일 군복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들 가운데 ‘나치주의자’는 매우 적다. 그냥 옷을 옷 자체로 좋아할 뿐이다. 나치는 싫지만 군복 디자인은 멋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나치 군복에 홀리는 사람들은 히틀러의 의도에 고스란히 걸려든 꼴이기 때문이다. 나치는 유독 ‘비주얼’(visual)에 신경을 썼다. 멋진 군복에 절도 있는 로마식 경례, 거기다 옛 로마 깃발을 쏙 빼닮은 군단기(旗)까지.

우리의 판단은 옳고 그름보다 좋고 싫음에 따라 휘둘리곤 한다. 미인의 말은 거짓이라도 믿고 싶어진다. 반면, 추한 외모를 한 사람의 진실한 충고는 되레 화만 부추길 때도 많다. 나치는 이 점을 너무도 잘 알았다.

그들은 ‘합리적인 생각’도 낮추어 보았다. 진정 강한 자는 스스로의 생각을 믿는다. 약한 자들이나 이치를 따지며 변명을 늘어놓는 법이다. 승리하는 사람들은 자기 영혼에서 샘솟는 ‘의지의 힘’에 따라 움직인다.

나치는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못났다며 스스로를 미워하는 사람을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들까? 당신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누구’ 때문에 지금처럼 되었을 뿐이라며 위로하라. 그 ‘누구’만 사라지면 당신도 위대해지리란 믿음을 심어주라. 약한 자들이 힘을 합쳐서 내 것을 빼앗을까 두려운 사람에게는? 강력한 국가가 당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속삭여 줘라. 자존심이 짓밟혀 울화병이 생겼다면? 힘센 지도자가 나서서 적들의 콧대를 꺾어줄 것이라 약속하라.

나치는 사람들의 절절한 바람을 건드렸다. 욕망에 눈먼 시민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히틀러에게 매달렸다. 나치라면, 저 사람이라면 나의 바람을 채워주리라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인간은 진실보다 바라는 이야기에 끌리는 법이다. 히틀러는 환상을 거듭 만들어 냈다. 원래 ‘아리안족’은 상상 속의 민족이다. 인도와 유럽의 말은 따져보면 비슷하다. 그래서 언어학자들은 인도와 유럽인은 원래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둘로 갈라지기 전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아리안족’이라는 민족을 가설로 세웠다.

나치는 아리안족을 실제 있었던 민족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러곤 약하고 교활한 유대인들이 아리안족의 발목을 잡았다며 헐뜯어댔다. 우수한 아리안족이 열등한 유대인 탓에 주저앉는 모습은 옳지 않다. 정의(justice)를 다시 찾으려면, 우월한 자를 높은 자리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유대인을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또 어떤가? 그들은 애써 모은 재산을 빼앗아 노동자들에게 나눠주라고 외친다. 가난한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테다. 그랬다간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자기 몫을 챙기는 데만 매달리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굴러갈 리 있겠는가. 경제는 마땅히 ‘모두의 미래’를 위해 꾸려져야 한다. 자기 몫을 내놓으라는 이들은 짓눌러버려야 할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진 독일은 비참한 상태였다. ‘유럽의 2등 국민’이라는 열등감도 심했다. 지지리 궁상인 상황, 현실을 바꿀 ‘합리적인 대책’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어낼 가능성이 없을 때, 사람들은 상상 속으로 빠져든다.

나치는 사람들의 헛헛한 마음을 절묘하게 노렸다. 히틀러는 ‘의지의 힘’을 힘주어 외쳤다. 현실을 논리적으로 따지지 말고, 믿고 행동하라. 히틀러는 사람들을 후릴 신화들을 속속 만들어 냈다. ‘아리안족의 영광’, ‘독일의 신성함’ 등. 독일 민족은 어느덧 ‘아리안족’으로 거듭났다. 아리안족이 영광을 되찾는 날, 가슴속 모든 울화는 사라져버릴 테다. 사람들의 눈동자는 점점 불타올랐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독일인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군중을 움직이려는 웅변가는 확신을 공격적으로 말해야 한다. 과장하고 확신하고 반복하라. 무언가를 증명하겠다며 논증하려 들지 마라.” 대중 선동 이론가인 귀스타브 르봉의 말이다. 히틀러의 나치는 이런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랐다.

게다가 나치는 평화보다 전쟁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본다. 자연에서는 늘 생존 투쟁이 벌어진다. 자연의 이치는 약한 자는 먹히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 데 있다. 인간 세상도 별다르지 않다. 전쟁은 인류를 강하게 만든다. 약하고 병든 자들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나치는 남성다움과 건강함을 유난히 강조했다. 어깨선과 몸매가 절도 있게 살아나는 나치 군복에는 이런 특징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또한 나치 독일의 군대에는 강인함과 규율이 살아 있었다. 그만큼 약한 자에게는 가차 없었다. 훈련은 혹독했고, 허약하다고 봐주는 일도 없었다.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일등은 박수를 받지만 꼴찌는 외면당하기 쉽다. 강하고 유능한 쪽에 열광하는 마음은, 힘없고 능력 없는 치들의 비참함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한다. 히틀러는 강하고 힘센 모습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리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 강인함에 끌려가도록 내버려두라고 외쳤다. 강하고 힘센 쪽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자연적인 본성’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인기 가수 임재범이 라이브 공연에서 나치 군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벌였단다. 물론 임재범은 나치주의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진중권을 비롯한 지식인들은 그의 퍼포먼스를 놓고 적잖이 설전을 벌였다.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해석의 자유 또한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국가가 만든 제복에는 한 시대의 세계관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예술가의 행동 하나는 많은 해석과 숱한 억측을 낳는다. 공인일수록 생각을 깊이 해야 하는 이유다.

>>시사브리핑: 임재범 ‘나치 경례’ 퍼포먼스 논란가수 임재범씨가 지난 6월26일 콘서트 도중 나치 군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벌였다. 임씨는 콘서트 도중 나치 군복과 군모를 입고 무대에 나타나 노래를 부른 뒤, 나치식 경례를 세 번 하고 군복을 벗고 가죽조끼로 갈아입었다. 그의 소속사는 언론에 “자유를 갈망하는 퍼포먼스일 뿐 애초 사전에 준비된 기획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 뒤 트위터 등에서 논란이 벌어지자, 그는 이후 공연에서는 나치 의상을 입지 않았다.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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