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여름방학 때 미국 워싱턴디시의 한 학교 도서관을 방문한 필자. 문교부에서 파견한 ‘미국·캐나다 교육계 시찰단’으로 두 나라를 처음 방문한 필자는 당시 전국교사협의회 부회장으로서 교원노조와 교육관료의 바람직한 관계를 주의깊게 살펴봤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46
효광여중에서 근무하던 1988년 5월, 이양우 교장 선생님이 “교육계 시찰단으로 타이를 다녀오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79년에 국제도서관대회에 다녀오는 길에 타이를 방문한 적이 있어서 사양을 했다. 섭섭한 표정이 맘에 걸려 다음날 ‘가겠다’고 했더니 무척 좋아하셨다. 그런데 6월쯤 교육청에서 타이 대신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평교사회가 활성화되면서 문교부에서 교장단 연수지였던 유럽과 북미 지역에 교사들을 보내기로 갑자기 교체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전국의 초·중·고 교사 24명으로 구성된 ‘미국·캐나다 교육계 시찰단’에 포함돼 7월24일부터 보름간 다녀오게 됐다.
당시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에서는 ‘교원의 노동3권 보장, 교장 선출 임기제, 교무회의 의결기구화 등 민주적 교육관계법 개정, 사립교원 신분 보장과 사학 정상화, 국정교과서제 폐지, 보충·자율학습 전면 폐지, 교원 발령 적체 즉각 해소, 촌지 없애기 및 교재 채택료 거부 운동’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며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교협 부회장을 맡고 있던 나는 시찰을 가기 앞서 광주 와이(Y)교협에서 함께 활동하던 몇몇 선생님들과 의논을 했다. 선생님들은 ‘가지 않는 것이 어떠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좁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이번 방문은 노태우정권이 개인 호주머니 털어서 보내주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세금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떳떳하게 가서 보고 와 전달할 것은 전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미국과 캐나다를 견학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방문한 뉴욕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노숙자(홈리스)와 빈민가(할렘) 풍경이다. 숙소인 맨해튼 도심의 호텔에서 이른 아침 내려다보니 노숙자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미국처럼 부유한 나라에 노숙자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던 터라 의아했다. 통역하는 유학생에게 물어보니, “홈리스들이라기보다는…, 정부에서 복지예산으로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는데도 게을러서 은행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해줬다. 일종의 무력증에 빠져 생활에 의욕을 갖지 못한 것이다.
맨해튼의 최대 흑인거주지역이라는 할렘에는 빌딩마다 색색의 낙서로 덮여 있었다. 흑인들이 불만을 그렇게 표현해 놓은 것이었다. 밤에는 할렘 쪽으로 절대 가지 말라는 주의를 들으며 길 하나 사이로 ‘흑백 인종차별, 인종만이 아니라 인간차별에 대한 한계의 풍경’을 목격한 듯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책에서 볼 수 없었던 미국의 이면이 너무 놀라웠다.
다음 방문지인 워싱턴디시 교육청에서는 어느 학교 교장이 브리핑을 했는데, “교사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교원노조의 힘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교장의 임무는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란 말도 인상적이었다. ‘일직과 숙직은 어떻게 하는지, 교장 선생님도 노조원인지’ 내 물음에 대한 그 교장의 답은 더 충격이었다. “교사가 어떻게 일직, 숙직을 합니까? 교사들은 교재연구와 학생지도에 집중해야지요. 교사들이 다 퇴근하고 난 뒤 교장이 마지막에 문단속을 하고 퇴근합니다. … 학교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교장은 노조 조합원이 될 수 없습니다.” ‘미국이 기침만 해도 감기가 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 흉내 내기를 하는 대한민국인데 이런 것은 왜 흉내 안 내나?’ 속으로 참 소중한 정보를 얻었다는 생각을 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학교 현장을 직접 둘러봤는데 역시 놀라웠다. 마침 한국인 여자 교감 선생님이 안내를 했는데 “학생들이 학교를 잘 나오지 않아서 등교를 하면 통장에 일정한 돈을 넣어주는 제도까지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또 학교폭력·교사폭력·부모폭력 등 어떠한 형태의 폭력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날도 학생을 때린 교사가 소환을 받아 교장 선생님이 법원에 가는 바람에 교감이 대신 우리 일행을 맞은 것이었다. 부모가 자기 자녀를 때려도 고발당한다는 사실도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 놀라웠다. ‘아, 미국은 권총문화로 이룩한 나라여서 폭력이 일상화된 게 아닐까?’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성과 가정파괴의 실상을 엿본 뒷맛이 씁쓸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요즘 학교 체벌 금지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오랜 군부독재로 인한 국가폭력의 폐습과 천민자본주의의 무한경쟁 체제 속에 학생들의 심성이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교단을 떠나 있지만, 그런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 교사들의 어려움은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학교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일이 교육당국의 과제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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